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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May 26. 2022

잠시 멈추어 쉬어 갈 수밖에 없는 날


교보문고 스토리 공모전에 응모할 소설을 쓰려는 계획이었다. 소설도 가끔 읽기는 하나, 소설을 어떻게 쓰는지도 모르고, 소설을 써 본 적도 없으며, 브런치 작가로서 한 우물만 파는 장르가 에세이인데 말이다. 1등 상금 5천만 원에 눈이 멀었다.


돈의 액수보다 저 상금만 타면 당장 회사 때려치우고, 책 읽고 생각하고 글 쓰고 유튜브 하고 온오프라인 강연 다니는 전업작가를 시작할 수 있겠다 싶었다. 지금 다니는 회사가 싫은 것은 아니고, 책 읽고 생각하고 글 쓰고 독자들과 소통하는 외의 다른 일들에 나의 대부분의 시간을 빼앗긴 다는 게 힘들다. 나는 나의 의식의 흐름에 따라 살아야 하는 사람인데, 나 혼자 내 동굴로 들어가 크리에이티브의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것이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야고보서 1:15)


언젠가 소설도 쓸 때가 올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때가 아니며, 브런치 작가로서 나의 메인 장르는 에세이다. 작가로서 나의 정체성은 기본적으로 에세이스트다.


낮에는 회사에서 돈 벌고, 밤과 주말에는 아내와 아들과 시간을 보내고, 틈틈이 글을 쓰는 현재의 나로서는, 5000만 원 상금을 탈만한 A4 40매 분량의 중단편 소설을 쓸 여유가 없다.


하루 월차 내고 아무것도 안 하고 하루 종일 글만 쓰면 A4 40매를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써서 당선이 불가능한 것은 알지만, 소설 쓰겠다고 떠벌려 놨으니, A4 40매 분량의 소설을 쓰는 자체가 나의 글을 읽는 구독자님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겠나 싶었다.


그런 이유로 연차를 신청했다가, '글쓰기 휴가' 대신 '패밀리 데이트'를 선택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남편과 아빠, 회사원, 작가, 현재 나의 세 가지 페르소나 중 내가 생각하는 메인 페르소나는 작가인데, 작가 페르소나를 중심으로 나의 다른 모든 페르소나를 통합시키는데 조급함을 가지다 보니, 내 삶의 균형이 흔들렸다. 조금 여유를 가지는 게 필요하다, 라는 생각에 도달했다.


'낮에는 회사에서 돈 벌고, 밤과 주말에는 아내 에미마랑 아들 요한이랑 놀고, 틈틈이 브런치에 글을 쓴다.'라는 게 나의 프로필 멘트지만, 사실 나는 회사원과 남편 아빠의 페르소나는 어쩔 수 없이 감당을 하는 것이고, 책 읽고 생각하고 글 쓰고 소통하는 작가로서의 페르소나에 나의 온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남편과 아빠, 회사원, 작가, 현재 나의 세 가지 역할 모두 죽도 밥도 아니게 되었다.


또 하나의 결정적인 이유는, 지난주 이미 이번 연차를 회사로부터 승인을 받아놓았는데, 월요일 밤 한 숨도 자지 못하고 화요일 회사에 출근했다. 누구나 어쩌다 하루 잠을 못 잘 수도 있는데, 조울증 환자에게는 잠을 자지 않는 것이 조증의 전조증상일 수도 있고, 잠을 자지 않는 것이 조증의 재발을 낳을 수도 있다. 내가 스스로 판단하기는 지금 조증이 재발해서 하룻밤을 자지 못한 것은 아닌데, 이런 시점에서 일단 내 삶의 균형을 되찾고 쉬지 않으면 정신건강을 잃을 수 있겠다 싶었다. 조급함을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쓰기 휴가'를 위해 낸 연차에, 늦잠을 자고, 아내랑 요한이랑 빕스를 먹고 AK 백화점 쇼핑을 하고, 아내 에미마랑 아들 요한이랑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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