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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Nov 03. 2021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The Messiah will come again Roy Buchanan

늦게 퇴근했다. 7시 퇴근인데 6시 반에 금방 끝날 수 없는 일을 시작하게 될 때면 퇴근시간을 정하지 않는 게 마음의 평화에 다. 우리 회사에 야근은 없다. 다만, 퇴근 시간을 훌쩍 넘겨야 끝낼 수 있는 일이 퇴근을 코 앞에 두고 생긴다. 그냥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이 회사가 아니더라도 내일 다른 회사에 갈 수 있는 사람이라면 싸울 수도 떠날 수도 있다. 오란데는 여기밖에 없고, 회사가 망하지 않는 이상, 내가 개지랄을 하지 않는 이상, 여기서는 날 나가라 하지 않는 곳에서 나는 협상력이 없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나의 길을 가고 싶지만, 내가 하기 싫은 일을 하는 순간순간의 지옥보다, 내가 벌어 내가 쓸 수 있는 수입이 없는 지옥이 더 깊은 지옥이기에, 어떻게 대안이 없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하며, 그날을 기다릴 수밖에 없을 때가 있다.


나에게 주 예수가 오시는 날은, 회사에 가지 않고 아내와 아들이 있는 집에서, 책 읽고 글 쓰고 넷플릭스 보고 유튜브 하며 작가로서 밥 먹고 사는 것이다. 시작은 월 200만 원 정도면 좋다. 지금은 한 달 벌어 한 달 사는 월급쟁이니 월급으로 따지지만, 작가는 연봉으로 따져야겠다. 그 연봉이란 것이 대단히 불규칙하겠지만 말이다. 글 써서 연봉 2500 이상이 보장되는 날이, 나에게 주 예수가 오시는 날이다. 수원에서 신촌을 오가며 불행하게 일하며 지금도 그 정도의 보수에 못미치기에, 작가의 불안정성을 고려해도 그 정도의 최저 생계선이 보장되며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그 날이 그분이 내게 오시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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