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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Feb 06. 2021

정치의 계절

2012년 8월 13년 반 만에 강원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영어 선생님을 할 수 있는 중등교사 정교사 2급 자격을 얻었다. 임용고사를 준비하거나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기간제 영어교사를 하는 대신, 초등학교에서 영어회화 전문강사를 하기로 했다. 영어회화 전문강사는 이명박 정부에서 ‘영어 공교육 완성 실천방안’을 추진하면서, 영어교사의 부족함을 해결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이다. 공식 직함이 영어회화 전문강사였지 초등학교에서는 사실상 비정규직 영어교사였다. 영어 수업과 영어 관련 모든 업무를 담당하며 정규직 영어전담 교사가 하는 같은 일을 했다. 교장 선생님의 평가로 1년 단위로 계약을 연장하는 비정규직 영어교사였지만, 영어 수업과 학교 업무와 인간관계에서 큰 문제가 없는 이상 재계약이 되었다. 구관이 명관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는 이듬해 2013년 봄부터 초등학교에서 실력 있는 영어회화 전문강사가 되라고,  2012년 가을 경인교대 TESOL을 보내 주셨다. TESOL은 영어로 영어를 가르치는 실용적인 교수법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이다. 나는 중등교사 2급 자격증이 있기 때문에, 영어회화 전문강사로 구직하는데 TESOL 자격증은 의미가 없었다. 아버지께서는 TESOL 자격증 취득 목적이 아닌 유능한 영어 선생님으로서의 실용적 티칭 능력을 배우라고 TESOL에 보내주셨다.


마침 정치의 계절이었다. 안철수가 정치적 메시아로서 국민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떠오르고 있을 때였다. 그전에도 그 이후에도 어떤 후보를 지지한 적이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지지활동을 하지는 않았다. 안철수가 처음 정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던 그때 딱 한 번 정치인 팬클럽 활동을 했다. 처음에는 안철수 팬클럽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안사모에서 활동했었다. 안사모도 막 시작하던 초창기였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운영되었는데, 지역 별 게시판이 있었고, 지역별 오프라인 모임이 있었다. 중앙본부에서 지역 모임을 공식 인정하기 이전이었다. 지역별 게시판을 통해 지역모임이 활성화되었다. 수원 사는 나는 경기남부지역 모임에 나갔다. 경기남부지역 지역 초창기 회원들이 내게 호감을 느꼈던지, 나를 경기남부지역과 수원지역의 예비 지역장이 추대했다. 중앙본부에서 지역장을 승인하기 이전이었고, 우리 지역모임에서 자체적인 합의로 추대되었다. 나에게 사람을 끄는 힘과 리더십이 있었던지, 말 잘하고 성격 좋고 특별히 매인 것 없이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지, 어떤 이유로 내가 지역장으로 뽑혔는지 잘 모른다.


내가 지역장이 되면서 경기남부지역은 수원에서 매주 모였다. 매주 토요일 모여서 이야기하고, 밥 먹고, 가볍게 술 마시고 그런 모임이었다. 전국 지역모임 가운데 가장 활성화된 모임 중 하나였다. 그러다 보니 우리 지역 회원들 말고 다른 지역 리더들이 찾아왔다. 일종의 내부 정치를 하려고 찾아온 것이었다. 지역장들이 모인 모임이 있었는데, 나 또한 우리 지역 모임을 찾아오신 분들에 이끌려 지역장들 모임에 가입하게 되었다. 안사모 중앙본부 입장은 창립총회에서 지역장들을 정식으로 뽑겠다는 것이었고, 지역장들의 입장은 기존 지역모임의 조직을 그대로 인정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던 차에 안사모 중앙본부에서 창립총회를 부여 롯데리조트에서 하기로 결정을 했고, 지역장 모임에서는 어떻게 일본 기업 롯데리조트에서 창립총회를 하냐며 참석을 거부했다. 힘이 있는 세력은 자기가 유리한 곳에서 회의를 열고, 힘이 없는 세력은 회의장에 들어오지를 않는다. 이게 대한민국 정치이다. 안사모를 따라갔어야 했는데, 안사모 중앙본부 사람들은 아직 만난 적이 없던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지역장 모임 멤버와는 형님 동생 하며 지내던 사이여서, 새로운 안철수 팬클럽을 만드는데 합류했다. 안사모 경기남부 지역에서 나 혼자 새로운 안철수 팬클럽으로 갈아탔고, 다른 회원은 기존 안사모에 남았다. 다음 카페에 <대한민국 안사모>라는 팬클럽을 만들었다. 나는 그냥 형님 동생 하시는 분들과 한 배를 탄 것뿐이었는데, 회원을 선동하고 안사모 조직을 배신하고 유사조직을 만들었다는 죄로 안사모 블랙리스트에 내 이름도 올랐다. 다른 지역장들과 함께 하기 전에, 경기남부지역 회원과 우리의 갈길을 회의를 통해 민주적 절차로 결정했어야 했다. 먼저 부여 롯데리조트에서 개최된 안사모 창립총회에 참석하여 문제를 풀어가야 했다. 그때는 정치의 세계와 그 세계의 도의를 몰랐다. 만약에 중앙본부 리더들과 먼저 만났더라면, 그분들과 패밀리가 되었을 것이다.


다음에 만든 카페는 대전에서 축협 조합장을 하시는 분이 개설하셨고 카페 관리는 내가 하였다. 내가 지역장 가운데 가장 젊어서 카페 관리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아직 조직이 갖추어지고 임원을 선출하기 이전이라 특별한 직함은 없었다. 대표 역할을 하던 분 바로 밑에서 실무적인 일을 하는 사무총장 역할을 했다. 형님들의 의견을 모아서 일을 추진하는 역할이었다. 안철수 팬클럽 다음 카페 <대한민국 안사모>에는 안사모 지역장 출신만 모인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 활동가라 칭하면서, 안사모 중앙본부에도 드나들고, 안철수 최측근이었던 금태섭 사무실도 드나드는 분이 있었다. 지역장들이 안사모를 탈퇴하고 새로운 <대한민국 안사모>를 만든 것도 이분이 바람을 넣은 것이 결정적이었다. 내가 안사모를 탈퇴하고 새로운 안철수 팬클럽에 참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도, 이분 눈에 내가 들어서였다. 처음에는 지역장들끼리 형제 같은 수평적인 관계였다. 새로운 조직을 만들고 일이 진행되면서 나는 이 활동가의 참모가 되었갔다. 좋은 영어회화 전문강사가 되기 위해 아버지께서 등록해주신 TESOL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전문성을 갖추어야 할 때였다. 나는 안사모에서 떨어져 나온 <대한민국 안사모>라는 다음 카페 활동하는데 온 힘을 다 쏟았다. 의미 없는 일을 하면서 매일 서울의 스타벅스로 자칭 활동가에게 불려 다니며 시답지 않은 일을 했다. 정치를 한 것이 아니라, 소꿉놀이를 한 것이었다.




안철수 지지활동에 올인을 하던지, TESOL 공부에 올인을 하던지, 둘 중에 하나만 했어야 했다. 둘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다가, 결국은 둘 다 놓치게 될 상황에 이르렀다. 더 이상 둘 다 할 수 없는 상황에 몰렸다. 안철수 팬클럽 활동을 중단하고 탈퇴했다. TESOL 공부에 전념하기로 했다. 그때 이미 TESOL 과정에서 제적을 당하기 바로 직전이었다. 대학에서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취득한 중등교사 정교사 2급 자격증이 상위 자격증이기 때문에 TESOL 자격증 자체는 의미가 없었다. 다만 TESOL 과정을 충실히 공부했었더라면, 초등학교에서 영어교사로서 실력 있는 좋은 교사가 되었을 것이다.


안철수가 공식적으로 정치참여를 선언하지 않고 간을 보고 있을 때 안철수 팬클럽 활동을 했었다. 안철수가 본격적인 대선 도전을 선언하기 며칠 전 안철수 팬클럽 활동을 그만두었다. 그 시점에서 안철수에게 실망한 것은 아니었고, 내 삶을 포기할 수 없어서 시답지 않은 정치란 이름의 소꿉놀이에서 빠지기로 했다. 일꾼이 사라진 <대한민국 안사모>의 자칭 활동가는 집까지 나를 찾아왔지만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좋은 영어교사가 되기 위한 준비를 했어야 했다. 아니면 팬클럽 활동을 열심히 하다가 <안철수 캠프>로 들어가서 당직자가 되었어야 했다. 영어교사가 되던지, 직업 정치꾼이 되던지, 둘 중 하나만 했어야 했다. 결과적으로 초등학교 영어 선생님이 되었지만, 유능한 영어 선생님은 되지 못했다. 아이들과 영어로 노래하고 놀이하며 수업시간을 때웠다. 초등학교 영어교육 과정 자체가 중학교 때부터 본격적인 영어공부를 시작하기 전 영어로 놀이하고 활동하는 것이기는 한데, 아이의 영어실력도 키워주는 능력 있는 선생님이 되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내가 안철수 캠프에 들어가 전적으로 도왔다면 선거 결과가 바뀌었을지는 모르겠다. 내가 안철수 팬클럽 활동하는 대신 TESOL을 열심히 공부했었더라면, 내 인생의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좋은 선생님이 되었을 것이고, 비록 비정규직이지만 좋은 직장에서 계속 일했을 것이고, 조울증이 재발하지 않았을 것이고, 더 일찍 가정을 이루어 안정된 삶을 이루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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