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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Jun 06. 2021

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날 사랑하게 만드는 법

그런 법은 없다. 불행하게도 세상에 그런 법은 없다. 그런 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나, 천지개벽할 때나 일어나는 일이다. 내가 사랑하지만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어느 날 갑자기 긍정적인 의미로, 내가 낯설게 보이지 않는 이상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고2 때 시작된 첫사랑을 짝사랑으로 잘못 끼운 이후, 나의 모든 사랑은 줄줄이 도미노로 짝사랑이었다. '최고의 사랑' 아내 에미마를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기 전까지 말이다. 나의 사랑의 최종 전정은 99패 1승이었다. 마지막 한 번의 승리로 쪽박이 대박이 되었다.


고2 때 나는 기독학생반 부회장이었고, 소녀는 회장이었다. 같은 동아리 회장 부회장 임원으로서 함께 일을 하며 친하게 지냈다. 나에게는 소녀가 이성으로 느껴졌고, 소녀에게 나는 동아리 친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소녀를 사랑하게 된 지 1년 정도 되었을 때 소녀에게 손편지로 고백했다. 소녀는 사귀는 남자 친구가 있다고 했다. 결혼까지 생각하는 사이라고 했다. 물론 오래가지 않고 나중에 깨졌다.


대학 다닐 때, 가끔 같이 길을 걷고, 대화를 하고, 밥을 먹는 친구가 있었다. 운명과도 같은 깊은 사랑을 느꼈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스쳐가는 바람과 같은 가벼운 설렘이었다. 손편지를 썼다. 상대가 같이 밥을 먹자고 했다. 밥을 먹으면서 자신은 부모님끼리 약속한 약혼자가 있다고 했다.


어느 해인가 조울증이 재발하면서 직장을 그만두고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았다. 몸과 마음의 치유를 위해 어머니께서 명상센터에 보내주셨다. 명상센터 직원 아침지기가 예뻤다. 명상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 집에 돌아온 나는, 다시 짐을 싸서 청년자원봉사로 명상센터에 다시 올라가 1달 동안 자원봉사를 했다. 자원봉사 이후 명상센터에서 진행하는 동유럽 지중해 15박 16일 명상치유여행에 갔다. 청년자원봉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기 전 날, 시집에 손편지 엽서 한 장을 넣어 아침지기에게 고백을 했다. 난 주로 말보다는 손편지로 고백을 했다. 아침지기는 자신은 처음 누군가를 만나면 인연이고 아님을 느낄 수 있는데, 나는 그런 종류의 인연으로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는 알았다고, 더 이상 부담은 주지 않을 테니, 지금 당장 결말을 단정 짓지 말고, 각자 있는 곳에서 서로의 삶을 응원하자고 했다.


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나를 사랑하지 않았을까? 첫사랑과 그 이후의 사랑을 분리해서 생각해 본다. 첫사랑에 대해서는, 나를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했었다. 우리는 '같은 동아리 임원'으로서 친하게 지냈고, 소녀도 나에 대해 좋게 생각했다. 다만 나를 남자로 사랑하지 않았을 뿐이다. 첫사랑 소녀 이후에 아내 에미마를 만나기 전까지 나의 모든 사랑의 실패는, 첫사랑의 실패로 상사병과 조울증에 걸려 인생 두 동강 난 남자를 어느 여자가 연민할 망정 사랑할 수는 없었다. 또 이렇게 돌아보면, 날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했고, 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았다. 명상센터에서 청년자원봉사를 할 때, 내가 사랑했던 그 아침지기 말고 다른 아침지기가, 새벽에 새벽기도 같이 가자고 나를 꼬셨다. 하루 이틀 같이 가다가 말았다. 그 아침지기도 예쁘고 착했다. 그때 그 시절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뿐이다. 그 아침지기와 매일 새벽기도를 같이 갔으면, 오래도록 아니면 지금까지 매일 새벽기도를 같이 다니고 있을까? 모른다. 지금은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 엄마가 되어 잘 살고 있다.


상대에 대한 호감은 1초도 안 되는 순간의 인상으로 결정된다고도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호감이 없던 사람에게 호감이 생기기도 하는데, 나에게 평범한 상대가 특별한 상대로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이 일어나는 '역사적 사건'이 있지 않은 이상, 한 번 아니면 계속 아닌 것이다. 평범한 사람이 긍정적인 의미로 낯설게 보이지 않는 이상, 친구는 친구일 뿐 사랑이 되지는 않는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을 알았을 때, 바로 그 상대를 내 마음속에서 놓아줄 수 있다면 그것이 서로에게 가장 좋다. 연인이 아니더라도 좋은 인연이 될 수 있는 좋은 사람이라면, 연정을 내려놓고 좋은 친구로 지내면 된다. 그 연정이라는 게 내가 내려놓고 싶다고 내려놓아 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은 인생 경험을 통해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연정을 내려놓는 내공과 기술이 필요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 그 마음을 돌릴 수 있는 방법은 세상에 없다. 상대방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나의 삶을 살아야 할 때이다. 상대방의 눈에 나는 좋은 사람이지만, 이성으로서 찌질해 보이고 설렘이 느껴지지 않을 때, 그때는 내가 미칠 듯 사랑하는 그 사람에 대한 마음을 내려놓고 내 삶을 살아야 할 때이다. 내 인생을 사는 사람은 그 사람이 빛나고,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전혀 다른 사람이 되고, 사람들에게 나라는 존재가 낯설게 보이기도 하다. 그 시점이 되면 내가 사랑했지만 날 사랑하지 않았던 내가 꽁무니를 따라다녔던 사람이 나의 꽁무니를 따라다닐 수도 있다. 그러면 결론은 어떻게 나느냐? 예전에 내 눈에 예쁘고 착했던 사랑했던 사람이 더 이상 그토록 예쁘고 착하지는 않다. 더 예쁘고 착한 다른 사람이 눈에 보인다.


사랑지상주의자였던 나는, 지금은 사랑꾼이 되었다. 사랑에 인생을 걸었다가 인생 개쪽박이 나본 유경험자로서, 사랑은 인생을 걸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다. 상대방의 마음은 상대방 것이라서, 내가 어찌할 수 없다. 사랑은 내 의지로 움직일 수 없는 심장의 근육과도 같은 불수의근이라서, 내가 사랑하는 대상도 내 마음이 고맙고 안타까워도 사람 사랑하는 마음을 본인이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좋아라는 하는데 사랑이 되지 않는데 그것을 어떡하랴?


사랑에 인생 걸지 마라. 사랑은 인생을 걸 관념이 아니라, 인생을 함께 할 관계이다. 내 삶에 충실하고 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빛이 난다. 그 어떤 페로몬 향수보다 매혹적인 정신적인 향기가 난다. 그런 사람이 되면 가만히 있어도 사람이 줄줄 따른다. 내 삶을 살다가 내 주변에서 날 바라보고 있는 사람을 나도 바라보고 있으면, 날 향go 설레고 있는 사람에게 나도 설레면, 그 사람이 나의 인연이다.


난 사랑할 때마다 정성스럽게 손편지를 썼다. 그거 생각만큼 효과 없다. 부담스럽기만 한다. 사랑은 그렇게 어렵게 하는 것 아니다. 나에 대하여 마음이 열린 사람에게 '자니?' 하고 카카오톡 날리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카톡 선물하기로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두 잔과 조각 케익 쿠폰 하나 보내며, '우리 커피 한 잔 할까?'라고 톡을 보내는 것으로 충분하다. 건물 상층에 CGV가 있는 스타벅스에서 만나, 아메리카노 마시고 조각 케익 먹고 수다를 떨다가, '우리 영화나 하나 볼까?' 뻐꾸기 하나를 날리는 것으로 충분하다. CGV에서 영화 한 편 보고 나와서 '우리 청량리에서 열차 타고 정동진 해돋이 보러 갈까?' 하고 개수작을 부리는 것으로 충분하다. 참고로 더 이상 청량리에서 정동진까지 가는 직행열차는 없다. 동해역에서 갈아타야 한다. 청량리에서 정동진까지 가는 직행열차가 없어지고, 동해역을 찍고 가야 하게 된 것도 꼭 나쁜 것은 아니다. 동해역 주변에는 정말로 아무것도 없다. 동해역은 정말 그냥 항구다. 사람이 살만한 동네도 놀만한 동네도 아니다. 동해역을 빠져나오면 정말 을씨년스럽다. 그 을씨년스러움이 누구와 단둘이 함께라는 것이 긍정적인 의미가 될 수도 있다.


단 '작업의 정석'은 있다. 나에게 '이성적인 호감'이 있는 상대에게 작업을 걸어야 한다. 나에게 '인간적인 호감'만 있는 상대에게 작업을 걸면, 상대와 '인간적 관계'마저 박살이 날 수 있다. '인간적 관계'마저 박살이 나면 '이성적 관계'로 전이될 한 터럭의 가능성마저 사라지고 만다.


사랑은 인생을 거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다. 나의 삶을 살다 보면 반드시 날 바라보는 사람이 나타난다. 날 바라보는 사람을 나도 바라보고 있지 않으면 15도 살짝 피해 가면 되고, 날 바라보는 사람을 내 눈도 바라보고 있으면, 시간을 함께 하면 된다.


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날 사랑하게 하는 방법은 없다. 사랑에 인생 걸지 말고, 집착하지 말고, 내 삶을 살다 보면, 나에게서 아우라와 광채와 향기가 발산되기도 하다. 그 아우라가 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켜, 나를 낯설게 보게 되고 날 사랑하게 되기도 한다. 그때 그 사람은 더 이상 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날 사랑하는 다른 사람이다. 그때도 여전히 그 사람이 사랑스러우면 함께 길을 걸으면 되고, 예쁘고 착한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오면 그 사람과 삶을 함께 하면 된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 대우 김우중 -


세상은 넓고 예쁘고 착한 여자는 많다.
- 짝사랑 외길 최다함 -


Photo by Everton Vil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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