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병원에 갔다. 두 주에 한 번 주치의 상담을 받고 약을 타기 위해 봉담의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에 간다. 조울증은 약 끊고 괜찮은 완치의 개념은 없지만, 약 먹고 괜찮은 조절의 개념은 있다. 약 꾸준히 먹고, 낮에는 회사에 다니고, 밤에는 아내 에미마랑 아들 요한이랑 놀고, 틈틈이 글 쓰며, 별 일 없이 산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조울증을 극복했다.
집에서 병원까지 버스로 50분 걸린다. 거리 상으로는 먼 거리가 아니나, 버스 노선이 돌아 돌아 돌아가서 오래간다. 다만, 집 앞에서 버스를 타면 갈아타지 않고 다이렉트로 병원 앞에서 바로 내린다.
중고차로 쉐보레 올란도를 사서 쉬는 날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좋은 데 다닌다. 회사 병원 등 나 혼자 다닐 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원칙이다. 토요일 내 차를 끌고 나간 것은, 병원 빨리 다녀와서, 스마트폰을 바꾸어주고, 동탄 롯데백화점에 가기 위해서였다.집 근처 수원역 롯데를 두고 동탄 롯데를 가려했던 것은, 동생 부부가 내가 없을 때 한 번 아내를 데리고 갔는데 좋았나 보다.
병원에서 돌아와 우리 집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주차를 하는데 지갑이 없었다. 그날 내가 움직인 동선을 되새겨 볼 때 지갑을 흘렸다면, 내 차가 아니면 병원 빌딩 안에서였다.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결제하고, 지갑에 카드를 넣고 병원을 나섰으니, 병원도 아니었다. 병원을 나서서 같은 층 화장실부터 병원 건물 지하주차장 사이에서 잊어버린 것이었다.
집에 올라가 아내 에미마에게 설명했다. 아내랑 지하주차장에 내려와 우리 차를 수색했다. 그리고 잃어버렸다면 병원 빌딩 안에서라, 차를 끌고 다시 봉담에 갔다. 예상했던 대로 병원에는 없었다. 내 차를 주차했던 공간에도 떨어진 지갑은 없었다. 관리사무소에 갔는데, 문을 두드려도 아무도 없고, 문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도 아무도 받지 않았다. 관리소장에게 전화를 하니, 자기는 오늘 비번이라고, 근무자에게 연락을 해보라고 했다. 근무자에게 연락을 하니, 들어온 지갑이 없다고 했다.
집에 돌아왔다. 지갑에도 돈이 없고, 카드에도 돈이 없으니, 별 문제 될 소지는 없었다. 다만, 카드와 신분증을 분실신고해야 했다. 카드번호를 모르는 카드가 난감했다. 한 계좌에 두 카드가 물려있거나, 한 은행에 두 개의 계좌가 있는 경우가 난감했다. 더 난감했던 것은 어머니 카드와 회사 법인카드였다. 전화해서 설명하고 정지시키면 되는데, 그런 소식으로 안 좋은 소리 듣고 얼굴 붉혀야 하는 게 싫었다.
아내가 차려준 늦은 점심을 먹으며 분실신고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지갑이 하나 나왔다고 확인해 보라는 것이었다. 서둘러 밥을 먹고 봉담에 다시 갔다. 지갑을 찾았다. 나는 그런 기억이 없는데, 경비원 말로는 내가 내 차 위에 지갑을 얹어놓고 운전을 해서 나갔다고 했다. 경비원은 나를 정신없는 사람 취급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지갑을 찾았다.
집에 오자마자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집 앞 스마트폰 대리점에 갔다. 갤럭시 노트 20을 쓰던 아내에게, 갤럭시 Z플립으로 바꾸어 주었다.
접는 폰이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폰까지 접어 써야 하나, 접는 폰이 팔릴까 싶었다. 위아래로 접는 플립이 나왔을 때는, 이건 좀 신박하다, 아내에게 사주면 좋겠다 싶었다. 접는 폰에 대한 편견은 사라졌지만, 지금도 나는 개인적으로 접는 폰을 쓰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폰은 갤럭시 S 시리즈면 충분하다. 대신, 아이패드나 갤럭시탭이 있었으면 좋겠다.
집 근처 휴대폰 대리점에서 새 폰 구매 결정을 하고, 각종 서류를 쓴 후에, 폰이 개통될 때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개통 시간마다 보조금 할인 등의 차이가 있나 보다.
그래서 폰이 개통되고, 데이터를 옮기는 시간에, 예정했던 백화점에 다녀오기로 했다. 그러한 사정으로 동탄 롯데백화점 대신 수원역 롯데몰에 갔다.
다이소에 가서 요한이를 위한 과일 알파벳 코팅 포스터와 고래 인형을 사고, 자라에 가서 요한이 옷을 사고, 요한이도 먹을만한 메뉴가 있는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이제 돌아기라 별도로 주문하지는 않고, 우리 밥과 반찬 중 먹을 수 있는 것을 먹인다. 요한이도 먹을 수 있는 메뉴를 고른다.
일요일 오후에는 이마트 트레이더스에 갔다. 누구에게 받은 신세계 상품권이 있었다. 어디서 써야 하나 고민하다가, 처음에는 이마트에 가기로 했다. 그러다 수원에 트레이더스가 있지 생각이 났다. 집에서 더 가까운 이마트도 있지만, 트레이더스도 차로 20분 거리밖에 되지 않는 데다가, 주차장이 여유가 있어 주차가 쉽고, 우리 집 옆 큰길로 좌회전 우회전 없이 20분 직진하면 트레이더스가 나왔다.
트레이더스의 쇼핑 카트는 크고, 아기를 태울 수 있는 의자가 달려 있었다. 아내 에미마가 좋았는지 "우리 월급 타는 날 한 달에 한 번 여기 오자" 했다. 물건 가격만 보이는 내게는 트레이더스가 생각만큼 싸 보이지는 않았는데, 상품의 양도 눈에 보이는 아내에게는 여기가 마음에 들었나 보다.
쇼핑하고 근처 저렴한 식당에서 '약소하게' 먹고 집에 들어가는 게 원래 계획이었다. 맛있어 보이는 유부초밥 세트가 있어 그거 사다가 집에서 먹었다.
조울증으로 오래 방황했던 나는, 어쩌다 다시 회사원이 되었다. 회사원 노릇 하는 게 체질에 안 맞고 힘들다. 그렇지만 이제는 회사원보다 돈 없는 생활이 더 힘들다. 나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에세이 작가가 될 것이고, 집 도서관 카페에서 책 읽고 글 쓰는 것으로 돈 벌며 살 것이다.
어쩌다 회사원이 되었는데, 싫지만 좋다. 아내 스마트폰도 내 마음대로 아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눈치 안 보고 바꾸어 주고, 내 차를 굴리며 아내랑 아들이랑 좋은 데 가고, 아내랑 아들이랑 쇼핑몰에 가서 아들 옷도 사고 맛있는 음식도 먹는다. 쉬는 날에는 아내랑 아들이랑 우리 차 끌고 가고 싶은 좋은 곳에 간다.
이번 주 토요일 동생 부부랑 에버랜드 간다. 예전 같았으면 동생 부부가 우리 집에 와서 우리를 데리고 갔는데, 이제는 우리 차로 가서 에버랜드에서 만난다. 그것도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