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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Aug 16. 2021

퇴근 시간 땡 하면 일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반칙이다

신촌역 회사에서 수원 집으로 퇴근길, 신도림역에서 전철을 갈아타는 대신, 수원으로 가는 7770번 버스 정거장이 있는 사당역 4번 출구에서 내렸다. 사당역 4번 출구 바로 앞에 있는 경기도와 사당역을 오가는 광역버스 정류장에서 바로 수원역으로 향하는 7770번을 갈아타려고 했다. 수원역에 가서 우리 집 바로 앞까지 오는 시내버스를 갈아타도 되고, 수원역 몇 정거장 못 미쳐 내려서 집으로 걸어와도 된다.


우리 회사는 10시 출근 7시 퇴근이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나의 친동생인 대표가 오랜 기간 1인 기업을 운영하다가, 올해 법인 주식회사 스타트업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처음 같이 시작한 멤버들과 그냥 10시에 출근하고 근무시간 8시간 + 점심시간 1시간 이렇게 되어 7시에 퇴근하게 된 것이, 그 후 입사하게 된 다른 직원들도 긍정적으로 생각하여, 10시 출근 7시 퇴근이 되었다. 거기에 무슨 대표의 큰 기업가 정신이나 철학은 없다.


우리 회사는 야근과 회식이 없다. 아주 없는 것은 아닌데 없다. 야근이라고 한다면, 대표가 시킨 것이 아니라, 일하다 나 스스로 끊고 집에 가기 그럴 때나, 내일 와서 해도 되는 일이 아니라 외부와 관련된 일을 하다 보면 스스로 야근을 하게 된다. 공식적 야근은 아니고, 내가 근무시간 내에 일을 끝내지 못했는데, 그냥 내가 끝내고 가고 싶거나, 웬만하면 다음 날 와서 하면 되는데, 그게 안 되는 일일 때 야근을 하게 된다. 공식적인 야근은 없다.


야근이 없다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데, 대표는 매일 야근해도 직원들에게 야근을 시키지 않는다. 직원들에게 이상적인 회사이기도 하지만, 회사 대표 입장에서도 야근수당의 부담이 있어서이기도 한 것 같다. 빨리 지금 준비하는 것을 출시해서 수익을 창출하여 최대한 빨리 손익분기점을 넘어야 하는 부담이 있지만, 그렇다고 맞추어야 할 납기일은 없기 때문이다.


직원 한 명이 떠나고, 한 명이 들어온다. 둘의 업무 영역은 물론 다르다. 떠나는 직원은 개발자고, 들어오는 직원은 홍보 마케터다. 떠나는 개발자는 계약기간이 끝나고, 스스로 더 연장할 생각이 없고 다른 계획이 있어서 떠난다고 한다. 회사와 갈등은 없고 잘 지냈는데, 회사를 떠난다고 해서, 하고 싶은 일이 생겨서 회사를 그만두나 했더니, 계약기간이 끝나 연장을 고민해야 될 때가 되었고, 다른 인생 계획이 있어서 떠나는 것 같다.


야근은 없고, 7시 땡 하면 나도 더 이상 회사 일은 생각하지 않는다. 공부를 해도 회사 관련 공부는 하지 않았다. 회사 업무 역량을 키우기 위해 개인 시간에 공부하지 않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동안은 회사는 그냥 돈 벌기 위해서 다니는 것이었지, 회사 일이 내가 평생 하고 살 일도 아니고, 내가 개발해야 할 내 역량도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면, 글 쓰며 살고 싶었던 나는, 회사 끝나면 글쓰기 모드나, 글감 모으기 모드로 들어갔다.


그런데 오늘은 일진이 좋지 않았다. 회사 일에 불필요하게 몰입했다. 퇴근 시간 전에 일을 끝내고 7시 땡 되면 퇴근을 해야 하는데, 7시 20분이 넘어서야 퇴근을 했다. 또한 퇴근을 한 후에도 내일 회사 일을 생각하고, 그 일을 위해서 공부를 했다. 대표가 시킨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한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무급이다. 이런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나는 회사에서 이런저런 일을 다 하는, 좋게 말하면 대표 비서 역할을 하는 매니저, 나쁘게 말하면 잡부다. 객관적으로 말하면 매니저인데, 매니저가 소기업에서는 잡부나 마찬가지이다. 쓰레기 분리수거 청소도 하고, 회사에서 운영하는 주방 보조 일도 하고, SNS 등 디자이너가 하지 않는 디자인도 하고, 보고서 기획서도 만들고, PPT도 만들고, 견적서도 만들고, 다 한다. 대표는 일을 하는 위치가 아니라 일을 시키는 일이기 때문에, 또 일을 시키느라 일을 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다른 직원들 하는 일이 아닌 모든 일은 나에게로 온다. 내가 주로 하는 일 중에 하나가 SNS 디자인과 홍보인데, 그 일이 새로 들어오는 홍보 마케팅 전문가와 일이 겹친다. 앞으로는 홍보 마케팅 직원이 전략을 짜고 방향을 설정하면, 내가 그 방향에 맞게 SNS나 각종 홍보물을 만들어야 한다. 홍보 전단, 홈페이지 디자인, 식당&카페 메뉴판 등은 회사 전속 디자이너가 하고, 나는 SNS 카드뉴스 만들고, 블로그 디자인하고 글 쓰고, 인스타 하는 등 마케팅을 한다.


오늘 퇴근 후 내가 해야 할 일은 내일 대표와 새로 입사한 홍보 마케팅 직원과 회의를 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내가 비전문적으로 대표가 하라니까 전문성과 전략 없이 멘땅에 헤딩이라도 해왔던 것에 대해서, 우리 회사가 지금까지 전문인력 없이 우리끼리 이빨 없을 때는 잇몸으로 해왔던 마케팅에 대해, 내가 이야기를 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홍보 & 마케팅 분야에서 어떻게 따로 또 같이 일을 분담하고 함께 해야 할지, 생각을 나누어 보아야 한다.


그래서 새 직원에게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한다. 내일 회사 가서 준비해도 되는데, 뭔가 기죽지 않고 보여주고 싶었다. 외부에 내보내는 리포트가 아니라, 대표와 의사소통하는 문서는 디자인 신경 쓰지 않고 빠르게 의사소통만 가능하게 내용만 전달하는데, 입사한 홍보 & 디자인 전문 직원에게 전문인력이 없을 때 대신 빈틈을 매워왔던 내가 좀 그럴듯하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사당역에서 수원 집까지 오는데 한 시간 정도 걸리는데, 그 한 시간을 스마트폰이 다 꺼져서, 일을 생각하면서 와야 하는데, 스마트폰 없이 읽을 책도 없이 그 시간을 그렇게 오기가 힘들었다. 벌써 우리는 스마트폰을 손에 달고 살아가는 포노 사피엔스가 되었다. 좋게 말하면 포노 사피엔스고, 나쁘게 말하면 스마트폰 중독자이다. 스마트폰이 꺼지면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멘붕이 오니 나도 중증 스마트폰 중독자이다. 다만 나의 스마트폰 중독이 치료가 필요한 것은 아닌 것이, 스마트폰으로 사악한 일을 하거나 시간을 죽이고만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으로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고, 스마트폰이 내 손에 붙기 전에 스마트폰 없이 해왔던 거의 모든 일을 이제는 스마트폰과 함께 좀 더 효율적으로 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중독이 나 자신과 이웃의 해 보다는 득이 되기 때문에 나쁜 중독은 아니다. 물론 아내 에미마가 스마트폰을 붙들고 사는 나로 인해, 스마트폰에게 질투를 느끼는 것 하나 빼고는 말이다. 

내가 사당역에서 수원역으로 가는 버스를 타는 버스 정류장 앞에 경기도가 만들어 놓은 <경기 버스 라운지>가 있다. 버스 타는데 기다리는데 힘들지 말고, 여기서 쉬고 있다가 버스 오면 나가서 타라고 만들어 놓은 장소이다. 3층 4층 두 개층을 쓰는데, 빌딩 자체가 대지 면적이 작기 때문에 두 층을 합쳐도, 코로나 없을 때 꽉꽉 채워 앉아도 두 개층에 48명밖에 수용할 수 없다. 물론, 손님이 없어서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내가 세 번을 방문했고, 인터넷에서 검색을 많이 해 보았는데, 손님이 많아도 나 외에 한 두 명 밖에 없어서, 작은 수용 공간에 손님이 많이 오면 어떨까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도에서 그걸 만든다고 9억 원을 썼다는데, 정말 아담하지만 괜찮은 카페 인테리어로 만들었다. 와이파이가 흐르고, 충전기도 빌려 주고, 경기 버스 라운지 안내 홍보가 붙어 있는 코로나 마스크 한 장도 기념품으로 준다. 다만, 외부 음식 반입 안 되고, 사 마실 음료수도 없고, 물만 공짜로 마실 수 있다. 대형 TV가 두 대가 있는데, 하나는 스마트폰으로 보기에는 스케일이 작은 서울에서 경기로 가는 버스 안내가 크게 나오고, 또 하나의 TV에는 경기도 방송이 나오는데, 대선에 출마하는 도지사 양반이 도를 위해 불철주야 일하시는 모습이 나온다. 그런데 그걸 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런데 거기서 버스를 기다릴 수는 없다. 거기서 버스를 기다리다 보면, 다른 줄 서 있는 사람이 먼저 타기 때문이다. 어차피 버스를 탈 때는 내려가서 줄의 맨 뒤에서 다시 기다려야 한다. 다만, 목마를 때, 소변이 마려울 때,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을 할 수 있는 전기와 와이파이가 필요할 때, 그 모든 게 갈급하지만 돈이 없거나 쓰기 싫을 때, 그럴 때 들어가 잠시 쉬다 나올 수는 있다. 인테리어와 흐르는 음악과 쾌적함은 그 어떤 좋은 카페 못지않다. 다만, 음식 반입도 안 되면서 아무것도 먹을 것을 돈 주고도 사 먹을 수 없으머, 그 어떤 음료도 돈 주고도 사 먹을 수 없다. 정수기에서 탁자에 세워둘 수 있는 종이컵도 아닌 손에만 들고 있을 수 있는 세 모금 컵으로 물만 마음껏 마실 수 있다.


또 좋은 게 있다. 청년을 위한 최고의 직장이다. 3층에 한 명, 4층에 한 명, 아침 10시에서 밤 10시까지 이니 교대로 2명씩 총 4명 정도 일 할 것이다. 상사도 없고, 밑에 관리해야 하는 부하직원도 없고, 몇 오지 않는 손님 오면 열체크 잘하나 확인만 해 주고, 방문일지 쓰게 하고, 손 소독해 주고, 방문 사은품인 마스크 한 장 주고, 자기 자리에 돌아가서 평화로운 피아노 음악을 들으며 시간 보내다가 집에 가면 된다. 아마도 경기도 산하 기관에서 하는 것이니, 비정규직 알바도 아닐 테고, 공무원 내지는 준공무원 신분일 것이다. 아무리 천국 같은 곳에서 일해도 하루 8시간을 어디인가 묶여 있어야 하는 것은 노동이지만, 그럼에도 천국 같은 곳에서 평화롭게 일할 수 있는 청년 일자리 창출이다. 그런 직장에서 일할 수 있다면, 거참 누구 아들 딸인지 참 부럽다. 공정하게 그 자리를 차지했는지, 아니면 엄마 아빠 찬스를 쓰고 들어 갔는지, 그것은 모를 일이다.


충전기를 빌려 스마트폰을 충전하면서, 노트북으로 컴퓨터를 했다. 돈을 주고도 아메리카노 한 잔도 사 먹을 수 없었지만, 공짜로 와이파이와 전기를 쓰고, 공짜로 정수기 물을 마시고, 공짜로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그곳에서 스마트폰 충천을 하며, 노트북으로 내일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했는데, 여러 가지 생각만 왔다 갔다 했지 정작 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시간만 지나갔고, 집에 늦게 들어왔고, 집에서 아내 에미마는 밖에서 쫄쫄 배고프게 귀가할 나를 걱정하며 목 빠지게 기다렸다.


결국 집에 늦게 들어왔는데, 아무것도 한 것은 없었다. 아내 에미마에게 늦게까지 일하다가 잘 테니 먼저 자라고 했는데, 아내가 일찍 자고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라고 했다. 아내 에미마에게 그러기로 약속하고, 대신 일은 내일 아침 하고 30분만 브런치랑 블로그 쓰고 자겠다고 했는데, 30분이 75분이 되어 간다. 신경이 곤두 선 아내가 잠 못 자고 누워 있을 방에 들어가, 배 속에 아기가 무럭무럭 크고 있는 만삭인 아내 에미마의 배에 손을 대고 기도해주고 자고,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할 일을 하고 회사에 출근해야겠다.


아니 회사 일은 어쨌거나 회사에서 하고, 집에서는 글감을 모으고 생각을 하고 글을 쓰고, 아내 에미마와 뱃속의 아기와 놀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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