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다함 Nov 19. 2022

우리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아내의 생일이었다.


아내의 생일을 즈음하여 월차를 내고 충주에 갔다. 조화 인테리어가 예쁜 장어집에서 장어구이를 먹고, 넓은 잔디 마당이 인상적인 분위기 좋은 비채커피에서 차를 마시고, 충북 웰니스 힐링 관광지인 명상치유센터 깊은산속옹달샘에 들려 산책을 했다.


마침 아내의 스마트폰 교체주기가 되어, 갤럭시 노트20에서 갤럭시 Z플립4로 바꾸어 주었다. 플립을 사니 삼성 정품 웨어러블 액세서리 구매가 가능한 10만 원 상품권을 주어서 5만  더해서 블루투스 이어폰 Buds2 프로를 사 주었다. 거기다 아내가 가지고 싶은 6만 원짜리 플립 케이스를 사 주었다. 교체 시기가 된 스마트폰 바꾸어 주고, 액세서리 사 주는 게, 생일 선물 같지는 않아, 약소하게나마 5만 원짜리 목걸이를 사 주기로 했다.


아내의 생일 전날 밤 퇴근하면서 '신촌역 목걸이'를 검색하고, 연세대 가는 길의 액세서리 가게에 갔다. 목걸이가 전부 만 원짜리였다. 거기서 돌아 나와 다른 데 가서 5만 원짜리 목걸이를 샀어야 하는데, 만 원짜리 목걸이 세 개를 샀다. 이게 뭐가 틀린 것인지 모르는 남자들이 많을 것이다. 그 모지란 남자들 중 하나가 나였다. 아내는 내가 사 주기로 약속한 5만 원짜리 목걸이를 차고 여봐라 우리 남편이 사줬다 하고 싶었던 것이다. 샤워 한 번 하면 색이 바뀌는 만 원짜리 목걸이를 차고 밖에 나가 여봐라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아내는 섭섭했다. 실망감과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서 생일 선물로 목걸이는 취소하고, 길거리에서 3만 원 주고 만 원 짜리 목걸이 세 개 주운 것으로 하기로 했다. 올해 아내에게 주는 나의 공식 선물은 고급 폰과 고급 블루투스 이어폰과 고급 폰 커버로 하기로 했다. 대신, 아내가 사고 싶었던 폰의 광고사진 중 커버만 기본 구성이고 스트랩은 옵션이라, 긴 스트랩과 짧은 스트랩 두 개를 2만 원 주고 목걸이와 퉁 치기로 했다. 아내는 섭섭하고, 실망하고, 허탈했지만, 이게 아내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는 않았다.


생일 당일이었다. 그날은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퇴사까지 생각하는 수많은 날들 중 하나였다. 퇴근하고 아내에게 파리바게트에서 케이크 사가겠다고 약속했다. 아내는 집에서 퇴근하면 나랑 아기랑 케이크 자르고 사진 찍을 생각을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주말을 맞이하여 정리하느라 살짝 늦은 퇴근이었지만, 서둘러 귀가를 했다. 문제는 퇴근길 지하철에서 하루의 스트레스를 글쓰기로 풀다가 케이크 사는 것을 잊어버리고 집에 들어갔다. 아내의 얼굴의 표정과 웃음이 없어졌다. 나는 지금이라도 나가서 사 오겠다고 했고, 아내는 됐다고 사 와도 안 먹겠다고 했다. 케이크 하나 사 오는 것을 잃어버린 게, 아내에게는 생일날 내가 아내를 잊어버린 것일지도 모는다.


아내의 섭섭함도 충분히 이해하고, 나는 생각이 많아 원래 무엇이든 잘 잊어버리고 다니는 사람이라 내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아내도 그런 나를 잘 아는데 섭섭한 마음도 제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인데 어찌하랴?


평소보다 오버해서 청소도 하고, 요한이랑 더 재밌게 놀아주고, 더 적극적으로 요한이를 재우는데, 그 정도로 쉽게 풀어지지는 않는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들 재우다 잠 자기 전 글 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