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글을 쓰기 위해 글감으로서의 이야기를 찾는다
작가가 글쓰는 모티브
보통 글을 쓰는 사람들은 내 안에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글을 쓴다. 나 또한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던 때는 그런 이유로 글을 썼던 것 같다. 글을 취미가 아닌 먹고살기 위해 업으로 하는 작가의 꿈을 품게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로 그런 이유에서였다고 기억한다.
내 인생의 첫 글쓰기는 그림일기로 시작한 일기였을 것이다. 물론 자의가 아닌 어머니 또는 선생님께서 시켜서 타의에 의해 쓴 글쓰기였을 것이다.
초등학교 때 나중에 크면 결혼해도 되겠다 싶은 여자아이 몇 있었지만, 중학교 때 교회에서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에서 설레던 여학생들이 있었지만, 그녀들을 나의 첫사랑이었다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것처럼, 일기나 학교에서의 글쓰기가 내 인생의 첫 글쓰기라고 할 수는 없다.
내 인생의 첫 글쓰기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시작한 지독한 짝사랑으로 끝난 첫사랑 소녀에게 썼던 보낸 그리고 보내지 못한 편지들로부터였다.
소녀는 학교 동아리 회장이었고, 나는 부회장이었다. 처음에는 소녀가 먼저 나에게 쓴 손편지에 대한 답장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소녀는 동아리 회장으로서 부회장이자 친구였던 나에게 사심 없이 편지를 썼던 것이다. 내가 그 손편지와 웃음을 오해했던 것은 아니고, 그와는 상관없이 소녀를 향한 일반적인 나의 심장박동은 이미 시작되었었던 것이다. 한동안 손편지를 주고받았지만, 동아리 회장 부회장 친구 간의 편지였지, 노골적으로 내 마음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소녀를 향한 첫사랑이 시작되고 처음 1년은 그랬다.
그 사이 나는 작은 노트를 사서, 1년 동안 하루에 한쪽씩 편지를 썼다. 1년 동안 편지를 써서 소녀의 생일에 주기 위에 한 권의 작은 노트에 매일매일 글을 썼다.
시도 썼고, 소설도 썼고, 에세이도 썼다. 검은색 파란색 빨간색 볼펜을 기본으로 하여, 색연필과 파스텔과 형광펜으로 예쁘게 꾸몄다. 결국 그 노트 한 권의 편지는 보내지 못한 편지가 되었다. 물론 대신 다른 선물과 편지를 보냈다. 1년 만에 고백을 했고, 이미 미래를 생각하며 진지하게 사귀고 있던 남자 친구가 있다며 거절을 당했다. 결국 오래가지 않아 깨졌다고 풍문으로 들었다.
나에게 첫 글쓰기는 짝사랑이었던 첫사랑을 향한 편지들이었다. 첫사랑 이후에 한 명의 인생의 사랑을 찾아 끊임없이 계속되었던 짝사랑들을 향한 편지들로 나의 글쓰기는 이어졌다. 나의 글쓰기는 비단 짝사랑을 향한 편지만은 아니었다. 사랑의 거절로 인한 실연이나 떠오르는 단상에 대해 나만의 노트에 끄적끄적 적어놓은 메모들로 나의 글쓰기는 이어졌다.
2000년 봄 조울증이 시작되면서부터는, 조울증으로 인한 과대망상 조증 에피소드를 나만의 노트에 끄적끄적 적고는 했다.
그 이후에 시와 노래 가사를 지었다. 그때 쓴 글들은 나의 마음과 생각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지금도 물론 나의 글쓰기의 동기 중 하나는 내 안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표현하고 싶은 동기도 있지만, 나는 이미 그 동기를 넘어서 버렸다.
글이 써질 때도 있고, 써야 하는데 써지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나 지금 나의 글쓰기의 핵심 모티브는 그냥 글을 쓰기 위해서이다. 지금 나는 쓸 이야기가 있어서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글을 쓰기 위해 이야기를 찾는다.
나는 글 써서 먹고사는 직업으로서 프로페셔널 작가가 되고 싶다. 나의 지금 구분하는 아마추어와 프로페셔널의 기준은 글을 잘 쓰고 못 쓰고가 아니다. 회사 다니는 대신 집에서 글 쓰는 게 직업이고, 글을 써서 먹고살면 프로페셔널이다.
아내 에미마와 아들 요한이가 지내는 집에서, 책을 읽고 넷플릭스를 보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브런치와 블로그에 글을 쓰고, 책을 내고 유튜브를 하며, 직업 작가로서 살고 싶다.
대책 없이 회사를 그만두지는 않을 것이다. 글쓰기로 직장 다니는 것처럼 수익이 날 때, 나는 회사에 사표를 내고 집에서 글을 쓸 것이다.
지금 나는 쓸 이야기가 있어서 글을 쓰는 게 아니다. 글을 쓰기 위해 이야기를 찾는 것이다. 직업으로서든 아니면 부캐나 사이드 프로젝트로 자신의 정체성을 작가로 생각하는 다른 작가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그렇다고 더 이상 내 안에 할 이야기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할 이야기는 많지만, 이제는 내 안에 이야기를 풀어내기를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기 위해 양질의 글로 빚기 위한 좋은 글감으로서의 이야기를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