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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Sep 05. 2021

간만에 네팔식당에서 네팔 음식을 사다 먹다

병원에 가는 날이었다. 이 주에 한 번 격주로 상담을 하고 약을 타기 위해 병원에 간다. 2000년 21살 때 군대에서 조울증이 시작되었다. 나에 맞는 적정 용량의 약을 먹어 약물농도를 유지하면, 정상의 기분을 유지하면서 아무 문제없이 살아갈 수 있다. 


조울증이 어느 정도 이상 진행되면, 완치의 개념은 없다. 그러나 충분히 조절할 수 있다. 자신과 맞는 주치의 선생님을 만나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니며, 꾸준히 약을 먹으면 괜찮다. 다른 환자의 경우는 모르겠으나, 나의 경우는 그랬다. 약을 안 먹으면 심란해지고, 약을 먹으면 괜찮다. 물론 나의 최고의 약은 아내 에미마이다.


내가 가는 병원은 화성 봉담에 있다. 가는데 버스 기다리는 데까지 여유 있게 한 시간은 족히 잡아야 하니 짧은 거리는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 집 앞에서 시내버스를 타면, 병원 앞에서 내리기 때문에, 교통이 나쁘다고 볼 수도 없다.


집과 병원을 이어주는 버스는 수원역을 지나간다. 병원 가는 버스가 매일 출근길 수원역에 가기 위해 타는 버스이기도 하고, 병원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수원역 근처에서 뭘 사서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잠시 내리기도 한다.


월급이 들어온 주 토요일이었다. 은행 계좌가 빵빵하니, 마음도 든든하고 넉넉해진다. 출산을 앞두고 있는 아내 에미마에게 "월급 들어왔는데 네팔 식당에서 뭐 사다 줄까?"라 했더니 "보자." 그런다. 긍정적인 답변이다.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 인도 네팔 레스토랑에 들려, 아내가 이미 전화로 주문해 놓은 네팔 음식을 포장해 오기로 했다.


네팔에서 결혼 후 아내와 5개월 정도 네팔에서 신혼생활을 했는데, 네팔의 한국식당은 비싼 편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네팔식당도 비싼 편이다. 내가 가끔 아내를 데리고 가려고 해도, 아내가 가지 말자고 한다. 네팔식당에 가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돈이 많이 들어서이다. 둘이 먹을 만큼 과하지 않게 시켜도, 35000원 정도는 나오니, 우리 형편에 평소에는 갈 수 없다. 그 돈이면 둘이서 순대국을 몇 번 먹는다. 이번에는 출산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또 월급도 들어와 여유가 있는 때라, 큰 마음먹고 사다 먹기로 했다.


물론 직장생활을 하는 지금은, 아내가 원하면 언제든 네팔식당에서 사다 먹을 형편은 된다. 그렇게 안 하는 것은, 그렇게 하면 다른데 쓸 돈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대신 수원역 근처 네팔 식자재 마트에서 재료를 사다 집에서 해 먹거나, 아니면 집 앞 마트에서 한국 재료 사서 네팔 스타일로 해 먹기도 한다. 아내가 직접 요리하는 음식이 식당 이상으로 맛있기도 한다. 아내는 요리를 아주 수준급으로 잘한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식당에서 먹는 맛은 또 다르기 때문에 가끔 네팔 식당이 필요하다.


출산을 코 앞에 두고 있어, 아내 에미마가 거동을 하기 어려워, 병원에서 상담받고 약을 타고 돌아오는 길에, 수원역에 들려 아내가 주문한 음식을 들고 왔다. 


돈이란 게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만, 일단 하고 싶은 일을 언제나 할 수 있는 정도만 되어도 좋겠다. 주말마다 네팔 식당에 갈 수 있고, 매일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고, 아내의 가족이 보고 싶을 때 비행기 타고 네팔에 갈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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