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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Dec 19. 2021

나는 조울증을 극복했다


2000년 봄, 스무 살, 군대에서 조울증에 걸렸다. 고2 때 시작된 짝사랑으로 끝난 첫사랑과 군대에서의 집단 괴롭힘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조울증에 걸렸다고, 나는 생각한다.


조울증의 원인으로 유전과 스트레스가 꼽힌다. 유전적으로 조울증에 취약한 사람이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그 이상의 스트레스를 받으면 조울증에 걸린다. 그 유전이라는 것은, 내가 조울증에 걸린 것은 부모님으로 받은 유전자 탓이라는 것도, 내가 조울증이라고 내 아들이 조울증이 될 것이라는 것도 아니다. 조울증의 가족력이 없는 사람보다 있는 사람이 발병률이 높다는 것뿐이다. 조울증에 취약한 유전을 가진 사람이라고 다 조울증에 걸리는 것도 아니다. 유전적으로 조울증에 취약한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는 것 뿐이다. 조울증에 강한 유전을 가진 사람도 자신의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조울증에 걸릴  있다. 조울증의 원인을 유전과 스트레스라 하지만, 유전은 내가 어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고, 조울증의 예방법이 있다면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것 밖에 없어 보인다.


조울증의 예방법이 스트레스 관리라는 것이지, 조울증의 치료와 조절과 재발방지의 방법이 스트레스 관리는 아니다. 경험 상 조울증은 모든 정신질환 가운데 최고봉이고 가장 골 때리는 질병이기도 하지만, 약만 꾸준히 먹으면 별 일 없이 일상을 살 수 있다는 점에서, 치료법이 심플한 질병이기도 하다. 일반론적으로, 처음 발병했을 때부터 꾸준히 3년 정도 약물치료를 하면, 천천히 약물 농도를 줄이면서 상태가 괜찮으면 약을 끊을 수 있고, 두 번 이상 재발할 경우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 일반론적으로는 그런데, 조울증으로 삶이 완전히 파괴되었다 회복된 경험론적으로, 단 한 번만 조울증이 나타났다 하더라도, 예방 차원에서 평생 약을 먹을 수 있으면 먹는게 좋다고 생각한다. 약을 끊고 제자리로 돌아올 수 없다는 점에서 완치를 말할 수 없는 질병이지만, 약만 평생 먹으면 별 일 없이 일상을 산다는 점에서 조절이 가능한 질병이다. 조울증의 극복은 약을 끊는 게 아니라, 평생 약 먹으면서 별 일 없이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조절이 가능한 조울증이 비극적인 질병이냐 하면, 조울증 환자 가운데 자기가 조울증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꾸준히 약 먹고 조절하는 환자가 극히 희귀하기 때문이다. 조울증 판정을 받을 때는 이미 일상이 파괴되어 본인은 인지하지 못하지만 가족과 지인들에 끌려 병원에 오게 되어 반강제적으로 약을 먹게 된다. 증상이 호전되면 약을 안 먹어도 되겠거니 하고 끊게 되고, 재발이 반복하게 된다. 본인이 병을 인지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하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조울증으로 인생이 너덜너덜해지고 황폐해져도, 내 상태를 인지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고 조절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기도 한다.


조울증은 조증과 우울증이 반복되는 질환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조증과 우울증에 반복이란 것이, 하루에도 열두 번씩 감정이 기분 좋고 나쁨 사이에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상태는 조울증이 아니라, 감정 기복이 심한 것이다. 여기서 조증 기분이 뜬다는 것은, 일상적인 삶을 사는데 막대한 지장이 있을 만큼의 과대망상을 동반한 조증을 말한다. 보통 사람들이 조울증 하면 생각하는, 하루에도 열두 번씩 기분이 왔다 갔다 하며 감정의 기복이 심한 것은, 조증에서 우울증까지의 감정 기복이 아니라, 정상 기분에서 우울증까지의 감정 기복이다. 그리고 하루에도 열두 번씩 좋은 기분과 우울 기분이 왔다 갔다 하는 감정 기복과 달리, 조울증은 조증이 1주일 이상 계속되고, 그 이후 우울증이 한 달 동안 지속되고, 이런 형태의 사이클을 가진다.


조울증이 모든 정신질환의 최고봉이란 것은 이런 것이다. 조울증의 조증이 심해지면, 내가 대단한 존재라는 과대망상이 찾아온다. 그 과대망상이 엄청난 소비를 동반한다. 며칠 사이에 통장의 모든 돈을 다 쓰기도 하고, 가산을 탕진하기도 하고, 사채를 쓰기도 한다. 조증이 왔을 때 고급 차를 사고, 주변 지인들에게 차도 사준다. 사줄 능력이 있어서 사주는 게 아니라, 사줄 능력이 없는데도, 어디서 귀신 같이 숨어 있는 돈을 찾아서 쓴다. 내가 조울증일 때는 차 까지는 아니고, 프리미엄 급 스마트폰 몇 개를 2년 약정으로 마련해서, 부모님께 선물이라고 드린 적도 있다. 내 돈이 아닌데, 나는 내 돈을 썼던 것으로 생각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사업을 벌여 망해서 치명적인 내상을 입기도 하다. 무모한 사업을 벌인다고 조울증이라는 것은 아니다. 조증 상태에서 그분이 오셔서 벌리는 사업은, 그 스케일이 무모함을 넘어선다. 무모한 사업으로 망하는 것이 아니라, 조증 상태에서 현실성이 없는 망상으로 벌리는 사업이기 때문에, 실패하여 치명적인 내상을 입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조울증 환자가 사업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그러기 때문에 약 잘 먹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자기 관리를 하면서 사회생활이든 사업이든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돈 쓰고, 며칠 동안 잠을 적게 자도 피곤하지 않고, 이유 없이 하루에 몇 시간 씩 길을 배회하며 걸어 다니고, 생각이 생각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안 하던 짓을 하고, 윤리적이었던 사람이 타락한 행동을 하기도 하고, 과민해지고 짜증이 나고, 분노조절이 안 된다. 이 모든 것이 보통 사람들에게도 올 수 있는데, 조울증이라 말하는 것은, 그 정도가 정상 범주를 넘은 것이다. 미친 것이다. 정신적으로 이상한 범주의 선을 밟고 넘어 선 것이다. 조울증이라고 첫 판정을 받을 정도가 되면, 이미 누가 봐도 이상한 행동을 하고 다닌다.


나는 약물치료가 조울증 치료의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조울증은 우울증이나 다른 여타 정신질환과는 달라서, 반드시 약을 먹어야 한다. 약을 먹으면서, 자주 햇빛을 쐬고,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공부나 일 등 자기 삶에 충실하면 된다.


다른 것을 아무리 잘해도, 약을 먹다 안 먹다 하면 재발이 올 가능성이 크고, 다른 것은 못해도 약만 꾸준히 먹으면, 삶의 질의 문제이지, 정상적인 범주 안에서 살 수 있다.


다시 한번 이야기 하지만, 약물치료가 절대 전부가 아니다. 조울증이 걸리면서 뒤죽박죽 된 내 생각과 윤리관을 정리하는 시간 등 인지적 치료가 필요하다. 그 인지적 치료라는 게 꼭 상담소에 가서 상담을 받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조울증 환자가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으면 좋지만, 의료보험이 안 되어 상담 자체가 비싸기 때문에 나를 포함한 중산층 서민들에게는 추천하지 않는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생각을 하고, 나 자신이 나의 생각을 정리해 나아가면서, 일종의 인지 치료를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첫 번째 브런치북은 <다함스토리>였다. 언제 출간하게 될지는 아직 모른다. 이제 겨우 초고를 쓴 것이지, 출판사와 계약을 한 것도, 퇴고에 퇴고를 거듭하여 완성을 한 것도 아니다. 나의 두 번째 브런치북은 <나의 조울증 극복기>이다.


이 매거진이 브런치북이 되어 완성이 될 때까지는, 정말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조울증 극복기>라는 브런치북을 쓰면서, 나는 조울증에 대해서 더 공부하려고 한다. 나는 조울증을 극복했는데, 조울증에 대해 좀 더 공부를 해서, 나의 조울증 극복을 일반화해서, 조울증 환자와 가족들에게 나의 글이 희망의 증거가 되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조울이들은 목표를 약 안 먹는 완치로 삼으면 안 된다. 평생 약을 꾸준히 먹으며 자신을 조절하면서, 행복하고 의미 있고 온전한 삶을 살아가는 조절 관리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 약을 끊고 다시 멀쩡해지는 완치로서의 극복은 조울증에는 없다. 만약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진짜 조울증이 아니었거나, 조울증이라고 말하기는 가벼운 경증인 것이다. 정신병적으로 조울증으로 분류할 수 있는 조울이들은, 일단 약을 먹는 게 치료와 치유와 회복의 시작이다. 물론 절대로 이게 끝이 아니다. 시작이다. 약 먹으면서, 공부와 일 잘하고, 내게 맡겨진 일들을 열심히 하며 살아야 한다. 조울이의 비극이 조증 상태에서 저지른 일을 수습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조증 상태에서 삶을 손에서 놓음으로써 공부와 일 등 커리어를 놓쳐서, 치료를 통하여 질병과 증세를 극복한 후에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가 어려워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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