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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Jun 08. 2022

에스더가 떠나고


에스더가 떠난 지 일주일이 되어간다. 에스더는 아내 에미마 오빠의 딸이다.


남자가 있었는데 남자 집에서 둘의 사이를 반대했다. 카스트 제도 때문이었다. 남자 집은 하이 카스트였고, 우리 집은 로우 카스트였다. 남자 집만 카스트가 상관이 있었지, 우리 집은 종교가 기독교라서 카스트가 상관이 없었다. 하이 카스트라고 경제적으로 잘 사는 것도 아니었다. 에스더 아빠인 아내 오빠가 캐나다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있고, 아내는 한국에 아내의 동생은 인도에 있어서, 해외에서 들어오는 돈이 있기 때문에, 그 동네에서 아내의 집은 여유가 있는 편일 것이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그렇듯, 네팔도 그 안에서도 빈부격차가 있고 그곳에도 재벌이 있겠으니, 보통의 경우에 가족 중 누군가 외국에 가 있으면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다.


우리 집에서도 당연히 반대했다. 종교가 달랐고, 다른 카스트여서, 불행해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17살 에스더가 아직 어렸기도 했다. 캐나다 영주권을 얻은 아빠가 에스더를 포함하여 가족을 캐나다로 데려가기 위해 준비 중이었고, 우리가 있는 한국에 올 수 있었다. 에스더가 그 남자 없으면 살 수 없다 했기에, 잘못될 까 봐서 어쩔 수 없이 허락을 한 것이었다.


지금은 네팔도 법으로는 미성년자의 조혼이 금지이고 불법인데, 상당수 미성년자가 조혼을 하는 문화가 남아있다. 집안끼리 진행하는 강제결혼도 고, 에스더 경우와 같이 소년 소녀가 눈이 맞은 로맨스도 있다. 둘은 페이스북으로 만나게 되었다는데, 같은 동네 사람이라, 남자의 이모가 아내 에미마의 친구고, 남자의 엄마가 아내 오빠이자 에스더의 아빠의 어릴 적 학교 친구이고, 카스트 때문에 혈연만 빼고 학연 지연으로 얽히고설켜 있다. 남자의 집은 네팔 아내의 고향과 인도 양쪽에 있었나 보다. 남자의 부모는 인도에 있고, 고향에는 친척들이 살고 있었나 보다.


결혼식과 혼인신고를 한 것은 아니지만, 둘은 결혼한 사이가 된 것이다. 적어도 에스더는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남자 집에서 둘의 사이를 반대했지만, 네팔 동네에 둘이 살림 차리게 두었다가 아들이 해코지를 당할까 봐, 둘을 인도 집으로 불렀다. 조혼이 일반적인 문화이지만 불법이었고, 남자와 에스더가 두 살 차이밖에 안 났지만, 에스더는 미성년이고 남자는 성년이었기 때문에, 우리 가족이 혹시나 신고를 하게 되면 자기 아들이 법적인 제재를 받을까 염려했었던 것 같다. 인도로 갈 때도 우리 집에서 당연히 반대를 했다. 그 남자 없으면 죽다는 딸 손녀 조카를 말릴 수 없었을 뿐이다. 가서 잘하면 저쪽 집의 태도도 바뀌지 않겠냐는 말 밖에 할 말이 없었다. 물론, 우리 집에서도 남자에게 끝까지 사랑할 자신 없으면 데려가지 말라고 했고, 남자는 자신은 에스더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했다. 교회도 다니겠다고 했다. 나중에 보니 다 개수작이었다.


인도 남자 집으로 갔는데, 밥도 잘 안 주고, 방에서도 나오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우리 집에서는 남자 집과 남자가 에스더에게 악행을 한 것을 에스더가 죽은 후에야 알았다. 친구에게만 말했지, 가족에게는 이야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인도에서 2개월 지내다, 남자 집에서 남자에게 에스더를 네팔 동네까지 데려다주게 하고, 남자를 두바이로 보내버렸다. 둘 사이를 떼어내려는 수작이었다.


인도에서 네팔 집으로 돌아와서, 에스더는 앞으로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 말 잘 듣겠다고 했다. 집안 어른들 앞에서는 좋은 것만 보여주고, 나쁜 것은 친구와만 공유했기에, 집안 어른들은 잘 몰랐다.


"에스더가 가장 좋아하던 고기가 닭고기인데.", 아내 에미마의 말이다. 그날, 에스더는 닭고기를 먹고 싶다고 했다. 장인어른은 닭을 사러 가셨고, 장모님은 텃밭에 계시고, 에스더는 어린 쌍둥이 동생을 무릎에 태우고 놀았다.


에스더가 처음부터 극단적인 선택을 계획했던 것은 아닌듯하다. 남자에게서 전화가 왔고, 그 전화를 받으러 2층 자기 방으로 올라갔고, 전화로 남자와 싸웠다. 무슨 내용의 통화인지 우리는 모르지만, 그 통화 후 충동적으로 사고가 났다. 에스더와 남자는 사실상 결혼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남자가 끝내자고 했던 것 같다. 물론, 그것만은 아니다. 남자가 에스더를 끊어내는 과정에서 양아치 짓을 했다. 어른들에게는 이야기 않고, 친구들에게만 이야기한 것이다.


그 또래 아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어른들에게 이야기했으면 어른들 선에서  수습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남자는 카스트로부터 에스더를 보호해 주지도, 같이 카스트로부터 도망치지도 않았다. 자기가 끝까지 사랑할 것처럼 이야기해놓고 버렸다. 다른 옵션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에스더 아빠인 에미마 오빠가 캐나다에 있고 영주권이 있기 때문에 거기 가서 살아도 된다. 우리가 있는 한국에 학생이나 외국인 노동자로 와서 여기서 살아도 된다.


카스트가 둘의 사이를 갈라놓은 게 아니라, 애초에 카스트를 뛰어넘을 능력도 없었고, 카스트로부터 사랑을 보호해 주지도 않았고, 사랑과 함께 카스트로부터 도주하지도 않았다. 여러 옵션들이 있었지만 한창 좋을 때 취했다 어떤 이유인지는 알 길이 없으나 버렸다. 남자와 에스더가 마지막 통화에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 아직 우리는 모르지만, 우리는 마지막 통화가 에스더를 벼랑으로 밀었다고 확신한다.


에스더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에,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가족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친구들에게 자신의 극단적인 선택을 알렸다. 친구들은 에스더가 생각을 실행에 옮길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에스더 그 나이 또래에 소녀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집안 어른들에게 이야기했더라면, 어른들의 방식대로 해결하는 방법이 다 있다. 아내의 오빠인 에스더 아빠가 부모님인 우리의 장인어른 장모님까지 가족을 다 데리고 캐나다로 떠날 법적 절차를 이미 진행 중이었다. 에스더는 여자가 한 번 결혼을 하고 깨지면 받을 손가락질을 생각했던 것 같다. 가족이 받을 손가락질을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가 좋은 남자가 아닌 나쁜 남자인 것을 알고 난 이후에도 이 남자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었던 것 같다.


결코 작은 일은 아니지만, 다 과거로 덮어두고 새 삶을 살 수 있고, 일단 어른들에게 이야기하면 어른들의 방식으로 조용하면서도 확실하게 수습하는 방법이 다 있는데 말이다. 에스더의 잘못도 아니고, 그 남자의 잘못인데 말이다. 그냥 그 남자의 집과 그 남자가 에스더에게 했던 악행만 이야기했더라면, 아빠와 할아버지가 와서 다 정리하고 데리고 와서 해결책을 만들었을 텐데 말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보이는 카스트는 없지만, 보이지 않는 카스트는 있을지 모른다. 카스트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함부로 사랑한다 하는 것 아니다. 끝까지 사랑할 자신이 없으면, 날아오는 돌을 막아줄 자신이 없으면, 그래도 안 되면 둘이 함께 카스트가 닿지 않는 곳으로 떠날 자신이 없으면,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 것이다. 함부로 시작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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