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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Oct 24. 2021

스물한 살, 조울증

2000년 스물한 살 군대에서 조울증에 걸렸다. 조울증에 대하여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원인은 없지만,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 유전, 스트레스가 조울증의 주요 원인으로 추정된다. 다수의 의사와 환자는 스트레스보다 유전에서 조울증의 원인을 찾고 싶어 한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래.' 보다는 '나는 원래 조울증으로 태어났어.'라고 생각하는 게 마음이 편한지도 모르겠다. 나는 원래 조울증으로 태어나지도 않았고, 처음부터 신경전달물질이 불균형하지도 않았다.


조울증은 마음의 병이 아니라 뇌의 병이다. 마음의 병과 스트레스로 뇌가 고장이 나서 신경전달물질이 불균형을 이루어 조울증이 될 수는 있다. 스트레스가 뇌의 물리적 고장을 낳고, 뇌의 물리적 고장이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을 낳고, 신경전달물질이 불균형이 기분조절의 실패를 낳아 조울증이 될 수는 있다. 그렇기 때문에 조울증의 치료는 조울증의 원인이 된 스트레스에 대하여 심리치료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약으로 내 몸 안에 약물농도를 유지하여, 신경전달물질을 균형적으로 조절하여, 기분을 정상 스코프로 유지하는 것이다. 병원 잘 다니고, 약을 잘 먹어도, 조울증 환자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재발할 수 있기 때문에, 재발방지를 위해 마음 관리도 중요하지만, 이는 부차적인 문제이다. 병원 지속적으로 다니며, 약을 꾸준히 먹는 게 조울증 극복의 시작이다.


병원 다니고 약 먹는 게 조울증 극복의 시작이고, 정신과 전문의가 다루는 영역이라는 것이지, 그것이 조울증 극복의 끝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규칙적인 생활, 마음과 스트레스 관리, 일과 학업 등 일상생활에 충실하기, 건강한 사회생활과 인간관계 등을 통해 평생 자신을 관리해 나가는 것이다. 조울증이 한 번 제대로 시작되면, 완치의 개념은 없다. 다만, 조울증은 극복할 수 있다. 조울증의 극복은 약을 안 먹어도 괜찮은 완치가 아니라, 약 먹고 자신의 삶을 관리하고 조절하여 별 일 없이 사는 것이다.




짝사랑이었던 첫사랑이 상사병이 되고, 군대 적응에 실패하고 정신적인 집단 괴롭힘을 당하여,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로 나의 조울증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강원도 양구에서 군생활을 했다. 육체적인 군사훈련을 잘하지 못해 교관에게 많이 혼나기는 했지만, 사단 훈련소 생활은 재미있었다. 선임 없이 같은 기수 동기들끼리 내무반 생활을 했기 때문에, 내가 부족해도 전우애로 격려해주고 도와주었다.


사단 신병교육대 군사훈련을 마치고 처음 배치받은 자대는, 단 하루도 군장을 풀지 않고 매일 양구의 험준 산령을 타 다니며 매복 훈련을 하는 보병부대였다. 생각은 군 생활에 집중하지 못하고 첫사랑 소녀에게 가 있었고, 평생 운동을 안 하고 살아온 내가 애초에 감당할 수 없는 부대였다. 하나님께서는 감당하지 못할 시험은 주시지 않는다는 것은 믿음이요 신앙고백이지, 살다 보면 모든 이에게는 아니지만 어떤 이에게 어떤 때에 감당하지 못할 시험이 찾아온다.


몸이 힘드니 부대원들은 항상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 있었다. 부대 훈련과 일을 열심히는 했지만 제대로 잘하지 못했고, 총기와 구두를 아무리 닦아도 반짝반짝 빛나기는커녕 얼룩만 졌다. 같은 소대원들도 일머리가 없고 말귀 어두운 나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았을 수도 있고, 누구 하나 어리바리한 분풀이 대상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맞은 적은 없지만, 수도 없이 때리려는 시늉을 하며 나를 위협하며돌아가며 나를 갈구다.


날마다 돌아가며 나를 괴롭히는 부대원들이 미웠다. 부대 생활 너무 힘드니, 영창이나 군기 훈련소에 가도 좋으니 다른 부대로 옮겨 달라고, 윗선에 소원수리를 할 마음이 목까지 다. 신병이었기 때문에 소원수리를 올렸었더라면, 내가 아닌 선임들이 징계를 받았을 것이고, 부대가 한 차례 홍역을 치렀을 것이다. 그러던 중 마음에 갑자기 그런 깨달음이 다. '아무도 미워하지 말자. 마음에 골병이 들자면 나만 골병들자.' 이런 깨달음이 찾아온 다음 날 선임들이 나에게 물었다. "혹시 너 위에 아는 빽이 있니?"라고 물었다. 나에게 빽이 있었다면, 먼 부대에 할아버지 아시는 분이 직업군인인데, 신병 막 자대 배치 받자마자 집으로 수신자 부담으로 공중전화 한 통화할 수 있었던 딱 그 정도의 빽이었다.


전출명령이 났다. 매일매일 산을 타 다니는 보병부대에서, 논산 신병들이 자대 배치를 받기 전 쉬어가는 '사단 보충대'의 관리병으로 전출이 났다. 쉽게 말하자면 '군 휴양소'이다. '보병부대 소총수 땅개'에서 '군 휴양소 관리병'으로 되었다. 매일이 훈련이었던 전 부대와는 달리, 옮겨간 사단 보충대는 훈련이 전무했다. 1년에 한 번 하는 유격훈련 조차도 없었고, 굳이 훈련이 하나 있다면 식목일에 나무 심는 것 밖에 없다는 그런 부대였다. 사단 보충대 대원들이 10명 정도라, 가족 같은 분위기였다. 나중에 대략의 사정을 들어보니, 사단 보충대에서 병사들 간에 큰 사고가 났었다고 한다. 워낙 소문난 땡보 부대이다 보니, 높으신 분들의 자제들이 아빠 찬스 써서 오던 부대였을 것이고, 군기가 빠졌는지 부대를 해산시키고 재편성할 만큼의 큰 사고가 터졌고, 내가 그 부대로 차출되었다. 사단 전체에서 뺑뺑이 돌려 운 좋게 재배치되는 로또를 내가 맞았는지 모르지만, 사단 인사 시스템에 재배치가 필요한 심각한 관심병사로 올라와 있었을 수도 있다. 모르긴 몰라도, 제 아무리 당나라 군대라도 부적응 병사를 어떤 식으로든 관리하는 시스템이 있을 것이다. 사고가  대를 재구성을 하면서, 사단 인사담당자가 나를 선발했는지도 모른다.


처음 부대는 지옥이었고, 나중 부대는 천국이었다. 처음 부대 선임들은 악마의 자식들이었고나중 부대 선임들은 천사의 자녀들이었다. 나중 부대 선임들은 나를 친동생처럼 아들처럼 사랑해 주고 아껴 주었다.


최악의 부대에서 최고의 부대로 간지 1주일 만에 첫 조울증 에피소드가 시작되었다. 갑자기 내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고, 나에게 찾아온 평화를 전하면 세상을 고통 속에서 구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평화의 방법이 군대 지휘체계를 타고 청와대로 올라가면, 내일 당장 전 세계 모든 군인이 총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갈  있을 것 같았. 내 마음에 평화가 왔고, 그 평화를 이웃에 전하면 당장 세계평화가 올 것이라 생각했다.


이러한 종류의 사고가 조울증의 가장 대표적인 증상인 과대망상이다. 조울증을 양극성 기분장애라고도 하는데, 기분이 고양이 되면 일반적인 상식의 범위를 넘어서는 과대망상이 온다정신질환으로서의 조울증은 단순히 기분의 좋고 나쁨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니다. 기분의 좋고 나쁨의 스코프의 편차가 선을 넘는 것이다.


세계평화의 방법을 중대장에게 보고했다. 그때 깨달은 세계평화의 방법을 지금은 잊어버려 기억에 아주 다. 중대장은 "다함아, 좋은데 가자!" 하면서 일체 다른 말을 하지 않고, 나를 차에 태우고  어디론가 향했다. 편의점에 들러 아무거나 마시고 싶은 것 하나 마시라고 다. 나는 마시고 싶은 것이 아닌 제일 비싼 것을 하나 골랐다. 청와대로 가는 길인 줄 알았는데, 가보니 군 병원 정신과 병동이었다.


주사를 한 대를 맞았고, 인간의 모든 오욕칠정이 사라졌다. 코끼리도 쓰러뜨린다는 코끼리 주사라 불리는 주사가 있는데, 아마도 그 주사가 그 주사였던 것 같다. 통제가 되지 않는 정신질환자에게 그 주사를 놓아, 재우는 것으로 치료가 시작되기도 한다. 반복해서 놓는 것은 아니고, 통제가 불가능할 때 처음 일회성으로 놓고, 며칠 격리실에 두면 어느 정도 조절이 된다.


정신병원에 수차례 입원해 보았던 내가 본 정신병원은, 드라마나 영화에 보는 것처럼 감옥 같은 독방에 가두어 두는 곳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정신병원은 폐쇄병동이지만, 그 폐쇄라는 것이 병원과 층의 입구를 폐쇄하는 것이지, 환자들의 방을 감옥처럼 폐쇄하는 것은 아니다. 병원 입구나 층 입구에 철문이 있는 것 외에는 일반병동이랑 똑같다. 같은 층의 환자들이 거실을 함께 공유하며, 거실에서 TV 보고, 책 보고, 이야기하고,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자유롭게 자기 방 자기 침대에 가서 쉰다. 격리실이 있는데, 난동을 피우거나 자신과 타인을 상해하는 경우, 조절이 될 때까지 의료법 안에서 격리한다.


조울증은 어려운 병이다. 우울증보다 극단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이 더 다. 조울증의 우울증 시기뿐 아니라 조증 시기에도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처음 발병한 지 20년이 넘어 조울증을 조절하며 살아가는 입장에서, 조울증은 어려우면서도 쉬운 질환이다. 약물치료가 절대적이다. 정기적으로 병원 다니면서, 지속적으로 약을 먹으면 괜찮다. 약 먹으면 괜찮고, 안 먹으면 심란하다. 조울증이 어려운 것은 환자나 가족이나 꾸준히 약으로 기분을 조절하고 관리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심란해지면 입원하고 약을 먹고, 괜찮다 싶으면 주치의 상담 없이 자의적으로 약을 끊었다가 대형사고를 치고 다시 입원하게 된다.


조울증이 우울증이나 조현병 등 다른 정신질환보다 지랄 맞은 것은, 과대망상 가운데서 자신의 모든 돈을 전부 다 쓰고 다니기도 한다. 있는 돈 다 쓰면 끌어올 수 있는 돈 끌어다 다 쓴다. 성욕이 증가하여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다니기도 한다. 돈 쓰는 것과 성욕의 증가가 결합이 되어, 비정상적으로 증가된 성욕을 해소하는데 자신의 통장의 모든 잔고를 비우고 가산을 탕진하기도 한다. 과대망상 가운데 사업을 벌여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내가 조울증을 극복했다고 하면 오해하시는 분이 있는데, 약 끊고 완치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나는 두 주에 한 번씩 주치의 선생님을 만나 상담을 받고, 약을 꾸준히 먹으면서 기분을 조절 관리하고, 좋은 아내 에미마를 만나 결혼도 하고 가정을 이루고 아이도 생기고, 낮에는 회사에 가고 밤에는 글을 쓰면서, 보통 사람들처럼 별일 없이 산다. 약 끊고 잘 산다는 의미의 극복이 아니라, 약 잘 먹고 기분을 조절하고 관리하며 별일 없이 산다는 의미의 극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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