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다함 Apr 08. 2021

이렇게 황당한 일이

황당한 일을 당했다. 지금 나는 회사를 마치고 전철 타고 집으로 퇴근하는 중이다. 오는 일요일 마감인 밀리의서재 X 브런치 전자책 출판 프로젝트에 응모하기 위해 스마트폰 브런치 앱으로 퇴고하고 있는 중이었다.


"저기요. 혹시 지금 네이버 좀 볼 수 있나요?"


전철 좌석이 차서 서서 폰으로 글을 퇴고하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다가와서 네이버를 볼 수 있는지 부탁을 했다. 폰이 꺼졌나 보다. 폰이 꺼졌다고 해도, 전화를 할 수 있는지 부탁하는 사람은 보았어도, 네이버를 볼 수 있나 부탁하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 당황스러웠지만, 아직까지는 당혹스럽거나 황당하기까지는 않았다. 그냥 뭐 검색할 것이 있나 생각했다. 고치고 있는 글이 있는데, 호흡을 멈추고 처음 보는 사람의 부탁을 들어준다는 것이 불편하기는 했지만, 네이버 좀 보여 달라는 부탁을 거부하기도 그랬다.


나는 네이버 웨일 브라우저를 쓴다. 네이버 빠여서만은 아니고, 웨일이 크롬이나 삼성 브라우저보다 좋다고 생각해서도 아니다. 그냥 개인적으로 가장 편해서이다. 웨일 브라우저를 열고 네이버에 접속해 주었다.


"프로야구 좀요."


프로야구를 검색해 달라니 이때부터 황당하기 시작했지만, 그때까지는 단순히 응원하는 팀의 현재 스코어가 궁금한가 싶었다. 그러더니 자기 손으로 내 폰을 터치하여 LIVE 생중계 동영상을 켰다.


"몇 아웃이에요? 원아웃?"


여기서부터 이 남자의 술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이 시점에는 화가 나기보다 좀 무서웠다. 폰으로 응모 마감을 앞둔 글을 퇴고하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이 사람의 부탁을 들어주면서 시간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이 순간부터는 시간이 아까워서가 아닌, 더 이상 이 사람과 엮이지 않으면서도, 자극하지 않고 이 사람을 털어 내야 했다. 아직까지는 화도 욕도 나오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살짝 두려웠다. 세상에는 호의를 베풀지 말아야 할 상대가 있다. 아직 나에게 적의를 보인 것은 아니지만, 이런 종자의 사람은 예측이 불확실하다는 것을 안다. 나쁜 사람인지, 좀 이상한 사람인 것뿐인지, 아니면 단지 프로야구의 현재 스코어와 아웃 카운트가 궁금했는지 알 수 없었다. 자기 폰이 안 된다고 모르는 사람을 붙잡고 프로야구를 보여 달라고 하며, 현재 스코어와 아웃 카운트 확인을 넘어, 내 폰으로 라이브 중계를 계속 보여 달라는 남자는, 위험한 종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류는 자극하지 말고 피해야 한다.


"죄송하지만... 지금 제가 하고 있던 일이 있어서... 바빠서..."


정중하게 그 남자를 보냈다. 그 남자는 나를 떠나 서있는 다른 승객을 찾아가 프로야구 LIVE 생중계 시청을 동냥했다.


'저런 미친 새끼가 있나?'


그제야 분노가 치밀었다. 글 쓰던 것을 중단하고 일단 저장했다. 새 글을 쓰기 위해 브런치 글쓰기 탭을 눌렀다. 분노를 글감 삼아 퇴근길 오늘의 글을 쓴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래간만에 친구를 만났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