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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Sep 23. 2022

이젠 잘하는 것만 잘하고 싶다


"매니저님, 영어 잘하시잖아요."

"영어를 잘하는 게 아니라, (대학 때) 전공이 영어교육이었어요."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는 여러 가지 사업을 한다. 그중 하나가 돈가스 레스토랑이다. 원래 두 명의 조리사가 주방에서 일했다. 한 명은 이미 그만두었고, 다른 한 명은 퇴사를 앞두고 있고, 새로운 조리사가 일을 시작하여, 인수인계 중이다. 현재 주방보조가 없어, 내가 오전 피크타임까지 주방보조 일을 하고 있다. 주방보조가 내 일은 아닌데, 회사의 빈틈을 채우는 게 내 일이니, 이 일도 일이려니 다.


회사 레스토랑은 주가 배달이고 부가 홀인데, 최근에는 홀 손님도 많다. 요 며칠 외국인 홀 손님이 많았다. 그래서 퇴사 준비운동을 하고 있는 조리사가 내가 영어를 잘한다고 새 조리사에게 말했다.


재수할 때 수능 영어에서 듣기 평가 한 문제 틀리고 다 맞았다. 문과 학생 중 공부 좀 한다는 애들이 거의 나와 비슷했다. 나는 내가 영어를 그나마 잘하고, 그나마 영어에 흥미가 있다고 착각했었다.


대학에 와서야 내가 영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수능 영어가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하기에 충분치 않는 것을 차치하고도, 나는 기본적으로 한국사람이 왜 영어를 공부해야 하나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아주 틀린 논리는 아닌데, 대학에서 전공이 영어인 사람이 그런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다른 과를 가던지, 생각을 고쳐 먹었어야 했다.


나의 인생의 모든 실패의 탓을 스물한 살 때 걸린 조울증에 돌리는 것 같기도 하지만, 실제로 조울증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던 것도 어느 정도 사실이기는 하다.


수능 영어에서 듣기 한 문제 틀리고 다 맞을 정도 영어를 한다. 대학 때 토익 점수를 따야 하는데 그렇게 토익 공부하기가 싫어 겨우 790점까지 갔었던 그 정도 영어를 한다. 서당 개 삼 년에 풍월을 읊는다고, 대학 때 그렇게 공부를 안 했지만, 13년 반을 영어교육과를 다니며 졸업한 동안, 주워들은 정도 영어를 한다. 1년 반 정도 초등학교에서 영어회화전문강사 하면서 영어로 수업한 정도 영어를 한다. 네팔 아내 에미마를 만나서, 한국어로 의사소통이 안 될 때, 영어로 소통을 한 정도 영어를 한다.


일반 한국사람 평균보다는 영어를 잘하고, 영어를 잘하는 사람보다는 못 한다.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정도로는 영어를 하고, 영어로 밥 먹고 살기에는 힘들다.


나에게 영어가 어려운 것은 사실 단어다. 영어를 유창하게 잘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게 어휘력이라고 생각한다. 토익 공부를 하다 보면, 문법이 부족하다고 나오는데, 사실 영어를 하는데 문법의 어려움은 거의 느끼지 않는다. 나의 문법의 오류도 사실 문법이 아닌 어휘의 가난함이다.


지금은 한국사람이 왜 영어를 배워야 하냐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어를 배워야 하고,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영어를 배울 열정과 여유가 내 안에 더 남아있지 않다. 배움 자체의 열정이 사그라들었다기보다, 다방면으로의 배움의 열정이 사그라들었다.


가능하면 대부분의 영역에서는 그냥 지금 가지고 있는 것 가지고 살고 싶다. 회사에서도 회사와 나 개인의 동반성장을 위해 더 공부하고 싶지 않다. 그냥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 가지고 할 수 있는 것만 하다 퇴근하고 싶다. 회사가 그렇게 놔두지는 않지만 말이다.


배움 자체의 대한 열정이 사그라들었기 보다도, 내가 배우고 성장하고 싶은 분야가 시간이 갈수록 아주 제한적이고 한정적이 되어 간다.


내가 하고 싶은 것과, 내가 잘하는 것과, 내게 의미가 있는 것만, 배우고 싶다.


평균적으로 나는 다재다능한 편이다. 다만, 대부분의 면에서 프로페셔널하지 않다는 의미다. 꼭 프로페셔널해야 하나도 생각하지만, 프로페셔널해야 한다면, 내 인생을 걸고 싶은 그 작은 영역을 깊게 배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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