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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Nov 04. 2021

장년 디지털 일자리도 주라 주라 만들어주라

나도 아날로그 말고 디지털 일자리 하고 싶다

"매니저님. 청년 디지털 일자리 자리 있는데 알아봐 주세요."


회사 대표님의 지시사항이다. 사적으로는 친동생 놈이지만, 공적으로는 대표님이시다.


청년 디지털 일자리는 코로나로 힘들어하는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제도이다. 청년을 세 전 월 200만 원 이상의 디지털 일자리에 고용하면 6개월간 인당 월 180 + 노무비 10을 지원해 준다. 청년에게 주는 게 아니라, 회사에 주는 것이지만, 그만큼 청년 일자리가 생긴다. 단기 고용을 양산하는데 악용된다고도 하는데, 어떤 측면에서 청년에게 좋은 일자리다. 우리 회사 같은 경우는 어플을 만드는 사업부에서 개발자 디자이너 홍보기획자로 디지털 일자리 사업을 땄다.


회사 회의를 제외하고는, 자기 노트북 앞에서 커피 마시면서 키보드 두드리고 마우스 문지르다 퇴근하면 되는 것이다.


나는 직책이 매니저로 디지털 일도 하지만, 아날로그 일도 한다. 디지털 일자리는 디지털 일만 하는 자리다.


나는 회사가 아닌 회사에서 무인으로 운영하는 업장에 출근해 쓰레기를 만지고 청소기를 돌리고 물티슈로 먼지를 닦는다. 회사도 우리 직원들만 일하는 게 아니라 공간 대여 사업을 하기 때문에, 매일 쓰레기를 만지고 음식물 쓰레기까지 만진다.


회사에서 식당도 하는데, 주방에 양배추가 떨어지면 사다 주고, 주방이 바쁠 때는 세팅하고 설거지하는 일을 돕는다.


정부 지원 사업을 하게 되면 인터넷을 검색하며 서류를 쓰기도 하고,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 문의를 하고 견적을 내야 한다. 정부 지원 사업 서류도 내가 만들고, 직원들 제출 서류도 내가 만든다.


청년 디지털 일자리는 고용노동부에서 하는 사업인데, 민간에 위탁을 준다. 고용노동부 워크넷에 가면 민간업체 명부와 전화번호가 있다. 일일이 전화해서 TO가 있는 데를 확인해야 한다. TO를 확인하면 전화나 이메일로 진행하는 게 아니라, 워크넷을 통해 해당 민간업체에 신청해야 한다.


나에게 맡겨진 일은 위탁업체에 전화해서 자리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일이 쓰레기 만지는 일이고, 두 번째로 싫어하는 일이 전화해서 정보를 알아보고  부탁하고 이런 일이다.

 

직원이 새로 입사하면 나는 대표님의 지시를 받아 중고나라나 당근 마켓에서 싸고 좋을 신상품 같은 중고를 찾아야 한다. 세상에 없는 것을 찾아야 한다. 내가 세 번째로 싫어하는 일이 가격 비교하고 흥정하는 것이다.


나는 아날로그 일도 디지털 일도 다 한다. 좋게 말하면 매니저, 나쁘게 말하면 잡부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힘든 일은 아니데, 마음이 상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기분이 나쁜 거다. 기분이 나쁜 일이 10이고 그냥 그런 게 90인데, 그 10 때문에 하루 종일 순간순간이 기분 나쁘다. 마음이 뒤틀리면 지옥이 따로 없다.


청년만 디지털 일자리가 있나? 장년은 없나? 난 이제 마흔둘이니 장년이다. 청년의 기준은 사안마다 다양한데, 청년 디지털 일자리는 만 34세까지이다.


나는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이 일 저 일 다하는 지금 일이 싫다. 집 마루나 카페에 자리 잡고 커피 한 잔 놓고 노트북 앞에 앉아 글 쓰며 살고 싶다.


나의 꿈이 딱 디지털 일자리인데, 나는 디지털 일자리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 TO가 있는지 위탁업체에 전화를 돌린다.


"청년 디지털 일자리 혹시 자리 아직 있나요?"

"저희는 예산이 다 소진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TO와 예산이 소진되어 남아 있는 곳이 없을 것이라고 확신하면서도, 대표님의 지시사항이니 전화번호 돌려서 같은 질문을 하고 결과를 구글 스프레드시트에 적는 일을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남은 TO를 알아보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대표님의 지시대로 전화 돌리고 정해진 질문을 하고 답변을 스프레드시트에 정리하는 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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