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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Oct 06. 2022

퇴근길 돌아 돌아 글쓰기


퇴근은 정시에 했다. 회사에서 퇴근을 했으니 글쓰기로 출근할 시간이다. 배가 고팠다. 전철에서 카톡으로 맥도날드 불고기 버거 세트를 나에게 선물했다. 퇴근 후 라이프가 꼬이기 시작한 것은 그 지점부터였다.


집으로 가는 전철을 갈아타는 신도림역에서 맥도날드에 가려고 게이트를 나왔다. 신도림 맥도날드에는 세 개의 키오스크가 있는데, 두 개의 키오스크는 작동을 멈추었고, 한 개의 키오스크에만 사람들이 긴 줄로 서 있었다. 내 차례가 왔는데 직원이 와서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있는 내게 뭐라고 한다. 더 이상 주문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직 영업시간이 한창 남았는데 말이다.


스마트폰 배터리는 5퍼센트밖에 남지 않았다. 근처 맥도날드를 검색했다. 전철로 한 정거장 영등포역에 있었다. 영등포역 맥도날드에서 스마트폰이 꺼지기 직전 간신히 키오스크에 모바일 쿠폰으로 결제를 했다.



전화를 할 수도, 넷플릭스를 볼 수도, 밀리의서재를 읽을 수도, 브런치와 블로그에 글을 쓸 수도 없었다. 며칠 전 합정역 교보문고에서 산 김초엽 작가의 에세이집을 펴 들었다. 김초엽 작가를 좋아해서는 아니다. 나는 김초엽을 모른다. 요즘 핫하다는 것만 안다. 에세이의 진심인 나는 합정역 교보문고에서 책을 보다 요즘 핫한 작가의 에세이를 읽고 싶어졌다.


김초엽 에세이를 읽으며 영등포역에서 전철을 탔는데, 수원 쪽이 아닌 인천 방향 전철을 탔다. 많이 지나 소사역까지 가서야, 내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시 퇴근했는데, 기어이 햄버거 먹으러 신도림역을 나왔다 영등포역에 갔다가, 결국은 책 보다가 전철을 잘못 타서, 10시에야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아내 에미마는 스마트폰이 꺼진 채 그 시간에 들어온 내가 전철을 놓친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종종 일어나는 일이라 그러려니 한다. 나는 원래 혼자 밖에 나가면, 우산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전철을 잘못 타서 다른 곳으로 가기도 한다. 아내도 내가 그런 사람이란 것을 안다.


인천 방향 소사역에서 구로역까지 와서 수원 지나가는 전철을 탔다. 50대로 보이는 술 취한 아저씨가 씨발 씨발 하며 같은 칸에 탄 승객을 상대로 일장연설을 하며 난동을 부렸다. 80대 노인 분이 젊은이 조용하게 해도, 20대 여성이 아저씨 여기 앉으셔서 주무세요 해도, 전혀 요동이 없었다. 술 주사라 말의 맥락과 논리가 없었다. 알아들을 수 있는 요지는 '시진핑 푸틴 김정은 개새끼'였다. 시진핑 푸틴 김정은 좋아하는 서울대 교수가 왜 자기 딸은 중국 러시아가 아닌 미국 유럽에 유학을 보내느냐는 것이다.


'시진핑 푸틴 김정은 개새끼' 그 말의 옳고 그름은 중요하지 않다. 술 먹고 전철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책을 읽고 있는데, 주정뱅이 주정 때문에 아무리 집중하려 해도 허사였다. 금정역에서 역 직원이 들어와서 술 마신 개를 끌어내렸다.


집에 왔더니 아내는 내가 전철을 놓친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딴 데 갔다 늦었으면 아내가 뿔이 나는데, 퇴근길 전철을 잘못 타 헤매다 들어오면 이해한다. 아들 요한이는 아직 안 자고, 내가 처음 보는 예쁜 잠옷을 입고 예쁜 미소와 함께 나에게로 아장아장 걸어와 나를 반긴다.


밥 먹고 요한이를 재우러 들어갔다. 아내는 오늘 요한이가 일찍 자지 않을 것이라 했는데, 난 재워 보겠노라 데리고 들어갔다. 잘듯이 잘듯이 잠에 들지 않았다. 잠에 기운에 아들은 취했는데, 그 기운이 아들의 눈꺼풀을 감기지 못했다. 이제 잠에 들겠구나 했는데 아들은 캄캄한 방에서 눈을 뜨고 엄마 아빠 말을 한다. 아내는 요한이는 자기가 재운다고 나는 자라고 한다.


아내에게 허락을 구하고, 30분만 글 쓰고 자기로 하고, 작은 방 침대에 등을 기대고 누워, 스마트폰으로 글을 쓰다 보니 30분은 한 시간이 되었다.


일찍 자고 출퇴근 길 글을 쓰는 게 가장 이상적인데, 출근길에는 조느라 글을 쓰지 못하고, 퇴근길에는 넷플릭스를 보거나 스마트폰 배터리가 방전이 되어 글을 쓰지 못한다.


요한이와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재운 후에 글을 쓰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글 쓸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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