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조울증에 걸린 이유에 대하여, 내가 하나님이 아니기에, 나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사실, 어떤 이유로 조울증에 걸렸는지 짐작을 한다 하여, 조울증의 치료와 조절과 재발방지에 참고는 될지언정, 그렇게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 유전적으로 조울증에 취약하게 태어났든,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받았든, 일단 조울증이 발병하고 난 이후에는, 유전적 취약성이나 스트레스 때문이 아니라, 뇌의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의 이상으로, 기분조절 장애가 생겨 조울증 증세가 나타난다. 조울증이 발병한 원인이 유전과 스트레스라고 할지라도, 일단 조울증이 발병한 이후에는 쉽게 말해 뇌의 고장으로 조울증 에피소드가 나타나는 것이다. 조울증을 예방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데는,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것이 적지 않은 도움이 되지만, 일단 발생한 조울증을 치료하고 조절하는 유일한 방법은, 꾸준히 약을 먹으면서 약물농도를 유지하여 기분을 정상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조울증에 걸린 이유에 대하여 아는 것이 조울증의 치료 조절 재발방지에 큰 도움은 되지 않지만, 내가 조울증에 걸린 이유에 대하여 나 나름대로의 결론을 가지고 있는 게 내가 살아가는 데 중요하다. 조울증과 상관없이, 내가 내 인생을 살아가는 데, 내가 왜 조울증에 걸렸는지 나 나름대로의 판단을 가지고 있는 게 중요하다. 나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받아 조울증에 걸렸다고 생각한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는 사랑과 군대의 실패였다.
처음 조울증에 걸리게 된 주원인이 군대와 더불어 사랑이었고, 조울증이 재발할 때마다 주원인이 사랑이었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여자들을 나는 사랑했고, 내가 사랑한 여자들은 사랑과 군대로 병들어 조울증에 걸린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내가 매력이 없는 남자였다기 보다도, 첫사랑의 단추를 잘못 끼웠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소녀를 사랑했고, 내가 사랑했던 여자들이 사랑과 군대로 병든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내 인생의 첫사랑의 단추를 잘못 끼움으로 인하여, 도미노로 내 인생의 모든 사랑이 무너져 버린 것이다. 있는 모습 그대로 나를 사랑해 준 아내 에미마를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물론, 조울증이 발병하여 비정상적으로 사랑에 집착하게 된 것도 맞다. 어떤 감정에 대하여 비정상적으로 증폭된 것이 조울증 때문인 것도 맞다. 하지만, 사랑할 때마다, 나는 미칠 만큼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미친 나를 내가 사랑한 여자들은 사랑하지 않았고, 그러다 정신줄을 놓으면 조울증이 재발하였다.
1996년 봄에 시작된 첫사랑은 2000 봄 조울증 발병의 주원인이 되었다. 2005년 봄 시작된 두 번째 사랑은 2009년 봄 여름 가을 조울증 재발의 주원인이 되었다. 이제는 몇 번째 사랑인지 카운트 하기 2014년 봄의 사랑은 또 다른 조울증 재발의 주원인이 되었다. 2015년 봄 또 다른 사랑도 또 다른 조울증의 재발의 주원인이 되었다. 그 이후 나는 더 이상 사랑에 목을 메지 않았다. 사랑하다가 미치고 싶지 않았고, 사랑하다가 내 인생을 종 치고 싶지 않았다. 또 사랑한다고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설적으로, 사랑을 포기하고 내 삶을 선택했을 때, 어떻게 인연이 닿아 아내 에미마를 알게 되었고, 아내 에미마가 먼저 나를 사랑해주고 나를 붙들어 주었고, 아내와의 사랑 등으로 조울증을 극복하게 되었고, 아들 요한이를 낳아 행복하게 살고 있다.
결국, 사랑이 내가 조울증을 극복하는 데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지만, 또 다른 한 편으로 내가 조울증에 걸리고 수없이 재발한 가장 큰 이유가 사랑이기도 했다.
나는 사랑으로 조울증에 극복했고, 조울증이나 정신질환자들도 사랑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조울증 등 정신질환자의 사랑과 결혼을 적극 권장하지는 않는다. 이거는 꼭 정신질환자뿐 아니라 보통 사람들도 마찬가지인데, 사랑은 잘하면 약이고, 잘 못하면 독이다. 더더욱이 나 스스로 살아가는 것도 감당이 안 되는 사람이, 누구를 만나 그 사랑을 지켜나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물론, 나처럼 심각한 지경까지 갔던 사람도, 좋은 인연을 만나서 사랑이 병을 극복하는데 선한 영향력이 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사랑을 꿈꾸는 조울이에게, 나는 사랑을 꿈꾸지 말고 당신의 삶을 살아라라고 말한다. 사랑은 따라오면 함께 가는 것이지, 사랑을 쫓아가다 가랑이가 찢어지고 사랑은 멀리 떠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인연이 닿으면 사랑을 하는 것이고, 인연이 닿지 않으면 내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럴 때 사랑이 오더라.
결론적으로 나는 사랑으로 조울증을 극복했다. 그렇지만, 사랑 때문에 조울증에 걸렸고, 사랑 때문에 숱하게 조울증이 재발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