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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May 20. 2021

그날이 오면

나는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나 자신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아내 뱃속의 아내와 나 사이 아가 태명 사랑이도 사랑하지도 않는다. 돈을 사랑하지도, 지금 다니는 회사와 거기서 하는 일을 사랑하지도 않는다. 쾌락이나 금욕을 사랑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 하여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는 것 또한 아니다.


난 글쓰기를 사랑한다. 책 쓰기를 사랑한다. 브런치를 사랑한다. 브런치 작가로서의 삶을 사랑한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책을 쓰며 브런치 작가로 살아가는 그 자체를 사랑하지만, 그 자체가 목표와 목적은 아니다.


난 브런치를 기반으로 세계적인 글로벌 작가가 될 것이다. 내가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를 꿈꾸는 것은, 결코 현재 내 글쓰기 재능에 대하여 자뻑에 빠진 것은 아니다. 보통 사람보다는 많은 책을 읽고 많은 글을 쓰고 많은 경험을 했지만, 글로 먹고살거나 글을 좋아하는 글쟁이의 책 읽기와 글쓰기의 평균치에 상당히 못 미친다는 것을 내가 제일 잘 안다. 물론 글쓰기 책 쓰기의 소재인 경험 만으로만 치면 자웅을 겨를 상대가 없다. 어느 정도 이상의 본인 만의 삶의 경험치를 넘은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의 경험치를 수치적으로 비교할 수 없다. 꼭 이루어야 하는 성취가 있는데, 내가 그 성취의 필요충분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면, 나만의 고유의 개성과 장점으로 승부하는 것이다. 내 능력이 부족하면 세상에 나를 사랑하는 나의 팬 나의 빠순이 빠돌이를 대량 생산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세상에는 내가 제 아무리 부족해도, 나를 구매하려는 소비자 판로가 있으면, 어떤 식으로든 나를 가져다 매력적인 상품으로 만들고 마케팅하여 유통 판매할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다. 난 내 글쓰기의 완성도보다는 나의 스토리와 나의 사연으로 승부하기로 했다. 글쓰기의 최종적 완성도는 출판사와 에디터의 힘을 믿어 보기로 했다.


내가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겠다는 것은 대단히 현실적인 선택이다. 국내 베스트셀러 작가로서만은 평생 안정적으로 글 쓰고 글을 바탕으로 활동하면서 안정적으로 가정경제생활을 할 수 없다. 다른 일을 해야 한다. 그러나 세계 도서시장에 가능한 모든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시장에서 팔리는 글로벌 작가가 되면 호구지책 걱정하지 않고 글 쓰며 자유롭게 살 수 있다. 또 세계시장에서 팔린다 소문이 나면, 국내 시장에서도 다 사서 본다. 대한민국은 그런 면에서 희한한 나라다. 글로벌 스타가 되는 것이, 어떤 관점에서 국내 스타가 되는 것보다 쉬어 보인다.


그렇다 하여 지금 나는 출판사에게 써 놓은 글을 투고하며 전전하지 않는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브런치의 모든 공모전에 응모하고, 출판사 대표나 에디터 또는 플랫폼 브런치 스태프 중 하나가 내 팬이 될 때까지 기다린다.


회사가 망하지 않는 이상, 내가 회사에 사표를 내지 않는 이상, 정년 없이 다닐 수 있는 회사에서 날 불렀다. 회사 대표가 내 동생이고, 회사가 1인 창조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단계에서 대표가 날 채용하는데 다른 직원 눈치 본 필요가 없다. 현재는 직원이 총 7명인데, 대표를 제외하고는 내가 1호 직원이기도 하고, 다른 직원 채용 면접에 내가 대표 옆에 같이 있었다. 정직원이 되기 전에도 아주 오랫동안 필요할 때마다 가서 정기적으로 알바를 하기도 해왔다.


비굴하게 출판사에 투고를 하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기는 하다. 국비지원으로 출판 편집디자인 과정을 이수해 책을 디자인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출판사 취업할 실력은 되지 않지만, 책을 책처럼 상품성 있기 충분하게 만들 기술은 있다. 내가 1인 출판사를 만들 수도 있고, 이미 다 알아보고 견적을 뽑아 놓았기 때문이다.


모든 가능성을 다 검토해 보았는데, 현재 시점의 잠정적 결론은 낮에는 회사 다니며 돈 벌고, 밤과 쉬는 날에 글을 쓰기로 했다. 회사 다니고, 브런치에 글을 쓰고, 각종 브런치북 공모전에 응원하다 보면 언제 어디에선가 콜이 오겠지 하는 마음을 먹기로 했다.


회사에 다니지 않아도, 글 쓰고 책 쓰며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으로 호구지책이 해결되는 날, 그날에 나는 회사에 사표를 던질 것이다.


그날이 오면 난 더 이상 글쓰기 책 쓰기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아내와 아가 나 우리 가정을 사랑할 것이다.


글쓰기와 책 쓰기를 소홀히 하겠다는 게 아니라 평생 하겠지만, 그날이 오면 거기에 내 영혼을 팔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날이 오면 글쓰기와 책 쓰기를 내 인생의 중심에 놓지 않겠다는 이야기다. 나와 아내와 우리 아가의 삶을 살면서, 그 이야기를 글로 담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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