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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Jun 21. 2022

나의 영어 발음은, 한국식 김치 발음이다

미국식 발음도 아니고, 영국식 발음도 아니고


2000년 스물한 살 여름에 조울증에 걸렸고, 겨우인지 마침내인지 그나마 다행인지, 2012년 여름 강원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했다. 99학번이었으니 박사도 아닌 학부를 13년 반 만에 졸업했다.


졸업 후 반년 쉬고 이듬해 초등학교에서 영어회화전문강사로 밥벌이를 시작했다. 2013년 1년 동안 한 학년에 한 반 밖에 없는 아주 작은 학교를 다녔다. 다음 해 같은 학교에서 재계약하기로 교장 선생님과 이야기가 다 되었는데, 소규모 학교에는 영어회화전문강사를 빼기로 도교육청 정책이 바뀌어, 다른 학교를 알아보게 되었다.


2014년 가게 된 학교는 아파트 단지를 낀 일반적인 규모의 학교였다. 교육청 장학관 출신의 능력 있는 교장 선생님이 계신 연구학교였다. 몇 개 학교 선택지가 있었는데 그 학교를 선택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능력 있는 교장 선생님 밑에 있으면 배울 게 많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 생각은 옳지 못한 생각이었다.


학교 일 외에도 교장 선생님께서 회장으로 계시는 선생님들 연구회가 있었다. 학회 비슷한 것인데, 잘은 모르지만, 교육청에서 예산지원도 받았던 것 같다.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자율적으로 알아서 가입해야 했다. 비정규직 영어교사인 나도 가입을 하고, 1박 2일 연구회 모임에 갔다. 1부 연구회 워크숍을 하고, 밥 먹으면서 2부 부어라 마셔라를 하는, MT 같은 이벤트였다.

  

참석한 분들은 전부 초등학교 선생님들이다. 영어 관련 연구회는 아니었는데, 참석하신 회원 중에는 자신의 영어 실력과 관심을 자랑하고 싶으신 분들이 계셨다. 그런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 그런 분들은 꼭 영어 교사인 나의 영어 실력을 테스트해 보기를 원하고, 나의 영어 실력을 깔아뭉개기를 원한다.


그래서 영어 몇 마디 했다.


"최 선생, 영어 발음이 미국식이 아닌 것 같은데."

"아, 네. 영국식 발음인 것 같아요."

"에. 영국식 발음도 아닌데."


대부분의 선생님은 그렇지 않은데, 소수의 선생님은 영어 선생 앞에서 자신의 영어 능력과 관심을 뽐내기를 원하고, 또 소수의 선생님은 비정규직 영어교사에 대하여 그 자체로 기분이 나쁘다. 이명박 정부에서 만들어진 영어회화전문강사에 대해 그 자체로 기분이 나쁜 선생님도 있다. 대부분의 선생님은 남의 일에 큰 관심 없지만, 그런 분들이 있다.


'제 발음은 한국식 김치 발음인 것 같아요.' 하면 될 일이었다. 사실 영어 실력을 들이대며 나를 테스트하고 경계하는 선생님들이, 사실 일적으로 나와 아무 상관없는 분들이고, 내 사수 격의 선생님이 없었고, 나 혼자 영어과 업무를 했기 때문에, 내가 영어를 잘 하든 못 하든 아무 상관없었다.


그 학교에서 처음에 나에 대해 가장 경계하셨던 선생님 한 분이 계셨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나에 가장 좋은 편이 되어주었다. 마치 나의 형님처럼 나를 대해 주셨다. 내가 착하다고 생각했는지. 내가 마음에 드셨는지, 나의 가장 가까운 편이 되어주셨다.


물론, 그 학교에서 오래 있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1학년 여선생이 너무 예뻤고, 나의 마음을 알았지만 부담스러워했고, 나의 마음은 이미 무너져 있었다. 비정규직이지만 괜찮은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고, 조울증이 재발하였고, 경력이 단절되었다.


내 영어 발음은 미국식 발음도 아니고, 영국식 발음도 아니고, 한국식 발음이다. 영어를 직업으로 먹고살기에는 좀 버거웠지만, 외국인과 대화하는 데는 큰 문제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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