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다함 Dec 03. 2021

아내의 네팔친구 부부가 아들 요한이 보러 놀러 왔다


아내의 네팔친구 부부가 집에 놀러 왔다. 아기 요한이를 보기 위해서 왔다. 부부 모두 주말에 일을 해서, 주말에 움직일 수가 없어서, 쉬는 평일에 날을 잡아 우리 집에 놀러 왔다. 나는 한 달에 한 번 유급 월차를 쓸 수 있는데, 아내 친구의 방문에 맞추어 월차를 썼다. 11월에는 월말에 월차를 써서, 월차를 쓴 지 얼마 안 되어 또 월차를 썼지만, 11월의 월차는 11월의 월차고, 12월의 월차는 12월의 월차이다.



대접을 해야 하는데, 마침 식사시간에 와서, <닭갈비 도시락 세트>를 배달의민족으로 배달시켰다. 경기도 공공 배달앱인 배달특급에서 배달을 시키면, 배달비 지원 쿠폰이 한 달에 얼마가 나와서, 최근에 배달특급을 몇 번 이용했는데, 배달특급에서는 같은 식당 같은 지점이 우리 동네까지 배달이 안 되어, 배달의민족으로 신청하였다. 개인적으로 세금으로 만드는 공공 앱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배달비 지원 쿠폰이 나와서, 최근에 이용하기 시작했다.



남자는 아주 오래전에 한국에 왔다. 세종대에서 학사와 석사를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 있는 회사에 근무를 하다가, 석사를 하기 전에 네팔에 가서 결혼을 하고, 아내를 데리고 한국에 와서, 다시 석사를 공부했다. 남자는 지금 은행에서 근무하고 있다. 은행에서 외국인 상대 업무를 한다.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들은, 주말에 은행을 이용하기 때문에, 남자는 주말에도 근무한다. 여자는 주로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스마트폰 대리점에서 일을 한다. 네팔인이 한국에 와서, 은행에서 근무하고, 스마트폰 대리점에서 근무하는 것은, 좋은 직장에 다니는 것이다. 한국에서 일하는 많은 네팔인은 다른 외국인 노동자들처럼 공장에서 일을 한다. 물론 공장에서만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취업을 한 경우에는, 남자처럼 사무직에서 일을 하기도 하고, 외국인복지센터나 다문화센터의 외국인 상담사 또는 직원으로 일하기도 한다. 사무직이라고 공장 노동직보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아니지만, 만족도와 행복지수가 높다. 나도 커피 마시면서 컴퓨터 앞에서 일을 하는 게 좋지, 쓰레기 만지는 일을 하는 게 좋지는 않다. 내가 하는 일은 컴퓨터 만지는 일과 쓰레기 만지는 일을 둘 다 하는 일이다. 그래서 좋은 게 아니라, 더 짜증 난다. 몸을 쓰는 일보다 머리를 쓰는 일이 좋지만, 머리와 몸을 같이 써야 하는 일보다는 차라리 몸만 쓰는 일이 낫다. 그럼에도 일이 없는 것보다 일이 있는 게 좋다. 나는 일을 좋아하고 신성시하는 사람은 아니다. 일을 해야 버는 돈이 좋다. 일을 안 하고 돈을 벌 수 있다면, 일 안 하는 게 나는 좋지만, 세상에 그런 법은 없으니 일이 없는 것보다는 짜증 나더라도 일이 있는 게 좋다. 물론, 궁극적인 소망은 내가 행복한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 아내 에미마와 아들 요한이가 있는 집에서, 책 읽고 글 쓰는 작가로 사는 것이다.



남자는 아내 에미마가 아주 오래전에 알고 있던 사람이다. 남자가 한국에 오기 전인 아주 오래전, 아내 에미마가 10대 후반 또는 20대 초반이었을 때, 네팔의 교회와 관련되어 아내가 본 적이 있는 남자다. 여자는 한국에서 처음 보았고 말이다. 이 부부가 한국에 있다는 소식을 알고 연락을 하게 된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교회의 네팔인 모임을 통해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아내 에미마가 앤티 이모라고 부르며 정신적인 어머니로 생각하는, 나와 아내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신,  네팔에 사시는 한국인 분을, 이 네팔 남자 여자는 엄마라고 부른다. 물론 우리는 그 한국인 이모님과 이 네팔 부부가 아는 사인지도 몰랐다.



이 부부는 결혼한 지 오래되었는데,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기가 태어난다. 임신 7개월이라고 한다.


남자는 직장이 서울이고, 여자는 직장이 수원인데, 그래서 지금은 수원에 산다. 아기가 태어나게 되면, 남자의 직장이 있는 서울로, 이사 가기를 원한다. 그들의 바람대로 잘 되었으면 좋겠다.



아내는 네팔에서 친구 아주 많았다. 가족, 교회, 학교와 관련된 혈연 지연 학연이었다. 성격이 외향적이라서 주도적으로 친구를 많이 만든 게 아니라, 아내는 좋은 사람이라 살아오면서 주변의 인간관계를 잘 지켜온 것이다. 네팔에서는 친구들과 매일 같이 교류해서 재미있었나 보다. 지금은 가끔 외로운가 보다.


그래도 한국에서도 에미마가 나보다 친구들이 더 많은 것 같다. 나도 정상적으로 살았더라면 친구가 많았을 것이다. 조울증으로 오래 아픈 동안 친구들은 다 떨어져 나갔다. 나의 친구라면 아내, 가족, 교회 교우 정도이다. 대학 같은 과 동기 한 명 정도를 일 년에 한두 번 만난다.


물론, 지금은 친구가 많아도, 그 교우관계를 유지할 돈이 없다. 만나면 밥이라도 먹어야 하고, 애경사에 부조금도 내야 하고, 돈이 들어간다.


작가로 성공하면, 지금부터 다시 인간관계를 만들어 가고 싶다. 물론, 이제 아내 에미마의 친구들이 다 나의 친구들이고, 아들 요한이의 친구들이 다 나의 친구들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네이버 쪽지가 와서 형의 조울증 극복을 위한 카톡 상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