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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May 15. 2021

아내가 울었다

   아내가 울었다. 토요일 아침에 일어난 나는 마루에 나와 노트북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었다. 오늘은 내가 먼저 일어났고, 아내는 더 자다 일어났다. 아내가 누군가 전화를 하는 가 싶더니, 네팔 말로 많은 말을 하면서 울었다. 전화 상대는 캐나다에 외국인 노동자로 가 있는 아내의 오빠였다.

   네팔 고향에 안 좋은 일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네팔 장인어른께서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후에도 아내는 더 담담하게 웃었지만, 그냥 내 느낌에 마음속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아내가 오빠와 통화를 하면서 오열하면서 울면서, 내가 무슨 일인가 걱정이 돼서 방에 들어가며 나가라고 해서, 네팔 고향에 나쁜 소식이 있나 싶었다.

   그것은 아니었다. 아버님 병세는 어제와 같다. 처음보다는 많이 좋아지셨다고 한다. 마음을 터 놓을 수 있는 오빠와 대화하면서, 마음속에 있는 것들이 터졌던 것 같다. 오빠와 이야기하다 보니 울음이 터졌던 것이지, 안 좋은 일이 있어서 울음이 터진 것은 아니란다.


   네팔은 우리랑 좀 다른가 보다. 우리는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으면, 강력한 격리와 역학조사에 들어가고 치료를 받는데, 네팔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병원에 입원을 한다고 해도, 침상이 부족해서 산소 호흡기를 달아야 하는 사람들도 바닥에서 산소 호흡기를 달고 있다고도 한다. 나라나 병원에서 확진 판정자에게 병원에 입원하라고 하지도 않고, 병원이 집보다 치료에 더 낫지도 않다. 확진이 되어 다른 차를 탈 수는 없고, 앰뷸런스를 불러서 병원에 가서 약을 타 오시려고 하는데, 병원 전화가 안 받는 다고 한다.

   어떤 면에서 네팔은 우리보다 코로나에 대한 대응이 엄격하다. 심할 때는 LockDown을 하고, 군경이 길에 총을 가지고 다니면서 통행을 통제한다. 코로나만큼 경제도 중요한 우리나라에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이다. 그렇지만 가까운 곳에서 확진자가 나와서 그 내막을 알고 보니, 확진자에 대한 격리 역학조사 치료에 대해서는 시스템이 부재한 것 같다.

   사실 아내가 네팔인이지만 네팔 상황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가장 가까운 아내이지만 그런 것들을 아내에게 꼬치꼬치 물어볼 수도 없다. 아내는 내 아내이지 나의 네팔 문화 선생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아내도 네팔 상황에 대해 아는 것만 알지, 모르는 것은 모른다. 내 나라 시스템을 내가 다 아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있는 일이라고는, 병원 치료비 걱정하지 마시라고 평소보다 많은 돈을 보내드리고, 치료를 위해서 가족이 기도해 드리는 밖에 없다.


   아내를 통하여 걱정한다고 하여 아무것도 좋아지는 것도 없으니 아무 걱정하지 마시라고 전했다. 아내 가족도 아내와 마찬가지로 힌두 사회에서 독실한 크리스천 기독교인이라서, 아버님께 성경 중 치료에 관한 말씀을 만 번은 읽으면서 외워 보시라고 말씀드렸다. 나의 첫 아이디어는 아니고, 가족 중 한 분이 누군가 그렇게 해서 암과 코로나에서 나았다고 카톡을 주어서 아버님께 전달했다. 나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가, 날날이 나일롱 신자였다가, 전투적 무신론자가 되었다가, 어머니와 아내의 기도로 다시 기독교인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기도한다고 암이 낳고 코로나가 낳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말씀 읽고 기도하면 내 영혼이 강건해지고, 내 마음이 평안해진다. 영혼과 마음이 강건해지고 평안해지면, 바이러스와 싸우는 내 육체의 면역력도 강화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영혼과 마음의 건강이 병마와 싸우는데 도움이 될 것 같고, 그게 아니더라도 병마와는 별도로 걱정이라는 마구니를 털어 버리는 것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아내 오빠가 캐나다로 외국인 노동자로 가면서, 아내가 나와 한국으로 오면서, 네팔 고향집에 와이파이를 놓아드렸다. 국제전화는 비싼데 와이파이 통화는 무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통신료를 자동이체나 모바일 뱅킹으로 입금하면 되는데, 네팔은 매달 통신사에 가서 낸다. 자동이체나 모바일뱅킹이 거기도 있는지 없는지는 모른다. 다만 우리가 네팔에서 신혼 생활할 때도 가서 냈고, 아버님 고향에서도 가서 낸다. 네팔 아버님 확진 판정 이전에도, 인도에서 코로나가 터져서 네팔도 상황이 좋지 않아 시내에 나가기가 어려워져서 일주일 정도 와이파이가 되지 않았다. 아버님께서 코로나 검사받으러 지인 오토바이를 타고 시내 병원에 가시면서 통신료를 내셔서, 다시 자유롭게 통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네팔 장인어른은 좀 좋아지신 것 같다. 병원에 가서 약이라도 타 와야 하는데, 병원에 전화해도 전화 자체를 받지 않는다고 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아내 오빠가 캐나다로 일하러 가기 전에, 일본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일했었는데, 일본에서 번 돈으로 고향 집에 2층 집을 지어드렸다. 크지 않지는 작지만 아담한 집이다. 1층에는 내가 본 세상에서 가장 작은 구멍가게를 하시면서, 집 뒤에 텃밭을 하시면서 사신다. 처음에 장인어른이 농부라 해서 농장 규모가 어느 정도 되겠지 생각했는데, 텃밭 정도 하시는 정도다. 텃밭과 가게를 하시면서 주로 손주를 돌보시며 사신다.

   장인어른 장모님은 네팔의 다른 평균의 청춘들처럼 이른 나이에 결혼하셔서 상대적으로 젊으신 편이다. 연세가 아직 많지 않으셔서 그나마 걱정이 덜 되기는 한다. 울던 아내는 다시 담담해져서 웃는다. 평소보다 더 밝게 살려고 하는 것 같다. 본인이 무너지면 가족이 무너진다 생각한 본능인 것 같다. 그렇지만 마음이 마음이 아닐 것이다.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이 웃고, 담담한 모습이었는데, 오늘 아침 캐나다에 있는 오빠랑 통화하면서 오열하면서 울었다. 특별한 일이 있어서 울었던 것은 아니고, 그냥 아버지와 가족 이야기를 오빠랑 하다 보니 눈물이 났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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