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닿기 위해 브런치 멤버십 발행을 접는다
2025년 브런치 작가 멤버십이 정식 오픈했다. 난 이 구역의 얼리버드가 되기로 했었다. '오늘만 무료' 기능이 후공개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멤버십으로 발행하되 오늘만 무료로 발행하는 컨셉. 돈 내고 읽으라는 강요는 아니고, 글이 넘치는 세상에서 내 글까지 다 읽을 필요는 없고, 오늘 따끈하게 나온 글이 선택과 집중으로 읽히고 전에 쓴 글들은 수면으로 가라앉아도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멤버십으로 발행할 때 라이킷 숫자가 가장 높게 나온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물론 언젠가 수익이 창출되기를 바라는 기대도 있었다.
2025년 쿠팡 물류센터에 나가기 시작했다. 낮에는 쿠팡에 나가고, 밤에는 아들 요한이와 놀고, 출퇴근 시간 셔틀버스에서 브런치 앱으로 글을 쓰며 작가를 꿈꾼다. 2025년 말에 이르러 이제 작가의 꿈을 접고 취미로만 써야 하나 싶었다. 그러다 결론에 이르렀다.
"쿠팡은 나의 현재고, 작가는 나의 미래다. 나의 미래를 현재로 제한하지 말자."
2025년 마지막 날부터 시작해서 2026년 동이 트는 지금까지, 그 짧은 날들 사이 내 안에는 격변이 일어나고 있다. 거인이 깨어나고 있다. 나는 그렇게 내가 먼저 나를 믿는다. 나는 올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것이다. 에세이 시장에서 누구와 비교할 수 없는 '최다함'이란 브랜드가 형성될 것이다. 과장을 보태서, 아무도 책을 읽지 않지만 누구나 책을 쓰는 시대, 출판 시장의 새로운 흐름은 '일기 같은 에세이'가 될 것이다. 일기 같은 일기 아닌 일기 같은 에세이. 일기에 머무르지 않고, 에세이에 이르렀으나, 나의 솔직한 일상에서 시작하는 일기 같은 에세이. 나는 그런 글을 지향한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모태신앙으로 태어난 나의 꿈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었다. 같은 학교 기독교 동아리의 회장이었던 소녀, 그리고 나는 그 소녀의 부회장이었다. '하나님 사랑'은 어느덧 하나님을 사랑하는 '소녀 사랑'이 되었다. 나는 소녀를 사랑했지만 소녀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고, 스무 살 군대에서 조울증에 걸려 2030 청춘을 잃었다. 하나님을 사랑하던 나는 더 이상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 하나의 사랑만 허락해 달라는 내 소박한 기도의 거절에 분노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세상에 내 기도를 들을 신의 존재가 부재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을 뿐이었다. 신에 대한 불신은 아니고, 신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선지자 모세와 바울에 대한 불신이었다. 사랑의 끝에서 아내 에미마를 만났고, 아들 요한이가 태어났고, 조울증을 극복했다. 이제 나는 어머니와 아내와 아들을 위해 다시 교회에 따라간다. 낮에는 쿠팡에 다니며, 밤에는 아들 요한이와 놀고, 출퇴근 셔틀버스에서 글을 쓰며 작가를 꿈꾼다.
사랑 때문에 조울증에 걸렸고, 사랑 때문에 조울증을 극복했다는 서사.
나는 지금 그런 전설을 쓰고 있다.
결국 글은 읽히기 위해 쓴다. 다시 멤버십이 아닌 일반 글로 발행하기로 했다. 나의 글이 당신에게 닿기를 바라며. 내 글을 읽기를 원하는 당신에게 구독료를 내달라고 구걸할 수도. 안 읽어도 좋다고 비굴해질 수도 없으니.
멤버십 가입은 브런치 작가를 위한 후원 창구가 되었으면 좋겠다. 독점적으로 글을 읽는 권한이 아니더라도, 내가 응원하고 싶은 브런치 작가에게 힘이 되어 주는 그런 창구 말이다. 응원하기 댓글도 마찬가지다. 글을 읽다 브런치 작가를 응원하고 싶은 'feel'이 빡 쳤을 때, 그때가 바로 쏠 때. 아낌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