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시
나는 작가가 되고 싶다. 그래서 글을 쓴다.
내가 쓰고 있는 나의 첫 책은 사랑 에세이 《다함스토리》이다.
<깊은산속옹달샘 자서전 쓰기 워크숍> 출판기념회에서, 내가 지은 시에 코드와 멜로디를 입혀 만들어 작사 작곡한 자작곡 《나의 마음에 어느 고을엔》을 불렀다. 충주의 명상치유센터《깊은산속옹달샘》에서 열린 <자서전 쓰기 워크숍> 마지막 날 마지막 프로그램이었다. 워크숍 프로그램을 하며 각자가 썼던 글을 A4 용지 4장에 프린트하여 가운데 호치케스 박아서, 16페이지 자서전 소책자를 만들어 각자에게 나누어 주었다. 우리들만의 작은 축제였다. 흥이 있는 참가자들은 나와서 노래도 부르고, 시도 읊고, 장기자랑도 했다. 나는 워크숍 오는 날 혹시 필요할 것 같아서 기타를 메고 왔었다. 우리들의 축제에서 어느 분께서 부탁하셔서 기타로 반주를 해주기도 했다. 내가 지은 시에 기타 코드와 멜로디를 입혀 작사 작곡한 자작곡 《나의 마음에 어느 고을엔》을 불렀다.
충주의《깊은산속옹달샘》은 고도원의 아침편지의 고도원 작가님께서 운영하시는 명상치유센터이다. 올해 2020년 2월 자서전 쓰기 워크숍이 있어서 참가신청을 했다. 코로나 사태가 시작되기 전 등록을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코로나 사태로 전 세계가 뒤숭숭해져서 취소가 되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다행히 자서전 쓰기 워크숍까지는 진행되었고, 그 이후 옹달샘의 모든 프로그램은 한동안 취소되었다.
옹달샘에서 직접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아니었고, 기억의책 꿈틀 출판사의 박범준 편집장님께서 오셔서 진행해 주셨다. 꿈틀 출판사는 보통 사람들의 자서전을 내주는 출판사이다. 본인이 소장하고 지인들에게 선물하는 책을 만들어 주는 출판사이다. 젊은 친구들을 포함하여 다양한 연령대가 참석했지만, 주로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주로 오셨다. 옹달샘 자서전 쓰기 워크숍에 간다고 했을 때, 아버지께서는 "자서전은 나이 많은 성공한 사람들이 쓰는 것 아니냐?" 말씀하셨다.
나는 작가가 되고 싶다. 첫 번째 책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함스토리》라는 제목의 자서전적 에세이였다. 사랑을 꿈꾸다 상사병은 조울증이 되고, 모든 것을 잃고 방황하다 끝사랑 아내 에미마를 만나, 사랑으로 회복되고 행복해지고 다시 꿈을 꾸며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인생 전체를 다루는 사랑 에세이이다. 정통 자서전은 아니지만, 자서전적 성격이 강한 에세이로서 넓은 의미의 자서전이다. 내가 자서전 워크숍에 참여했던 이유는, 자서전 쓰기 워크숍의 기획의도처럼 개인 소장용 목적으로 책을 써서 가족과 친구들에게 나누는 목적은 아니었다. 글과 책을 쓰고 이를 들고 다니며 강연 등 다양한 활동을 하는 직업으로서의 작가가 되고 싶었다. 내가 쓰고 있는 책을 어떻게 출판하여 출간 작가가 될 수 있을까 하는 힌트를 찾기 위해 워크숍에 참가하였다. <깊은산속옹달샘 자서전 쓰기 워크숍> 마지막 프로그램 '출판기념회'에서 내가 살면서 쓴 단 하나의 시를 가지고 작사 작곡한 자작곡을 불렀다.
누구나 사는 동안에 한번 시인이 된다.
나의 마음에 어느 고을엔
작은 우물 하나가 있어
물 대신 사랑 흐르고
물고기 대신 희망 노닐고
나의 마음에 어느 숲에는
푸른 소나무가 한 그루
향내 나는 솔잎 위에는
솔벌레 한 마리 꿈틀꿈틀
해님 아파 눕고
달님 눈물 흘려
그 어느 따스한 숨결 찾아
느낄 수 없던 날들
얼음바람의 다스림에도
나의 마음속의 하늘엔
반짝이는 별 하나 있었으니
나 그 별님 하나를 사랑하네
대학교 때 교양과목으로 글쓰기 수업이 있었다. 교양이지만 선택이 아니라 필수과목이었다. 대학교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 수업이었다. 학생들을 시인이나 소설가 에세이 작가가 육성시키기 위해 설계된 수업은 아니었고, 학생들의 레프트나 보고서 논문 등의 실용적 글쓰기 능력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설계된 수업이었다. 문학을 포함한 모든 분야의 글쓰기를 다루었지만, 학생들을 문인으로 키우기 위한 수업은 아니었고, 살아가는 동안 모든 분야의 글쓰기를 교양인 수준으로 키워 주기 위한 수업이었다. 글쓰기 교양수업을 통하여 내 글쓰기 능력이 신장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주변으로부터 글을 잘 쓴다는 소리를 듣는데, 내 글쓰기 능력은 학교 수업이 아닌, 연애편지와 블로그 등을 쓰면서 재능이 발휘되기 시작했다. 1학년 때 글쓰기 교양 점수를 잘 받지 못하여, 나중에 재수강을 했다. 글쓰기 강좌 교수님께서 상품을 거시고 백일장을 여셨다. 전교 학생을 대상으로 한 큰 백일장이 아니라, 같은 시간 같은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는 강좌의 수강자를 대상으로한 작은 백일장이었다. 모든 종류의 글이 가능했던 것으로 기억했다. 새로 글을 쓸 에너지도 의지도 없어서 전에 지어 수정해 가고 있는 시 《나의 마음에 어느 고을엔》초기 버전을 제출했다.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았고, 강좌 내 백일장에서 높은 순위로 당선이 되어 상품을 받았다.
학교를 거의 10년 가까이 다니게 되었던 만학도가 되었을 때, 문학수업에 관심이 생겼다. 시인이나 소설가 등의 문인이 되고 싶었다. 고전을 체계적으로 읽어오지는 않았고, 그 당시 시점으로 현재 가장 따끈따끈 하게 발간된 최신 소설과 시를 찾아 읽었다. 고전에 재미를 맛보지 못했을뿐더러, 그때부터 고전을 읽어서 빛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전을 먹으며 자라 현재 가장 최근의 문체와 문제의식을 가지고 쓴 문학을 읽는 것을 나의 전략으로 세웠다. 소설가 김영하, 김연수, 김미월, 김언수, 박민규, 천명관 등과 시인 문태준 등의 그 시점에서 젊은 작가들의 최신 작품 등을 섭렵하였다. 국어국문과 소설 창작과 시 창작 수업을 들었는데, 각각 등단하신 왕성하게 활동해오신 소설가이시고 시인이신 노교수님께서 강의를 맡으셨다. 국어국문과 문예창작 수업이라고 하지만, 국어국문과 고학년의 실제 등단을 준비하고 있는 준 문학도를 위한 수업은 아니었고, 문학도로서의 관심을 키우기 시작하는 저학년을 대상으로 한 교양 수준의 문학수업이었다. 소설 수업은 평소에 내주는 글쓰기 과제 성실히 하고, 단편소설을 써서 제출하면 A+를 받을 수 있었다. 단편소설은 내도 되고 안 내도 되었는데, 다른 과제를 기본으로 다 하면 A0를 주고, 거기에 단편소설을 제출하면 A+를 주셨던 것 같았다. 출석, 발표와 수업 참여, 평소 창작 과제 등은 성실히 잘했는데, 단편소설을 제 날짜에 제출하지 못했을뿐더러, 단편소설이 갖추어야 할 하나의 이야기가 제대로 만들어지지도 않은 채 엉터리 작품을 냈다. 교양수업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단편소설이 아니더라도,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로 기한 내에 제출했으면 A+를 받았을 텐데, 나는 그 소설 창작 수업에서는 A0를 받았다. 시 창작 수업에서는 한 학생이 한 편의 시를 써 발표하고, 학생들끼리 비평하고 난상토론을 하는 수업이었다. 나는 새로운 시를 쓸 생각을 접고, 이미 써 놓고 계속 수정해 가고 있는《나의 마음에 어느 고을엔》의 그 당시 버전을 발표하고 제출하였다. 그 당시는 아직 미완성 상태였기 때문에, 완전성이 있는 시는 아니었기 때문에, 교수님께서 몇 군데 지적을 해주시기는 했지만, 대단히 좋은 평가를 받았다. 시 창작 수업은 평소에 만들어 놓았던 시를 발표함으로써 그렇게 쉽게 A+를 받았다. 신춘문예에 작품을 내거나, 문예지에 작품을 보내서 등단을 시도해 보지는 않았지만, 그 시절 나는 문학청년이었다.
2014년 가을에 조울증이 재발하여, 다시 정신병원에 입원하였다. 퇴원하여 집에 돌아왔지만, 병원에 있는 동안 체중이 늘어 비만이 되고, 무기력하게 지내는 모습을 어머니께서 안타깝게 보시고, 큰고모의 추천을 받아 고도원 작가님께서 운영하시는 명상치유센터 <깊은산속옹달샘>의 '녹색뇌 프로젝트'라는 치유 프로그램에 2주 동안 참여하게 되면서, 명상센터 옹달샘에 첫 발걸음을 디디게 되었고, 옹달샘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아파서 병들어 있던 나의 마음이 아직 열리기 전이어서 잔뜩 움츠려 있었다. 누가 보아도 마음이 병든 사람이었을 것이다. 프로그램과 프로그램 사이에 같은 기수에 참여한 참가들 가운데 친하게 지내며 같이 옹달샘 뒷산을 산책 삼아 오르고는 했는데, 함께 다니던 분 가운데 한 분께서 "다함 씨, 시 한 수 기억하는 것 있으면 읊어봐." 하시는 것이었다. "기억하는 시는 없고, 제가 지은 시가 하나 있기는 한데요."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되어 내가 지은 시를 읊게 되었다. 다들 좋다고 하였다. 그래서 내가 "이 시를 가지고 작사 작곡한 노래도 있는데요."라고 하였다. 같이 산을 오르며 그곳에서 나의 시를 가지고 만든 자작곡 《나의 마음에 어느 고을엔》을 불렀다. 같이 있었던 사람들이 "Amazing" 하다시며 칭찬해 주었다. 옹달샘 치유 프로그램에서는,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자기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우리 산책 모임 가운데 계셨던 한 분이 내가 지은 시와 노래가 좋다고 한 번 불러 보게 하자고 운을 띄우셨다. 그 자리에 고도원 작가님도 계셨고, 한 번 해보라고 판을 깔아 주었다. 시를 읊고 노래를 불렀다. 반응이 좋으니 나의 마음이 열렸다. 그동안 내가 사랑 때문에 헤매고 조울증으로 아프고 이러한 이유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는 모든 이야기를 꺼내 놓게 되었다. 고도원 작가님께서는 내가 장차 세계적인 작가가 될 수 있는 재능이 있다고 칭찬해 주셨다. 그것이 당장 되는 것이 아니라 몇 고비 높은 언덕을 몇 개 넘어야 할 것이라고 또 다른 조언도 해주셨다. 그런 말씀은 마음 한 편에 담아 두어야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야 한다. 내가 계속 좋은 글을 써서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인들에게 읽히면 세계적인 작가가 되는 것이고, 그런 칭찬을 들었다고 하더라도 그 길로 가지 않으며 아무것도 되지 않는 것이다. 사무엘이 다윗에게 장차 왕이 될 것이라고 머리에 기름을 부었지만, 사무엘이 특별히 다윗을 트레이닝시켜 준 것은 아니다. 그 예언을 마음 속 한 편에는 담아두되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왕이 되는 비전을 세운 후에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권력투쟁을 했기 때문에, 광야에서 양을 치던 목동이 고대 이스라엘 제국의 위대한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나의 마음에 어느 고을엔》이란 자작시 한편 자작곡 노래 한 곡으로 나는 옹달샘 시인이 되었고, 옹달샘 스타가 되었다. 그 전에도 시를 쓰고, 책을 즐겨 읽고, 글을 즐겨 쓰고, 문학수업을 들었지만, 본격적으로 작가의 꿈을 꾸게 된 것이 그때부터였다.
파리도 사랑하는데 파리 파리
파리도 사랑하는데 파리 파리
엉덩이 큰 파리 위에 파리한 파리 올라앉아 파리 파리
파리도 사랑을 하는데 파리 파리
하이얀 명상복에 노오란 잠바떼기
만 입어도 왜 그리 예쁘니?
하, 도대체 넌 정체가 뭐니?
예뻐요
사랑해요
무슨 말 더 필요하겠어?
그대를 사랑하는 이유
오직 그대만이 나를 사랑해요
그대를 사랑하는 이유
오직 그대만이 날 사랑해
그대를 사랑하는 이유
나는 오직 그대를 사랑해요
그대를 사랑하는 이유
나는 오직 그대를 사랑해
폭발적인 반응을 받은 노래 가사들이기는 했지만, 시는 아니었다. 살아오면서 이런 노래들은 여럿 작곡했지만, 《나의 마음에 어느 고을엔》이 내가 쓴 딱 한 편의 시이다. 이 시를 읊으면 주변 사람들이 시인으로서 재능이 있다고 하지만, 시 훈련을 해서 나온 시가 아니라 어쩌다 보니 쓴 시라서, 그 뒤를 잇는 시가 줄을 이어 나오지 않았다. 한 편의 시로 시인으로서의 재능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살아가면서 한 두 권의 시집은 쓰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내가 시인이 될 만한 재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신 에세이 작가로서의 내 안에 숨은 재능을 발견하여 육성하고 키우고 있다.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를 시도해 보려고 하지만, 그 가운데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은 에세이이다.
내가 40년을 살아오는 동안 한 편의 시가 내 마음에 고였듯이, 한 권의 에세이의 스토리는 내 마음에 이미 고여 있다고 생각한다. 내 안에 고인 그 사랑 에세이 《다함스토리》를 글로 책으로 풀어 내보려고 한다. 누구나 한 번은 시인이 된다는 말처럼, 누구나 살면서 한 권의 베스트셀러를 쓸만한 이야기는 찾아온다. 일단 한 권의 에세이를 써내려 출간한 후에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고, 내 안에 있는 수많은 생각과 이야기들을 여러 방면으로 펼쳐나가 보려고 한다. 쉬지 않고 글을 쓰고 책을 내서, 내 안에 잠자고 있는 거인을 깨우고 숨은 재능을 발현시켜 작가로서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