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소녀를 사랑하고 완전히 마음에서 떠나보내기까지 7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소녀를 사랑하는 7년 동안 눈이 돌아가고 가슴이 설레는 다른 여자들도 있었다. 두 번째 사랑 아리따운꽃에 대한 새로운 짝사랑이 시작되고 끝나기까지 3년의 시간이 걸렸다. 이때도 또한 중간중간 다른 여자에게 마음이 설레기도 했다.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고 가수 하림이 노래 불렀다.
3년을 아리따운꽃을 내 마음속에 품었다고 하지만, 아리따운꽃을 교회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처음 1년뿐이었다. 졸업하고 집으로 돌아갔으나 아직 그 마음을 떠나보내지 못했을 때,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었다. 2005년에 시작된 아리따운꽃에 대한 짝사랑은 2008년도에 끝이 났다. 2006년도에 새로운 사랑이 겹치며 시작되어 천천히 아리따운꽃을 잊기 시작했다. 2006년도에 시작된 새로운 사랑으로 바로 아리따운꽃을 잊지 못했던 것은, 새로운 사랑이 '사랑해서는 안 되는 여신'이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짝사랑은 배우 한효주였다. 팬으로서 좋아했던 것이 아니라 여자로서 사랑했다. 일찍이 자수성가하여 사회적 성공을 거두거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있었더라면, 한효주와 스타벅스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 할 수 있는 셀럽이 되었다면, 한효주에게로 가는 길을 만들었을 것이다.
한효주 이후 나의 이상형은 '예쁘고 착한 여자'로 바뀌었다. 아내 에미마를 만나 결혼할 즈음 나의 이상형은 '나를 사랑하는 여자'로 바뀌었다.
친구들이 연예인을 좋아할 때, 나는 연예인을 좋아하지 않았다. 팬으로도 아무 관심이 없었다. 서태지가 나왔을 때도, HOT가 나왔을 때도, 핑클이 나왔을 때도, 전지현 송혜교 김태희 등이 나왔을 때도, 세상 돌아가는 것을 잘 몰랐다. 크리스천 음악 CCM 가수 김명식과 송정미 컨티넨털싱어즈 힐송 등을 좋아했다.
대학교에 입학해서야 CCM 대신 김광석, 유재하, 봄 여름 가을 겨울, 윤종신, 이승철, 신승훈, 이소라, 토이, 빛과 소금, 시인과 촌장, 정태춘과 박은옥, 윤도현 밴드, 안치환 등등의 음악을 좋아했다.
좋아했던 연예인이 있었다면 피아니스트 노영심이었다. 이화여대 피아노과에서 클래식 전공을 하고, 변진섭 등과 함께 팝뮤직도 한 뉴에이지 피아니스트이다. 대학교 1학년 때 세종문화회관에서 하는 노영심의 <이야기 피아노> 공연을 보러 혼자 티켓을 끊어 갔다. 아는 여자 친구들과 같이 가고 싶었는데, 내 또래 중 노영심 콘서트를 돈 내고 가고 싶어 하는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무료 초대권이 있어도 갈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서태지나 HOT 콘서트도 아니고 말이다.
피아니스트 노영심이 나보다 13년 연상인데, 제가 스무 살 때 13살 연상이면 한창 꽃 피는 나이이고, 노영심 씨가 결혼하기 이전이었다. 노영심 씨는 영화감독과 결혼을 했었는데, 조용히 이혼을 한 것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혼 후에도 전 남편인 영화감독의 영화에 노영심 씨가 음악감독으로 참여하기도 하고 친구처럼 지낸다고. 지금은 본명이 아닌 가명으로 영화음악 등을 하시면서 지낸다고도 들었다. 노영심은 《그리움만 쌓이네》를 불러 주목을 받았고, 변진섭의 《희망사항》의 작사가 작곡자로 유명했다. 변진섭의 《희망사항》은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여자, 밥을 많이 먹어도 배 안 나오는 여자" 이런 가사의 그 시대의 유행가였다. 변진섭이랑 같이 다녀서, 둘이 연인이나 부부인 것으로 오해받기도 했는데, 그런 사이는 아니었다고 한다.
한효주를 사랑하기 시작한 것은 2006년 KBS 드라마 《봄의 왈츠》에 여주인공으로 출연했을 때부터였다. 팬심이 아니라 이상형을 TV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2003년도에 미스 빙그레로 데뷔하여, 2004년도에 논스톱 5에 잠깐 단역으로 나왔다가 고정으로 출연하고, 2006년도에 투사부일체에 조연으로 나왔지만, 그때는 잘 몰랐다. 《봄의 왈츠》를 통해 한효주를 알게 되었다. 드라마 《봄의 왈츠》는 윤석호 PD의 사계절 시리즈《겨울연가》《가을동화》《여름향기》의 마지막 작품이었는데, 국내에서는 시청률이 나오지 않은 망작이었지만, 해외 여러 국에 판권을 팔아서 윤 PD의 사계절 시리즈 가운데 돈은 가장 많이 벌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스토리와 캐스팅은 좋았는데, 주요 배우들이 모두 신인들이고, 뒤로 갈수록 전형적인 신파가 되어서, 국내 흥행은 실패했던 것 같다. 남자 주인공 서도영이 잘 생겼지만 한효주 또한 신인이었기 때문에, 한효주를 받쳐줄 수 있는 톱스타 남자 배우를 캐스팅했더라면 국내에서도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지 않나 생각해 본다.《봄의 왈츠》는 소문난 망작이었지만, 나에게는 인생 드라마였다.
한효주가 이상형이라고 하니, 그 당시 다니던 교회의 자매님 한 분이, 본인이 한효주와 같은 미인대회 '미스 빙그레' 출신인데, 연결시켜 줄까 하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하였다. 그때 한효주는 신인이어서 지금 정도의 여배우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내가 넘볼 수 있는 수준도 아니었다. 한효주 또한 여신 가운데 하나였다. 한효주를 여자로서 사랑했지만, 팬클럽에 가입하거나, 편지를 보내거나, 생일선물을 보내거나, 소속사나 집 근처를 기웃거리거나, 한효주 소속사의 매니저 등 직원으로 입사를 도모하거나, 어떻게 커피 한 잔 마실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본다거나, 그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다. 평생 사랑할 단 하나의 인연을 찾아 끊임없이 수많은 여자들을 사랑했던 내가, 유일하게 그 어떤 작업도 시도해 보지 않은 여자는 한효주였다. 작업을 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제가 한효주에게 작업을 걸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면, 그 이후 다른 여자들을 사랑하거나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찍 대중들에게 사랑받고 인정받는 정상급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더라면, 내 책을 들고 한효주를 찾아가 한효주 한 사람을 위한 사인회를 해 주고, 스타벅스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 함께 마시고, CGV에서 영화 한 편 같이 보면서, 인연을 시작하였을 것이다. 그랬다면 한효주가 끝사랑이 되었을 테고, 더 이상 사랑을 찾아 뜬구름 잡는 인생여행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랑해서는 안 되는 여신을 사랑했었다. 그 사랑을 이루기 위한 그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다. 그 어떤 다른 사랑처럼 마음이 애타지 않았고, 그 사랑 때문에 상사병에 걸리거나 조울증이 재발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니, 가슴이 아프지도 않았다. 일찌감치 한효주와 스타벅스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 마실 수 있는 인물이 되었더라면, 나의 사랑 나의 아내 에미마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책의 이야기는 다른 수많은 여자들을 향한 짝사랑 이야기이지만, 결국 결론은 기승전 결국 여차저차해서 아내 에미마를 만났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