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형도 아기가 생겼으니 돈이 필요하고, 나도 회사가 커져서 사람이 필요하고. 우리 회사에 와서 일해."
아들 요한이가 생긴 것을 알게 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다. 1월 10일이 내 생일인데 아내 에미마가 선물이라고 가늘고 긴 박스 하나를 내밀었다. 박스를 열어보니 두 줄이 있는 임신 테스트기였다. 아내 에미마는 내 생일선물이 우리 아기 소식이 되기를 기도했고, 생일날 아침 아내 에미마도 좋은 소식을 알았다.
"응."
동생 회사에 다니겠다고 대답했다. 나에게 다른 인생 계획이 있었지만, 그땐 다른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다른 계획이란 책 한 권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 스타 작가가 되어, 글 쓰며 사는 것이었다. 그 직전 연도에 국비지원으로 출판편집디자인 과정을 이수했을 때라, 집에다 사업자등록하고 1인출판사 만들어 내 책 내자고 마음먹었을 때였다.
아마도 그때 내 생각이 정리가 되어 플랜이 나오고 집 앞 도서관이나 집에서 집필 과정에 들어갔었더라면 나는 지금 동생 회사를 다니고 있지 않을 것이다.
모든 작가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의 작가는 필이 와야 글을 쓰지, 필이 올 때까지 마냥 논다. 모든 예술가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의 예술가라는 족속이 그렇다. 그렇지만, 반면에 그런 부류들은 한 번 필이 오면 밤낮이 없다.
그렇게 시작한 회사를 지금도 다니고 있다. 지금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다. 지금 회사에 불만이 있어서는 아니다. 내가 일할 수 있는 회사는 지금 여기가 최선이다. 일을 하면서 내가 깨달은 바가 있다. 나는 회사란 조직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회사에 민폐를 끼치는 존재라는 게 아니고, 그것은 내가 판단할 바가 아니고, 회사 다니는 게 나를 미치게 만든다.
그 이유에 대해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하기 싫은 일을 해서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하기 싫은 일 하면서 산다. 정말 미치도록 하고 싶은 한 가지 일이 생겼는데, 그 일을 하면서 살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단 하나의 일만 하면서 살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이 일을 놓을 수도 없다. 그렇다고 하여 지금 이 일을 언제까지나 할 수 없다. 낮에는 지금 회사에 다니고, 밤과 휴일에는 아내 에미마랑 아들 요한이랑 놀고, 틈틈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는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올해 제10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대상 10인과 특별상 40인 총 50인 안에 들어 출간작가가 되어야 한다는 간절함이 있다. 안 되면 바로 출간기획서를 써서 딱 50군데 출판사에 원고와 함께 투고할까 생각해 보았다. 그래도 안 되면 1인출판사를 만들어 최소한의 경비로 출판을 해서 대박을 내 보아야겠다는 생각까지 해 보았다.
최대한으로 모든 가능성을 생각해 보고, 다시 그 가능성을 최소한으로 소거해 본다. 어차피 나의 목표는 책 한 권 내는 그 자체도 아니고, 책을 교보문고에 까는 그 자체도 아니고,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것도 아니고, 책 한 권 내면 백만 권은 기본으로 팔리는 초대형 베스트셀러 작가이기 때문이다.
내 목표가 단지 브런치 공모전에 뽑혀 상금 받고 출간이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대박이 나서 도서출판 시장의 에세이 분야의 에이스 작가가 되는 게 목표이기 때문이다.
돈, 명예, 성공이 목적이 아니라, 그 정도 되면, 아내 에미마랑 아들 요한이랑 집이나 카페에서, 책 읽고, 글 쓰고, 유튜브 하고, 온오프라인 강연 다니며, 전업작가로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그러니 다른 가능성은 생각할 필요도 없이, 적어도 에세이 분야에서는 어디에 내놓아도 선택될 수밖에 없는 스케일의 글을 써야 한다.
언제까지 동생 회사에서 일할지 정해놓을 필요도 없다. 베스트셀러 작가로, 스타 작가로, 전업작가로 살 수 있을 만큼 저 하늘로 날아오를 때까지, 현실의 땅을 밟고 있으면 된다.
책 안 읽는 대한민국 국민의 평균보다는 책을 많이 읽었지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사랑하는 마니아 층에 비교하면 독서량이 미천하다. 그렇다고 내 전문분야가 있는 것도, 사회적 성취를 이룬 것도 아니다. 다만, 사랑에 모든 것을 걸었다 발을 헛디뎌 넘어져 청춘을 잃어버리고, 스물한 살에 조울증에 걸려 이십 년 가까운 세월을 방황하다, 아내 에미마를 만나고 아들 요한이의 아빠가 되고 조울증을 극복하고, 다시 회사에 다니며 경제생활하며 작가의 꿈을 꾸는, 그런 스토리가 내게는 있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낮에는 회사에 다니고, 밤과 휴일에는 아내 에미마랑 아들 요한이랑 놀고, 틈틈이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 밖에 없다. 그것이 현실로부터 나를 구원하여 나의 꿈에 이르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