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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May 31. 2022

어쩌다 회사원


2000년 봄. 스물한 살, 군대에서 조울증에 걸렸다. 2012년 여름 13년 반 만에 대학을 졸업하고, 이듬해 초등학교에서 일종의 비정규직 영어교사인 영어회화전문강사로 직장생활을 시작했지만, 조울증이 재발하여 병원에 입원하였고 경력이 단절되었다.


한 달에 한두 번 동생 사업장에 가서 분리수거와 청소를 했다. 초등학교에서 교장 선생님으로 정년퇴직하신 아버지와 귀농교육을 받고, 주중에는 논산 시골집에 주말에는 수원 집에 왔다 갔다 하며 왕대추 농사를 했다.


아버지께서는 날 위한 평생직장으로 농장을 만들어주고 싶으셨고, 특별히 하는 일이 없던 나는 아버지의 노후생활을 함께해 드리고 싶었다. 그 사이 아내 에미마와 인연이 닿아 결혼을 했다.


논산에서 농사를 짓다 다시 수원으로 돌아왔다. 나는 어디까지나 한가하게 농사짓고 나머지 시간에 글 쓰는 반 귀농 반 귀촌의 삶까지만 받아들였던 것이다. 소처럼 일하는 전업 농부로 코가 꿰일 생각이 없었다. 나는 틈틈이 글을 써서 글로 돈 버는 전업작가가 되어 시골을 탈출하여 도시로 돌아올 생각이었다.


그래서 탈출을 했다. 수원고용센터에 찾아가 상담을 받고, 취업성공패키지 국비지원으로 출판편집디자인 과정을 공부하고, 구직활동을 했다. 취업을 하려고 직업훈련을 받고 구직활동을 한 게 아니라, 내가 매이고 싶지 않은 것에 매이지 않기 위해, 누구나 볼 때 생산적 활동에 매여 있어야 했다. 내 생각은 직업훈련을 받는 기간 동안 책 한 권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요량이었다.


여러 권도 말고 딱 한 권 만 백만 권 이상 팔리면 된다. 백만 권이 팔리면 백만 권 기념이라고 박아 예쁘게 책 껍데기를 갈아 이백만 권을 팔면 된다. 약발이 떨어질 때 즈음, 출판협회의 지원을 받아 영어로 번역을 하고 영어권 판권을 수출한다. 시장 자체가 큰 영어권에서 한국 에세이로 백만 권 천만 권 팔려 주목을 받으면, 해외에서 팔리는 베스트셀러로 마케팅 콘셉트를 잡아 국내 도서시장에서 한 바퀴 더 돌린다. 그 사이 책의 껍데기 갈이를 몇 번 한다. 한 권을 백만 권을 팔면, 그 이후 호흡이 끊기지 않고 계속 글을 써서 책을 내면, 발로 써도 덩달아 팔린다.


직업훈련을 받고 구직활동을 했다. 어느 정도 역량은 갖추었지만, 이 나이에 취업전선에서 성공할 역량에 이르지 못했다. 나도 사실 취업에 마음은 없었다.


북디자이너로 취업에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북디자인할 수 있는 기본 기술은 익혔기 때문에, 집에다 사업자등록 내고 내 책을 내는 1인출판사 하자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그때 동생이 나를 불렀다.


"형도 아기가 생겼으니 돈이 필요하고, 나도 회사가 법인이 되고 커져서 사람이 필요하니까, 우리 회사에 와서 일해."


그렇게 어쩌다 회사원이 되었다. 스타트업 매니저다. 스타트업 매니저는 이것저것 아무거나 다하는 직책이다. 블루칼라 화이트칼라 일의 경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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