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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Dec 04. 2021

골프연습장이 있던 춘천의 어느 고시원의 추억


1999년 대학에 입학했던 나는, 2012년 봄학기가 마지막 학기였다. 2000년 군대에서 시작된 조울증으로 긴 방황을 한 후에 마침내 졸업의 문턱에 이르렀다. 마지막 학기는 교생실습 한 과목만 들으면 되었다.


길어야 3개월인 교생실습 이론수업과 실습을 위해, 자취방이나 하숙집을 구할 수가 없었다. 허름한 모텔 달방에서 교생실습을 다닐 수도 없었다.


내가 다니던 강대후문과 내가 교생실습을 한 사대부고 근처에 고시원이 있었다. 고시원은 보증금 없이 한 달 단위로 살 수는 있었고, 밥 국 김치를 제공받아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다.


고시원 편의시설로는 골프연습장이 있었다. 고시원 옥상에 있었던 것 같다. 고시원 입주자 중 이용하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취업준비생이나 일용직 노가다  꾼들이 주로 살았는데, 그 사람들이 쉬는 시간에 골프 연습을 할 삶의 여유는 없을 것이다.


서울에서 돈 좀 벌어 은퇴하신 어르신이 춘천에 아들 데리고 내려와 하시는 고시원이었다. 아들이 고시원 실장이어서 고시원의 일을 도맡아 했는데, 아들의 꿈이 골프 티칭프로였다. KPGA나 이런 데서 활약하는 프로골퍼가 아니라, 골프연습장이나 골프장 필드에서 레슨 하는 티칭프로에 매 번 떨어지면서도 계속 도전했다.


내가 회사에 다니며 틈틈이 글을 쓰지만, 궁극적인 꿈이 아내와 아들이 있는 집에서 책 읽고 글 쓰는 작가가 되는 것인 것처럼, 고시원 아들 실장은 고시원 일을 했지만, 티칭프로 돼서 골프연습장이나 골프장에서 레슨 하며 사는 게 꿈이었다.


고시원 사는 입주자 이용하라고 간이 골프 연습시설을 옥상에 가져다 둔 게 아니라, 자기 연습 장비와 시설을 가져다 놓고, 자기가 주로 이용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아직도 그 자리에 고시원은 있는데, 지금 고시원 주인이 그때 고시원 주인인지는 모르겠다. 고시원 아들이 골프 티칭프로가 되어 골프장에서 레슨을 하며 사는지, 여전히 아버지 밑에서 일하는지 모르겠다. 여전히 그 고시원 옥상에는 골프 연습 장비와 시설이 있는지 어디 가져다 치웠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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