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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Nov 01. 2020

오빠의 중심을 봤어요

코로나 사태로 교회 예배도 제한이 되고 있다. 교회에 부정적인 사람들은, 코로나에도 교회에서 예배와 모임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교회가 헌금 욕심 때문에 오프라인 예배와 모임을 강행한다고 생각한다. 20대는 나일롱 신자였고, 30대는 무신론자여서, 교회에 부정적인 사람들의 생각은 이해한다. 그렇지만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때도 있었고, 교회 주변만 맴돌던 선데이 크리스천 시절도 있었고, 종교의 그늘로부터 벗어나고 싶었지만 벗어날 수 없었던 시절도 있었지만, 평생 기독교 세계 주변에서 살아왔던 사람으로서, 교회와 성도들이 대면 예배와 모임을 강조하는 본질은 돈 때문에는 아니다. 비대면 예배로 인해서 교회와 목회자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도 사실이지만, 대면 예배와 모임을 사모하고 교회 예배와 모임을 제한하려는 정부에 대하여 반발하는 이유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코로나 정국이라도 소상공인은 가게에 문을 열어 장사를 하고, 직장인들은 버스와 전철을 타고 출근하여 경제생활을 해야 하는 것처럼, 기독교인에게 예배와 성경공부는 취미가 아니라 삶이고, 밥을 먹고 숨을 쉬는 것과 같다. 기독교인들에게 예배는 생명이고, 아직까지 온라인 예배가 아닌 오프라인 예배만이 진정한 예배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믿는 세계와 믿지 않는 세계에 모두 발을 디디고 살아보았던 나로서는, 왜 교회는 이런 사태에서도 오프라인 모임을 강행하느냐 하는 교회 밖의 논리도 이해가 가고, 예배와 신앙 모임을 사모하는 교회 안의 논리도 이해한다. 문재인 정부의 K 방역이 코로나 확산을 막으려는 정부의 의지이겠지만, 코로나 정국에 기대어 정부와 집권 세력에게 불편한 진영에 대해 소위 '민주적 통제'를 시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있다. 교회 밖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기독교인에게 교회 예배당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성경공부를 하는 것은, 밥을 먹고, 숨을 쉬고, 생계를 위해 돈을 벌고, 버스와 전철을 타고 이동하며, 일상생활을 하는 것과 같다.


코로나가 한창 기세를 부리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면서 교회 예배도 제한되었다. 온라인 예배를 진행하기 위한 스태프를 포함하여 최소한 모일 수 있는 인원의 제한이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법으로 강제하고 제한하는 것은 우리나라만의 일도 아니고, 우리나라가 가장 강력하게 실시하는 것도 아니다. 아내 에미마의 조국 네팔은 아예 Lock Down을 실시해 모든 경제활동과 사회활동과 이동을 금지하기도 한다. 우리는 강력한 민주적 통제를 하면서도, 경제활동이나 사회활동을 제재할 수 없는 민주국가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열어둘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정부가 잘하고 있다는 것도 아니고, 못하고 있다는 것도 아니고, 잘하는 것도 있고 못하는 것도 있다는 것도 아니다. 나는 뚜렷한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있지만,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책은 그런 평가와 논쟁을 하는 책은 아니다. 내가 느끼는 대한민국 정부의 스탠스를 표현하는 것뿐이다. 문재인 정부의 K 방역을 정치 방역이라고 느끼는 진은, 정부의 방역이 불필요하고 과도하다는 것 이전에, 그 방역의 균형과 공평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왜 카페는 되고 교회는 안 되나 그런 이야기다. 강력하게 통제하려면 다 같이 강력하게 통제하던지,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 등 강력한 방역을 시행하면서도 정상적인 경제활동과 사회활동이 가능할 수 있도록 가능한 열어주자 하면 다 같이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쪽에는 느슨하게 두고, 저쪽에는 쪼이니까, 정치 방역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동일한 기준으로 규제해야 하는데, 대상에 따라 규제의 정도가 다르고, 정부에게 불편한 세력에 대하여 다른 기준을 가져다 대지는 않는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드는 것이다.


지금 나는 교회를 다니는 기독교인이고, 과거에 유럽식 사회민주주의 진보좌파였다가, 문재인 정부에서 좌파 사회주의의 민낯을 경험하면서 자유민주주의자로 전향하였지만, 과거 군사정부 때와 비교하여 이 정도를 종교탄압이나 독재다라고 보지는 않는다. 자신이 불편한 세력에 대해, 코로나 상황을 이용해 소위 '민주적 통제' 정도를 하고 있다는 게 나의 판단이다. 입만 열면 민주주의를 외치는 사람들이 뻔뻔하게 내로남불을 보여주고, 자신과 타자에 대한 기준과 잣대가 다른 것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는 것뿐이다. 




현재 주일예배는 가능하지만, 비대면 예배 운영 인력과 소수의 성도만 예배가 가능하다. 대한민국 기독교는 매일 새벽예배를 지켜 왔는데, 내가 다니는 교회도 예전에는 새벽예배를 드리다가, 언제부터인가 성도들이 퇴근 후 나올 수 있는 저녁시간으로 바꾸었다. 코로나 정국으로 평일 모임을 대면으로 드릴 수 없는 상에서, ZOOM 앱으로 비대면으로 성경을 읽는 저녁 성경 읽기 모임을 가지고 있다. 주일예배만 대면 예배로 드리고, 주중의 저녁에 성경 읽기 모임은 ZOOM 앱으로 비대면으로 온라인으로 하고 있다. 영상 송출 인력과 소수의 인원만 참가할 수 있는 주일예배는 대면 예배와 유튜브 영상예배를 병행하고 있다.


아내와 ZOOM을 통하여 교회의 온라인 성경 읽기 모임에 참여하는 중이었다. 성경 어디인지는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보신다.'라는 말씀을 읽었다. 성경을 다 읽고, 자신이 감동을 받은 말씀을 나누는데 누가 이 말씀을 나누었다. 아내가 이 나눔을 들으면서, 내 옆에 앉아서 내 귀에만 들리게 조용하게 이런 고백을 했다.


"오빠, 나는 오빠의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봤어요."

아내가 나를 만났을 때, 내 상황과 조건 외적인 모습을 보지 않고, 내 안에 있는 중심을 보고, 나를 사랑하고 나와 사귀고 나랑 결혼해주기로 했다는 뜻일 것이다. 나는 에미마에게 다른 고백을 했다.


"나는 에미마 외모도 봤는데. 에미마의 중심도 봤지만."

아내 에미마가, 예쁘고, 착하고, 스마트하고, 외적인 측면도 어디 빠질 데 없이, 내가 본 여자 중에서 세계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뜻이었다. 중심도 아름다운 여자이기도 하다는 의미도 덧붙였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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