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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Oct 27. 2022

병원의 추억


2000년 봄이었다. 스물한 살 군대에서 조울증에 걸렸다. 나의 첫 병원은 군 병원이었다. 병원이었지만 동시에 군대였다.

군생활을 하던 나는 어느 날 갑자기 내일 우리 모두 총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세계평화에 이르는 법을 깨달았다. 상부에 보고하면 청와대에서 나를 부르러 올 것이었다. 중대장이 "다함아, 좋은데 가자." 했고, 따라간 곳은 군 병원 정신과 병동이었다.

일반 군부대 내무반이 짬밥 순이었다면, 군 병원 정신과 병동은 약밥 순이었다. 계급장 떼고 먼저 입원한 사람이 고참이 되었다. 퇴원했다 다시 입원하는 경우도 간혹 있었는데, 다시 밑에서부터 시작했다.

군 병원에서 서열이 높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할 일이 많아진다. 내가 군 병원 정신과 병동에서 서열이 높아졌을 때, 내 위에도 아래도 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에, 할 일이 많이 있었다. 정신과 환자 중에는 작은 일도 하기 어려운 상태가 메롱한 경우가 많이 있다.

2000년 1월 입대한 나는, 내가 기억하기로 그해 4월 군 병원에 입원했고, 6월 퇴원과 동시에 의병 제대했다. 군복, 군화, 양말, 팬티, 런닝 등 군대에서 받은 것은 먼지 하나 집에 가져오지 못하고 소박맞아 쫓겨나듯 전역을 했다.


그리고 두 번째 입원은 2009년 가을이었다. 입원하지 않았을 때도 상태가 좋았던 것은 아니나, 입원을 하게 되는 상태는 또 다르다. 2009년은 내 일생일대 최대의 위기였다. 그때 나는 길에서 객사할 수도 있었던 위기의 청년이었다.

상태가 메롱하던 어느 밤 부모님께서 나를 아주대병원 응급실에 데리고 가셨던 기억이 희미하게 있다. 아주대에서는 당장 입원시켜야 하는 상태인데, 아주대 병동에는 자리가 없다며, 인근 입원 병원 몇 군데를 소개해 주었다.

나는 이름이 아주 편한 아주편한병원을 선택했다. 병원장 선생님은 TV에도 나오는 유명한 분이셨지만, 아주편한병원은 아주 편하지 않았다. 그 병원만 그런 것은 아니고, 보통의 정신과 입원 병원이 그렇다.

3개월 입원하고 나왔는데, 그 병원에 대한 추억과 기억은, 아주 편하지 않았다는 것 그 하나뿐이었다.


병원에서 퇴원하고 그 병원에 외래를 다니는 대신, 직전에 외래를 다니다 발걸음을 끊었던 분당서울대병원에 다시 찾아갔다. 분당서울대에서의 나의 주치의는 조울증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이신 하규섭 선생님이었다. 하 선생님은 아직 내 상태가 좋지 않다고 당장 입원하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분당서울대병원에 입원했다.


보통의 입원 병원이었던 아주편한병원이 아주 편하지 않았다면, 분당서울대병원은 천국이었다. 특급 호텔이 따로 없었다. 그럼에도, 정신과 환자의 보호자들이 병원 선택을 고민하는 상담을 요청받으면, 나는 대학병원이나 대형 종합병원에 가지 말고, 보통의 입원 병원 가라고 조언한다. 입원비 때문이다. 자본주의 세상의 천국의 내 몸을 누일 한 평의 공간은 상상초월로 비싸다. 분당서울대 2주 입원하고 어머니가 병원에서 나를 뺐다. 초등학교 부부교사 가정이 감당하기에 고작 2주간의 입원비가 준 내상이 컸기 때문이다.


보통의 입원 병원은 조울증 우울증 조현병 알콜중독 지적장애 심지어 치매까지 온갖 환자들이 섞여 있다. 분당서울대에서는 기분장애 환자들 중심으로 병동 하나가 있었다. 우울증 조울증에 공황장애 정도의 환자들만 같은 병동을 썼다.

 


아주편한 거실에는 교회 장의자 몇 개가 있다면, 분당서울대 거실에는 특급호텔 스위트룸 응접실 소파가 있다.


분당서울대의 하루는 이렇다. 아침에 고급 소파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향이 좋은 차를 마시며 차담을 나눈다. 오전 오후 외부에서 오시는 전문 강사님이 하시는 몇몇 개의 프로그램을 내가 선택하여 들어갈 수 있고, 심지어 병원 프로그램이 백화점 문화센터 클래스 정도가 이렇겠지 싶을 정도로 재미있다. 식사는 수레로 병동에 가져다주는데, 나의 기호에 따라 특식을 선택할 수 있었다. 퇴원 시 정산이 달라질 뿐이다.


분당서울대나 아주편한이나 사실 정신과 병동 라이프가 구조적으로 크게 다르지는 않다. 하루 세 끼 밥 먹고, 거실에서 TV 보거나 방에서 쉬고, 간식 먹고, 오전 오후 프로그램이 있는데 자율적으로 참가하고, 의사 선생님 면담하고, 밤에 약 먹고.


둘의 차이는, 호텔과 감옥의 차이가 아니라, 특급호텔과 축축한 모텔의 차이다. 푸르지오 아파트와 LH 주공아파트의 차이다. 당연히 푸르지오에 살고 싶지만, 주머니 사정에 맞추어 적응할 수밖에 없고, 생각 먹기에 따라서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다.


분당서울대 정신과 병동의 특징은 개방병동이다. 간식을 주마다 정해진 날 시킬 필요가 없었다. 병원 내 편의점에 가서 사 먹으면 되었고, 병원 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올 수 있다. 그렇다고 환자관리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병원 전체 CCTV를 통해 환자가 병원 밖에 나가는지 여부가 모니터링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는 정신병원과 실제 정신병원은 다르다. 교도소 독방처럼 갇혀 약 먹고 침 질질 흘리고 누워 있지 않다. 철창은 방마다 되어 있는 게 아니라, 병동 문에 하나 있을 뿐이다.

병동 가운데는 거실이 있고 의자가 있고 TV가 있다. 낮에는 병동 거실에서 TV를 보거나 자기 병실 침상에서 쉬고, 프로그램에 자율적으로 참여한다. 간식을 주문해 먹을 수 있는데, 다음 달 통신료에 붙는 핸드폰 소액결제처럼 다음 달 입원비에 붙는다. 내가 입원했던 분당서울대 병동은 보기 드문 개방병동이라,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언제든 나가서 사 먹고 들어오면 되었다.


2014년 가을 내 조울증 인생의 두 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강제 입원을 당하여 끌려가는 엠블란스에서 나는 분당서울대나 광진구 국립정신건강센터를 요구했는데, 부모님 의지대로 화성시 병점역 근처의 새샘병원으로 갔다.

그 이후로도 몇 차례 입원했는데 새샘병원으로 입원했다. 강제입원이 금지라지만, 정신질환의 특성상 대부분의 입원은 가족에 의한 강제입원이다. 환자가 거부해도 환자의 상태에 따라 강제 입원해야 할 시기가 있다. 정신적인 문제로, 자신을 해 하거나, 사회생활에 문제가 생기거나, 조절이 필요할 때가 있다.



아주 편하지 않은 아주편한병원과 천당 밑 분당 국내 최고의 대학병원 분당서울대병원의 입원한 환자의 만족도나 입원 기간 내 삶의 질은 도곡동 타워팰리스와 그 옆동네 판자촌 구룡마을만큼 차이가 크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치료 효과는 그렇게 차이가 없다. 정신병원에 호캉스 즐기러 가는 것은 아니니까.

돈이 남아돈다면 당연히 분당서울대 등 대학병원이나 대형 종합병원을 추천한다. 보통의 서민 중산층은 현실적으로 보통의 입원 병원을 갈 수밖에 없다.

환자 본인도 내가 이런 곳에 다시 오지 않겠다 생각을 하는 시간이 되면 좋지 않을까?


마지막 입원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났고, 아내를 만나서 요한이 아빠가 되고 조울증을 극복하고, 회사 다니며 글 쓰며 다닌다. 지금은 마지막 병원이었던 병점 새샘병원 때 주치의 여선생님께서 봉담에 개업하신 클리닉에 두 주에 한 번 다니며 약 타 먹으며 조절하고 있다. 선생님께서 개업하실 때 나를 데리고 떠나신 것은 아니다. 선생님이 새샘병원을 떠나시고, 내가 새샘병원에 갈 일이 있었을 , 새샘병원 원장님이 주치의가 개원했다고 생각 있으면 거기 가보라고 했다. 새샘병원 원장님과 주치의 선생님이 고려대 의대 선후배이기도 했고, 입원이 아니고 원래 주치의 선생님이 아니면 내가 새샘으로 외래를 다닐 리가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새삼 정신병원 입원의 추억이 생각나 두서없이 글을 써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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