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였다. 새벽 출근길 시가 떠올랐다. 가끔 노래로 시가 찾아온다. 19금 시였다. 올려도 될 것 같고, 올리면 안 될 것 같고, 올려도 될 것 같고. 짜장면을 먹어 말아 먹어 고민했다. 제목에 [19금]이라는 머리말을 달고, 19금이라는 경고 문구를 달고, 스크롤을 내려야 볼 수 있을 만큼 공백을 넣었다. 그런데 제목의 [19금]이란 표현 자체가 더 선정적이고 불필요한 호기심을 자극하지 싶었다. 지금 시대는 이미 19금인지 평가하는 주체는 작가가 아닌 독자인데. 19금이 나쁜 것도 아니고. 시적허용으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요즘 시대를 고려하면 이 정도면 19금이 아니라 전체연령가일 수도 있고. [19금] 머리말을 떼고 제목을 시에 들어가는 영어 구절 Princess Only for you로 썼다.
사실 문두의 박스 인용으로 19금 주의를 넣고 공백을 넣을 필요가 없었다. 그것은 하수의 방법이다. 그냥 문두에 공백만큼 충분한 인트로 글을 쓰면 된다. 누군가에게는 조금 불편할 수도 있으나, 누군가에게는 시적허용으로 허용될 수 있는 범위의, 그런 사정을 문두에 박스 안에 설명을 하면서, 공백 대신 글로 공백을 만들면 된다. 그게 작가의 방식이다.
시를 써서 올리고 보니, 브런치에 이런 시를 공개해도 될까,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게 아니니라는 사도바울 선생의 말씀이 떠 올랐다. 내가 사도바울 선생님 말씀 속에 하나님 말씀을 따르는 홀리한 인물은 아니고, 가족과 아내와 아들 꽁무니를 따라 교회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정도인데. 그런 생각보다는, 내가 이런 시까지 브런치에 쓸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내 독자 중에서는 불편할 분들이 있을 수 있어서. 요즘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데, 내가 브런치에 그런 시를 써서 올려도 될까 하는 고민이었다. 그래서 내렸다가.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니 이 시가 어때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선정적(?)이어서 그렇지 나름 수작인데 아쉬웠다. 내 구독자가 불특정 다수이면 괜찮은데, 나는 본명을 공개하고 글을 쓰고 있고, 나의 관계하는 사람들과 관계하는 사람들이 내 글을 보면. 그런 고민의 지점이 있다. 그런 이유로 작가가 솔직하지 못하면 작품이 힘을 잃고. 그런 지점의 고민이 있다. 다소 거친 부분을 다듬어 최종버전을 올려 본다.
왕자지 내 자지
왕 크지 왕 굵지
흐물흐물 힘없지
내 나이 중년 아저씨
왕자지 내 자지
왕자지 난 너의
왕자지 널 위해
Princess Only for you
WANG JAJI
WANG JAJI my pride
Huge and thick like King's
But it wilts losing its might
Middle-aged man I am
WANG JAJI my pride
WANG JAJI I am yours
WANG JAJI I am for you
Princess Only for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