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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Nov 03. 2021

기억의 글감을 상실하고 상실한 기억의 글감을 얻다

오래간만에 옛날 추억이 생각났다. 한 편의 글로 쓰기에 아름다운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글로 남기기 전에 무의식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메모라도 해놓았으면 추억을 놓치지 않았을 텐데, 옛 추억이 오늘의 좋은 문학이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휘발되었다.


좋은 글감이 될만한 옛 추억이 떠올랐다 사라졌다는 기억만 남아있다. 역사 중 역사의 내용은 사라진 채 어떤 역사가 있었는데 기록에 남아있지 않다는 사라진 정보에 대한 정보처럼, 잠시 떠올랐던 옛이야기는 사라지고, 그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사라졌다는 기억만 남아있다.


그래서 진정한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처음에는 배가 고프더라도 글만 써야 한다. 삶에 치이고 쪼그라들면, 글감을 기억하고 의미 있는 형태로 가공하는 뇌의 기능도 쪼그라든다.


또 한편으로는 좋은 글감에 대한 강박도 놓을 필요가 있다. 사람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역량의 100%를 다할 수 없다. 내 능력의 60% 이상만 발휘하고 살아도 훌륭한 인생일 수 있다.


빛나는 추억 이야기는 기록하지 못한 채 무의식의 수면 아래로 사라졌지만, 대신 나는 기억의 상실에 대한 글감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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