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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Jun 09. 2021

호갱이 되었다

"고객님, 폰 개통하신 대리점에 한 번 나와보셔야겠어요. 받으실 수 있는 혜택이 있어서요."

"어떤 종류의 혜택이지요?"

"대리점에 직접 방문하셔야지 확인 가능하십니다."


올해 초였다. 작년 새 스마트폰을 사고, 6개월이 넘었을 뿐이었던 시점이었다. 이벤트에 참여하려고 스마트폰을 구매한 대리점에 찾아가기에는 그 거리가 부담스러웠다. 작년에 나는 그전에 쓰던 스마트폰 약정이 끝나갈 시점에, 스마트폰을 길에서 떨어뜨려 액정이 나가서 새로 살 수밖에 없게 되었다. 단순 액정 파손이 아니라, 터치도 안 먹고 불도 번쩍번쩍하고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할 상태가 되었다. 그때 나는 국비지원으로 강남역 학원에서 출판편집디자인을 배우고 있었기 때문에, 급한 마음에 점심시간에 그 동네 KT 대리점에 가서 새 폰을 샀다. 작년에 새로 개통한 폰은 갤럭시 20이었다. 불만 없이 대단히 만족하며 쓰고 있었다.


"어떤 종류의 혜택인지 말씀해 주셔야 제가 방문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집이 좀 멀어서요."

"대리점에 직접 방문해 주셔야지 확인 가능하십니다."


나는 내가 이미 세상에 대해서 알만큼 알고, 면역될 만큼 면역되어서, 속을 것 같으면서도 안 속는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아직 나는 어수룩했다. 기존 고객을 위한 이벤트라고 생각했지, 당연히 대리점에서 나에게 뭘 팔려는 프로모션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저는요. 다른 혜택은 전혀 필요 없고요. 지금 스마트폰 비용이 많이 나와서요. 통신료를 좀 낮출 수 있으면 좀 고민해 볼게요."

"고객님, 그것도 대리점에 나와 보셔야지 확인 가능하십니다."


그렇게 해서 귀한 시간을 내서 강남역 KT 대리점에 갔다. 갤럭시 S21을 아주 좋은 조건으로 주겠다는 것이다. 이전 폰을 보상판매도 해주고 말이다. 난 갤럭시 S20로 바꾼지도 얼마 안 되었고, 잘 쓰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S21로 바꿀 필요가 없었다. 나는 다만 스마트폰 통신료를 좀 낮출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을 뿐이다. KT 대리점 직원은 S21로 바꾸시면 더 낮은 가격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헌 폰에서 새 폰으로 바꾸었는데 더 낮은 요금을 내고 쓸 수 있다는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결론은 월 나가는 스마트폰 통신료는 좀 낮추었다. 그런데 약정이 48개월 4년이었던 것이다. 그것을 모르고 사인한 것도 아니고, 설명을 듣고 사인한 것이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을 받지 못했다. 나는 당장 통신료를 낮출 수 있다는 생각에, 24개월 약정이 48개월 약정이 되는 것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지 못했다. 갤럭시 21이 충분히 좋아서 파손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48개월 이상 써도 되는데, 문제는 48개월 동안 기기값을 분납하며 상당한 통신료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달 내는 통신료는 조금 줄어들었다지만, 그것을 48개월 내게 된 것이다.


나중에야 내가 스스로 사인한 것이지만, 강남역 KT 대리점 이 사람들에게 눈탱이를 맞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마트폰 산지가 얼마 안 된 상황에서, 다른 곳에서 나에게 새 폰 사라고 전화할 수는 있는데, 6개월 전 같은 대리점에서 프리미엄 스마트폰을 구매한 고객에게 새 폰으로 바꾸라고 대리점에 나오라는 게 상식적으로 고객에 대한 기만인 것이다. 내가 눈 뜨고 코 베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난 개인적으로 S20가 더 좋았다. 내가 갤럭시 S21이 불만인 것은 출고가를 낮추기 위해서 다른 여러 가지를 뺏기 때문은 아니다. 출고가를 낮추려고 조정한 한 가지고 거슬릴 뿐이다. 그게 뭐냐면, 8기가 메모리이다. 메모리가 최신 프리미엄 폰인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적은 용량이다. 메모리가 딸리는 게 실제로 느껴진다. 다른 데서는 크게 느껴지지 않는데, 사진이나 비디오를 찍다 보면, 화면의 랙이 걸리는 게 느껴진다. 갤럭시 S21의 사진 기술이 전작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난 게 특징이라는 평가도 있던데, 나는 오히려 다른 부분은 만족하는데, 사진이나 비디오를 찍을 때 화면의 랙이 걸리는 게 불만이다. 사진이나 비디오의 질과는 상관이 없는 것 같은데, 사진을 찍으려고 피사체에 포커스를 하고 있는데, 화면이 순간적으로 눈에 띄게 살짝씩 멈추었다 가면 큰 문제는 없는데 피곤한 것이다.


수원 사는 고객을 강남역까지 불러 가지고, 같은 대리점에서 새 폰을 산지 6개월 정도 밖에 안 된 고객에게, 사탕발림으로 꼬셔서 6개월 된 폰을 보상판매시키고 새 폰을 사게 하는 게 이게 말이 되는 가 생각이 시간이 지난 후에야 들었다. 내가 그 유명한 호갱님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사인한 내 실수이지만, '이 새끼들을 소비자원에 찔러.' 하는 마음도 살짝 들었다.


그렇지만, 아주 잠깐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었다. 소비자원에 찌른다고 나의 피해가 실질적으로 보상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런 일들로 내 에너지와 정력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지금 S21 폰은 디자인도 예쁘고 사진의 성능도 좋고 만족하는데, 나는 전작 S20도 괜찮았다.


요금제를 가장 낮은 것으로 쓰려고 했는데, 6개월 동안은 비싼 것을 써야지 할인 혜택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6개월 후에 낮추기로 했는데, 스마트폰을 팔 때는 내 폰 번호를 어떻게 알고 지네들이 알아서 전화를 하더니, 요금을 낮추는 날은 내가 기억했다가 직접 전화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이것도 이해가 안 갔다. 자기네가 폰을 팔 때처럼, 나에게 때를 맞추어 전화를 해주면 될 텐데 말이다. 그날이 와서 요금을 낮추고 불필요한 부가서비스를 탈퇴하려고 받아 놓은 번호로 연락을 했더니, 해당 직원이 학교에 다니면서 수업을 듣고 있다며, 바로 처리되게 해드리겠다고 했다. 바로 연락이 안 와서,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 또 스마트폰 요금으로 눈탱이 맞을 것 같아서, 신촌에서 퇴근 후 직접 강남까지 갔다. 직접 가서 최대한 낮출 수 있는 요금제까지 낮추어 놓고 왔다.


선택은 내가 한 것인데, 폰을 최신 프리미엄 폰으로 바꾼 지 6개월 조금 지난 고객에게, 신규 폰이 나왔다고 그것 팔려고 "고객님, 혜택이 있으신데요. 매장에 한 번 방문해 주세요."라고 전화하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짓인지 모르겠다. 그 대리점에게 나는 어수룩한 손님이었고, 눈탱이를 제대로 맞은 것이다. 다른 매장도 아니고, 같은 매장에서 폰을 산지 얼마 안 된 고객에게, 새 폰을 판다는 게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FunkyFocus님의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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