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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Nov 04. 2021

블루투스 이어폰을 집에 두고 왔다

출근길. 수원역 전철 플랫폼에 서 있다. 우리 집은 수원역과 화서역 사이에서 화서역에 붙어있지만, 화서역은 걸어서 10분 수원역은 집 앞에서 버스로 5분 걸린다. 게다가 수원역에서 전철을 타면 앉아서 갈 확률이 높고, 화서역에서 타면 서서 갈 확률이 높다.


다시 나는 수원역 전철 플랫폼에 서 있다. 뭐를 집에서 안 가지고 왔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안 가지고 왔다. 배터리가 닳아 스마트폰이 되지 않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무력감을 느끼는 현대인의 비애의 10% 정도를 느낀다.


출근길 내 귀에 음악 또는 미디어가 흐르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세상의 백색소음이 피곤하다. 윤종신의 노래 또는 넷플릭스 드라마 또는 구독하는 유튜브 미디어로 도피하고 싶은데. 블루투스 이어폰을 집에 두고 나왔다.


마침 가방에 종이책 두 권이 있다. 한동안은 책을 들고 다니지 않았다. 독서량이 줄은 것뿐 아니라, 밀리의서재를 통해 월 구독으로, 모바일 교보문고에서 eBOOK을 사서, 스마트폰으로 책을 읽는다.


가방에 있는 책 두 권 중 하나는 서평단을 통해 제공받은 책이다. 책을 받는 대가로 서평을 쓰면 된다. 서평을 써야 하는 데드라인이 다가와 바쁜 일상 중 출퇴근 길 읽히기 위해 가방에 들어왔다.


또 다른 책은 점에서 산 책이다. 스트레스를 받는 날이면, 퇴근길 합정역에서 내려 교보문고에서 책을 지른다. 그렇게 지를 책 한 권도 가방에 있다.


나는 아날로그가 힘들고 디지털이 편안한 디지털 중독자에 가까운데, 가방의 종이책 한 권이 도움이 될 때가 있다. 난 보통 스마트폰 배터리가 하루의 중간에 끊기고, 보조배터리를 가지고 다닐만한 정신머리도 없는데, 일에 치여 일하면서 충전을 해놓지 못한 날에는 중간에 폰이 꺼진다.


폰이 꺼지고 네트워크에서 분리된 나는 심심하고 쓸쓸해진다. 생각이 떠 올라도 그것을 묶어둘 종이와 펜도 없다. 지금 나의 종이와 펜은 스마트폰과 노트북이기 때문이다. 폰과 노트북으로부터 로그아웃이 되면 아무것도 할 게 없어 심심하다. 그렇다고 내가 보조배터리를 충전하여 챙기고 다닐 꼼꼼한 성격도 아니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것은 그런 나는 와이파이와 전류가 흐르는 책상과 의자에 노트북 앞에 앉아,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시며 많은 움직임 없이 오프라인에서는 고립되고 온라인에서는 초연결이 된 공간에서 하는 일을 해야 하는데, 이 일 저 일 왔다 갔다 아무거나 닥치는 일을 처리하는 지금의 일이 나에게 힘들다.


누군가 해야 할 일이고, 조울증으로 청년의 때에 사회생활과 직장생활에 편입되지 못한 지금 나를 받아준 유일한 일이지만, 나랑 맞지 않다. 나랑 맞지 않은 일이지만, 현재로서는 벗어날 방법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낮에는 내게 맡겨진 일을 하며 돈을 고, 밤과 주말에는 양질의 글을 쓰는 것이다. 집에서 책 읽고 글 쓰고 넷플릭스 보고 유튜브 하면서 연봉 2500 이상을 찍을 수 있는 그날까지 말이다. 연봉 2500이 목표가 아니라, 글 써서 세 식구 최소한의 생계가 해결되는 지점에서 전업작가를 시작할 수 있다는 현실을 말하는 거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집에 두고 왔다. 음악과 미디어 대신 세상의 백색소음을 배경으로 리뷰를 써야 할 책과 교보문고에서 스트레스를 풀며 지른 책을 보았다.


디지털 중독자도 가방에 책 한 권과 노트 하나와 펜 한 개가 필요하다. 아니, 디지털 중독자일수록 더더욱 필요하다. 배터리가 소진되고, 네트워크가 중단되어, 디지털 세상에서 로그아웃 되었을 때, 내가 들어갈 책 한 권과 노트 한 권의 세상이 필요하다. 펜 하나와 함께 말이다.


일을 하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오빠. 블루투스 이어폰 두고 갔어."

"응. 알아. 그래서 심심해."

"나 없을 땐 안 심심하고?"

"아니, 에미마랑 요한이랑 없어서 심심해."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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