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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와 미래 사이에서

네 곁에서 내 삶을 살 수는 없을까? 널 항상 바라봐 주어야 하니?

by 최다함


나는 전업작가로 살고 싶다. 직업으로서의 작가가 되고 싶다. 글 써서 밥 먹고 싶다. 글 써서 밥 먹는다는 것이, 책 인세로만 생활하고 싶다는 의미는 아니다. 글 쓰고, 유튜브 하고, 온오프라인 강연을 다니는, 그런 작가로 살고 싶다. 독서 토론 논술 사교육이나 출판사 등 글쓰기 관련 산업에 종사하는 자본가나 노동자로 살고 싶지도 않다. 글쓰기 시장의 고용인도 피고용인도 아닌 예술인이 되고 싶다.


희망사항은 그렇고, 현실은 스타트업 매니저이다. '스타트업' '매니저' 각각의 단어는 듣기에 긍정적인 뉘앙스를 풍기지만, '스타트업 + 매니저'의 현실은 낭만적이지 만은 않다. 하는 일의 가지 수가 카운트를 할 수 없을 만큼 많고, 宇宙洪荒(우주홍황) 우주가 넓고 큰 것처럼 일의 경계가 없다. 할 일은 많은데 일을 할 사람은 없고, 회사 대표는 너무 바빠서 정신이 없고, 아무 일이나 닥치는 대로 한다. 그게 스타트업 매니저인 내가 하는 일이다. 전업작가가 되는 그날까지, 회사의 성공을 돕는 구성원 파트너로 살기로 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서는, 아내랑 아들에게 인사하고, 밥 먹고, 아내랑 아들이랑 잠깐 놀고, 작가로서 살고 싶다. 현재 작가로서 수입은 없지만, 미래에 작가로서 살고 싶은 나는, 집에서는 읽고 쓰고 생각하는 작가로서 살고 싶다. 나의 바람은 그렇고, 온종일 혼자서 아이를 돌보며 독박 육아를 하는 아내 에미마는 내가 자기랑 아들 요한이랑 함께 시간을 보내 주기를 원한다.


나는 글을 써야 하는데, 낮에 회사에서는 일을 해야 하고, 밤과 휴일에 집에서는 아내 에미마랑 아들 요한이랑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하고, 출퇴근 이동 중에는 집중하여 글쓰기에 충분한 여유가 없다. 평생 회사 다니며 취미로 글을 쓴다고 한다면, 그냥 글쓰기에 미련을 둘 필요가 없다. 문제는 지금은 회사에 다닐 수밖에 없는 형편이지만, 하루빨리 나는 지금 회사 대신에 글 쓰는 일이 직업이고 생활이 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내가 답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회사에서는 일에 충실하고, 집에서는 아내랑 아들에게 충실하고, 출퇴근 길에는 쉬고, 그리고 남는 여유시간에 현재 내가 생각하며 살아가는 삶을 글감으로 글을 쓰면 된다. 나는 한다고 하는데, 회사는 나에게 더욱더 회사에 충실해 주기를 바라는 것 같고, 집에서는 내가 더욱더 가정에 충실해 주기를 바라는 것 같다. 나는 글을 써야 하는데 말이다.


내가 아직 청소년이고 청년일 때, 내 심장이 누군가를 향하여 자동적으로 뛸 때, 24시간 순간순간 누군가를 생각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아내 에미마와 아들 요한이가 하루 종일 생각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예 생각이 나지 않는 것도 아니다. 하루에 몇 번씩 생각이 나고, 생각이 날 때마다 전화를 하는데, 보통 하루에 최소한 3번 이상은 전화를 한다. 요즘 하루 종일 생각하는 것은 따로 있다.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대신 드는 다른 생각이 있다. 나는 하루 종일 순간순간 글 쓰는 생각을 한다. 물론,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오늘 무슨 주제로 글을 쓸까 고민하는 것도 아니고 그럴 여유도 없다. 하루 종일, 순간순간, 앉으나 서나, 일하는 중에도, 글쓰기를 생각하는 것은, 오늘 무슨 주제로 이러 이런 글을 써야지 하는 디테일한 글쓰기에 관한 생각이 아니라, '글 써야 하는데. 아씨, 글 써야 하는데. 에이씨, 글 써야 하는데.' 이런 얇고 가는 글쓰기 생각의 무한반복이다. 일을 하면서 글 쓰는 딴생각을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내 의식이 글쓰기에 대한 주제로 자동적으로 흘러가는 사이에, 나는 내게 맡겨진 회사 일을 집중해서 한다. 나는 내게 맡겨진 일에 집중하지만, 그 밑바탕에는 그냥 자동적으로 흘러가는 나의 의식의 흐름이 있다. 정도의 차이지 다른 사람도 어느 정도 다 그렇게 사는 게 인생인데, 나는 내 의식이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게 돈벌이가 되고 밥벌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 딴에는 일도 가정도 하는 만큼 하는 것인데, 일과 가정에서는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나에게 만족하면서도 어떤 부분에서는 더 충실해 주기를 바라는 것 같다. 일과 가정에 열정에 불 타 주기를 바라는 것 같다. 나는 일과 가정에 내가 해야 할 최소한의 몫만 하면서, 글 쓰는 데 모든 것을 걸어보고 싶은데 말이다.


글이 돈이 되기 시작하면 많이 달라질 것이다. 글쓰기로 회사 다니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이 들어오면, 상황이 많이 달라질 것이다. 지금은 아무것도 들어오는 게 없는데, 내 생각은 글쓰기에 가 있으니, 주변에 기대에 못 미치는 부분이 있다.


평생 지금 직장 다니면서 돈 번다면, 글쓰기 포기해도 아무 상관없다. 나는 지금 당장 모든 것을 때려치우고, 글 쓰면서 살고 싶은데, 꿈 보다 중요한 것은 돈이기 때문이다. 꿈 보다 중요한 것이 '많은 돈'은 아니지만, '밥 먹고 사는 최소한의 돈'을 얻은 후에야 '꿈'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를 살아야 미래가 오지만, 내가 바라는 미래는 따로 있는데, 현재를 살기 위해 현재에서 미래를 살지 않으면, 미래도 현재의 연장 선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가 현재의 연장선상이어도 상관없는 사람들은 고민할 게 없는 문제이다. 현재를 버리고 당장 내가 원하는 미래를 살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할 수 없기에 현재로서 현재를 살 수밖에 없는 나로서는, 내가 해야 할 최소한의 일과 가정에 대한 의무 외에는 최대한의 잉여 시간을 확보하여 현재에서 미래를 살아, 미래에는 현재의 연장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꿈이 나의 미래가 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현재에 세상은 내가 현재에서의 의무만을 다하는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24시간 상시 현재를 바라봐 주기를 바란다. 이게 나를 미쳐 돌게 만든다. 이게 나의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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