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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Jun 05. 2021

왜 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는가?

나의 첫사랑은 짝사랑이었다. 1995년 봄에 시작되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이다. 첫사랑 소녀를 알고 지낸 것은 1학년 때부터였다. 같은 고등학교 동아리 기독학생반과 찬양선교단의 멤버로 함께 활동하였다. 1학년 때는 소녀에게 아무런 설렘이나 마음이 없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고, 나는 기독학생반의 부회장이 되었고, 소녀는 기독학생반의 회장이 되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시작된 소녀를 향한 짝사랑은, 7년이 지나서야 내 마음에서 완전히 떠나갔다. 소녀와 동아리 임원으로서 함께 활동한 것은 단 1년뿐이었고, 같은 학교를 다녔지만 고3 때는 거의 만날 일이 없었고, 졸업 그 이후에는 연락 조차 닿지 않았다. 길에서 한 번 스쳤고, SNS에 몇 번 글을 남겼을 뿐이었다.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면 청소시간에 학교 앞에 있던 집으로 달려가 우산을 가져다가 소녀에게 가져다주었다. 학교에서 서울랜드로 야영을 갔고, 밤에 춥지 말라고 미리 준비한 겨울 파카를 소녀의 텐트에 가져다주었다. 생일선물로 주려고 노트 한 권에 매일매일 손글씨로 편지를 썼지만 전하지 못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십자가에 자기 몸을 달리신 그 사랑으로 소녀를 사랑하고 싶었다. 이현세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에서 남주인공 까치 오혜성이 여주인공 엄지를 자신의 인생이 파멸하기 까지 사랑했던 그 사랑으로 소녀를 사랑하고 싶었다. 소녀에게 내가 예수님이나 오혜성도 아니었고, 소녀도 엄지가 아니었다.


짝사랑은 상사병이 되었고, 상사병은 조울증이 되었다. 나는 소녀를 사랑했지만, 소녀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21살 때 군대에서 조울증에 걸리지 않았었더라면, 짝사랑이었던 첫사랑이 7년까지 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군생활을 하면서 소녀를 잊고, 제대 후 복학하여 바로 다른 누군가를 사랑했을 것이다. 조울증이 짝사랑의 마음을 비정상적으로 증폭시켰다. 조울증이 아니더라도 내가 지독하게 요란하게 소녀를 짝사랑한 것 또한 사실이지만, 소녀를 향한 깊은 상사병과 군대에서의 정신적 집단 괴롭힘으로 조울증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그렇게까지 내 마음이 증폭되지 않았을 것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사랑을 해야지' 하고 사랑을 시작한 것이 아니다. 어느 순간 소녀가 내 마음에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느 순간 내 마음은 소녀로 설레었다. 내 심장이 내 의지가 아니라 Automatically 자동적으로 Bounce Bounce 두근 대기 시작했다. 원래 심장의 근육이, 뛰게 하고 싶다고 뛰고, 뛰지 않게 하고 싶다고 뛰지 않고, 하는 그런 성격의 근육이 아니다. 심장의 근육이 본래 내 의지와 상관없이 뛰기도 하고 멈추기도 하는 불수의근이다.

어느 순간 내 의지와 관계없이 심장이 스스로 뛰기 시작했고, 나는 그 심장의 박동을 멈출 방법은 알지 못했을 뿐이고, 비정상적인 심장의 박동으로 나의 심장은 고장 났고, 심장이 관장하는 마음이란 가상의 공간이 완전히 박살 났다. 전통적으로 마음의 공간이 심장이라고 생각해 왔으나, 과학과 이성의 발달로 마음의 공간은 뇌라는 생각 되어지고 있다.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는데, 인간 정신의 0과 1은 인간의 뇌에 위치하지만, 그 인간 정신이 빔프로젝트로 심장에 마음과 영혼의 영상을 쏘고 있다고 생각한다. 논쟁이 있을 수 있는 부분인데, 나는 마음과 영혼은 가상의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가상이라는 것이 덜 중요하거나 실존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ICT 기술의 발달로 우리는 가상의 세계를 살고 있지만, 가상 또한 하나의 중요한 실존이 되었다. 인간 정신의 물리적 저장장소는 뇌에 있지만, 뇌에서 마음과 영혼을 빔프로젝트로 쏘는 메인 스팟 존이 심장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마음이 아프면 심장이 저릿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모든 남녀의 모든 사랑이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어떤 사람의 어떤 사랑은 '내가 이런 이런 사람을 사랑해야지.' 하고 전략 전술 작전계획을 짜고 시작되는 게 아니더라. 어느 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 심장이 뛰기 시작하더라. 심장 뛰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때에 따라 빛나는 청춘이 되기도 하지만, 불로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인생 개박살 나서 빛 잃은 청춘이 되기도 한다. 날 사랑하지 않는 사랑은 시작하지 않는 것이다. 바로 접어야 한다. 그게 나도 상대도 좋다. 누구에게는 언제 어디에서는 그게 내 마음대로 안 되지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제발 나를 떠나 부디 너를 찾아 이젠 놔도 되는 너의 나를
분명 다시 돌이킬 수 있으니 더 늦기 전에 어서 나를 떠나가
우리 헤어지면 잠시 아파 정말 잠시일 거야 세상도 잘했다고 말할 거야

임창정의 《힘든 건 사랑이 아니야》


날 사랑하는 사람을, 나 또한 사랑하는 사람을, 서로가 서를 사랑하는 사람을,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게 정답이다. 근데 말이지 그게 내 마음대로 되면 내 인생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 청춘의 모든 사랑이 실패로 돌아가지 않았고, 그 사랑 중 하나의 사랑이라도 성공했더라면, 내 인생의 최고의 사랑 아내 에미마를 만나지도 않았을 것이기는 하다.


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살기 때문이다. 마음 가는 대로 살다 보면 꽃길을 만나기도 하지만, 자갈길에서 인생 종 칠 수도 있다. 마음 가는 대로 가는데 일이 술술 잘 풀리고, 나뿐 아니라 내 주위의 모두가 해피하다면, 그것은 신의 인도와 가호 가운데 있을 가능성이 높다. 마음대로 가는데 일이 꼬이고 막히고, 나를 포함하여 주위 모두가 우울해지면, 그것은 신의 뜻을 거스르고 있는 가능성이 높다.


세상에서 승리하는 것과 세상과 대적하여 싸우는 것과는 다르다. 세상 사는 동안 순간순간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지, 세상과 싸우는 삶이 되면 인생 너덜너덜해진다.


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는 이유는, 내 마음 가는 대로 내 심장 뛰는 대로 살아서 그렇다. 내 꼴리는 대로 살아서 그렇다. 아니면 아닌 것인데. 안 되는 일은 안 되는 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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