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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Dec 02. 2021

네이버 쪽지가 와서 형의 조울증 극복을 위한 카톡 상담

문득 네이버 쪽지를 확인했다. 보통 대부분의 쪽지는 광고 또는 알림이었다. 오늘 온 쪽지는 나에게 간절한 상담을 요청하는 쪽지였다.

 

20년째 조울증을 앓는 형이 있는 동생의 쪽지였다. 오래전 내가 조울증 카페에  조울증을 극복한 사연을 우연히 읽었나 보다.


자주는 아니고, 어쩌다 한 번씩 그런 연락이 온다. 조울증을 앓고 있는 본인 또는 가족이거나, 브런치 작가에 여러 번 떨어진 브런치 작가 지망생으로부터이다. 내가 성공한 사람이라 상담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처절한 실패를 극복한 경험을 보고 연락이 오는 듯싶다. 스무 살 때 시작된 조울증을 거의 이십 년 만에 극복하여 사람답게 살고 있고, 브런치 작가에 열두 번 떨어지고 열세 번 째 붙었기에, 그런 이유로 나에게 조언을 구하는 요청이 자주는 아니고 어쩌다 한 번씩 온다.


어제 브런치 글에 언젠가 조울증 극복 전문가로서의 작가로 활동하고 싶다고 썼다. 오늘 그런 쪽지가 왔다. 어제 쓴 브런치 글을 보고 연락은 아니다. 오래전 네이버 카페에 쓴 글을 보고 쪽지다.


형이 조울증에 걸린 지 이십 년이 넘었는데, 병에 대한 자각인 병식이 아직도 생기지 않아, 약을 꾸준히 먹지 않고 수차례 재발하여 병원 입원도 종종 한다는 것이다. 지금 형이 병원에 입원해 있어 형을 도울 방법을 찾다 나에게 까지 연락이 온 것이다. 그 병이 원래 그런 병이다. 환자가 병을 인지하고 두 주에 한 번씩 병원에 외래로 꾸준히 다니며, 약을 매일 꾸준히 먹고, 공부나 직장생활 등 자신의 삶에 충실하면, 별 일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병인데, 조울증 환우가 그런 인식을 가지는 게 어려운 게 문제다. 나는 우울증은 잘 모르지만, 우울증과 조울증이 메커니즘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은 안다.


형이 조증이 오면 과대망상이 오고, 술 여자 돈 문제가 온다고 했다. 조울증이 원래 그런 병이다. 조울증이 지랄 같은 게 그런 것이다. 조울증이 오면 과대망상 가운데 여자와 술을 먹으며 노는데 돈을 쓰는 것이다. 온전한 정신상태가 아니라, 조증 상태에서 과대망상 술 여자 돈 등의 문제가 패키지로 오는 것이다. 돈을 평소보다 많이 쓰는 과소비 정도가 아니라 며칠 만에 자신이 가진 모든 돈을 다 쓰고 가산을 탕진하는 정도까지 이르기도 한다. 그게 조울증의 주요 증상이다. 우울증에도 자살사고가 있는데, 조울증의 자살률이 더 높다고 한다.


답은 있으면서도 없다. 병원 잘 다니고, 약 잘 먹고, 사회생활 잘하면서,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건전하게 관리하면 된다. 문제는 환자가 내가 환자임을 인정하고, 치료를 받아들여 깨진 자신의 멘탈을 조절하고 관리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쉬운데 쉽지 않다. 주치의가 오라는 날 병원 가서 잠깐 상담하고, 주는 약 꾸준히 먹고, 공부나 직장생활 등 사회생활을 규칙적으로 하면 된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으니 본인뿐 아니라 가족들도 슬퍼지는 것이다.


나는 조울증을 극복했지만,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대안을 제시할 수는 없다. 내가 아프고 치료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을 병식이라고 한다. 어느 날 병식이 생긴 것이지, 어떻게 해야 병식이 생기는지는 모른다. 병원 잘 다니고, 약 잘 먹고, 하루하루 자신의 일을 하며 별 일 없이 살면 되는데, 그 쉬운 것의 방법을 설명해 줄 도리가 없다.


다만, 이십 년이 넘도록 조울증을 앓은 그 형과 가족의 아픔을 나는 다 안다. 지금은 극복했지만, 그 형의 증상은 전부 내가 겪었던 일이고, 그 가족이 겪었던 아픔은, 전부 우리 가족이 겪었던 것이다. 그 형과 나의 차이는, 그 형은 아직 그 아픔 한가운데 있고, 나는 그 아픔을 빠져나왔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그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지 나는 잘 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해야 그 형이 그 늪에서 빠져나오는 그 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지 그것은 내가 모른다.


어떨 때는 늪에 가라앉지 않게 나뭇가지 하나 붙잡고 '존나' 버티는 방법밖에 없을 때가 있다. 시간이 지난다고 모든 것이 해결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기댈 것은 시간 밖에 없을 때가 있다.


나에게 카톡 아이디와 전화번호를 쪽지로 남기며 전화하고 싶다고 했는데, 카톡으로 그 아픔을 공감하고 내 경험을 나누었다. 자주는 아니고 어쩌다 한번 오는 상담 요청에 전화통화는 안 한다. 해당 분야에 라이센스도 없고, 전문가도 아니고 말이다.


다만, 카톡이나 이메일 상담은 한다. 카톡 이메일은 글쓰기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글쓰기를 통한 상담은 부담스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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