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2 때였다. 소녀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나는 소녀를 사랑했지만, 소녀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내 심장이 나도 모르게 automatically 자동으로 뛰기 시작했고, 나는 심장 박동을 멈추는 방법을 몰랐다. 사랑의 시작도 내 의지가 아니었으니, 사랑의 끝도 내 의지가 아니었다. 모든 사람의 모든 사랑이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어떤 사람의 어떤 사랑은 그렇다.
스물한 살, 군대에 갔다. 모든 군대의 모든 군인은 평등하게 힘들다지만, 내가 간 부대는 내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그 이상이었다. 내가 입대한 2000년 1월의 강원도 양구는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의 그 어느 겨울보다 추웠다. 훈련소를 마치고 배치된 자대는 매일 완전군장을 하고 양구의 험준산령을 타 다니며 매복을 하는 부대였다.
2000년 봄, 스물한 살. 군대에서 조울증에 걸렸다. 17살 첫사랑과 21살 군대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조울증에 걸렸다.
조울증의 원인으로 명확히 밝혀진 것은 아직 없다. 유전,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 스트레스 정도가 주요 원인으로 추정된다. 유전적으로 조울증에 취약한 사람이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신경전달물질이 불균형하게 되어 조울증에 걸린다.
조울증의 예방법은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것 밖에 없다면서도, 조울증의 치료법은 약을 먹는 것 밖에 없다면서도, 조울증의 원인은 스트레스보다 유전이라고 한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받았어.'보다 '나는 조울증 유전자를 가지고 조울증으로 태어났어.'라고 생각하는 게 마음 편한지도 모른다.
조울증이 유전성이 강한 질환이라는 것은 이런 거다. 부모가 조울증인 경우 보통의 경우보다 조울증이 올 가능성이 3배에서 5배 높다. 인구의 1%가 조울증이니, 부모가 조울증일 경우 3% ~ 5%가 조울증이다. 결론은, 부모가 조울증일 경우 95%는 괜찮고 5%가 조울증에 걸린다. 인구 대비 1% 발병률인 조울증이 조울증 부모의 자녀 경우 3% ~ 5%까지 상승한다 해서 유전성이 강한 정신질환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의 조울증의 원인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다만, 나는 조울증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다. 원래 신경전달물질이 불균형하지도 않았다. 사랑과 군대의 스트레스 때문에 조울증에 걸렸다.
나의 꿈은 아내 에미마랑 아들 요한이랑 집 도서관 카페에서 책 읽고 글 쓰는 작가가 되는 것이다. 이 책 『사랑 때문에, 조울증』은 작가를 꿈꾸는 나의 첫 번째 책이다. 이 주제와 내용으로 책을 쓰기 시작한 것은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랍 속 노트에 사랑 때문에 잃어버린 나의 청춘의 편린들을 '메모하기' 시작한 것이 2015년 봄이었고, <다함스토리>라는 이름의 네이버 블로그에 본격적인 '글쓰기'를 시작한 것은 2019년 여름이었고, 12번 떨어지고 13번째 브런치 작가가 되고 나서 브런치에 '책 쓰기'를 시작한 것이 2020년 가을이었다. 작가가 되기 위해, 매일 브런치에 글을 쓰고, 매년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응모한다.
브런치 작가가 되어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마다 응모했던 브런치북의 원래 제목은 『다함스토리』였다. 『사랑 때문에, 조울증』으로 제목을 바꾼 것은, 출판사와 에디터에 눈에 들어 당선작으로 검토될 수 있는 섹시한 제목이 필요했다. 제목을 바꾸었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가제'일 뿐이다. 출판 과정에서 출판사와의 협의를 통해 최종 제목이 정해질 것이다.
내가 이 책 본문 내용의 주인공이었을 시절 나의 꿈은 '사랑' 그 자체였고, 지금 나의 꿈은 '사랑 이야기를 쓰는 작가가 되는 것'이다.
나는 소녀를 사랑했지만, 소녀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고, 스물한 살 군대에서 조울증에 걸렸다. 사랑의 끝에서 아내 에미마를 만났고, 아들 요한이의 아빠가 되었고, 조울증을 극복했다. 사랑 때문에 조울증에 걸렸고, 사랑 때문에 조울증을 극복했다.
조울증을 극복했다는 의미가 더 이상 약을 먹지 않고 완치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조울증의 세계에서 그런 차원의 극복은 없다. 두 주에 한 번씩 병원에 다니고, 매일 밤 약 몇 알씩 꾸준히 먹고, 다시 회사에 다니며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아내 에미마랑 아들 요한이랑 사랑하며 살며, 별 일 없이 산다. 그런 의미의 극복이다.
낮에는 회사에 다니고, 밤에는 아내 에미마랑 아들 요한이랑 놀고, 틈틈이 글 쓰며 작가를 꿈꾼다. 이 책은 그런 사랑 에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