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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확정되지 않은 스케줄대로 어디 가기로 했다

내일 바쁘기로 했다

by 최다함

- 매니저님, 내일 바빠요?


나는 동생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회사 대표가 동생이다. 회사에서는 나는 동생을 대표님이라고 부르고 동생은 나를 매니저님이라고 부르며 상호 존칭을 사용한다.


- 내일 어디 가기로 해서요.


내일은 토요일이다. 아내랑 아들이랑 어디 가기로 한 것은 사실이다. 나는 "춘천 갈까?" 했고 아내는 "보자." 했다. 내가 대학을 다녔던 곳이 춘천이기도 했지만, 춘천에 아내의 네팔인 친구가 산다. 틱톡에서 아내를 보고 아내에게 먹을 것을 선물 보낸 틱톡 친구다. 우리에게 차가 생긴 것을 알고 이제는 안 쓰는 아기 장난감 좋은 게 있다고 와서 가져가라 했었다. 확정되지 않은 토요일 계획이 있었다.


그제 회사 식당 조리사의 볼이 부었고, 어제는 더 부었고, 어제 오후 일찍 퇴근했는데, 오늘은 더더 부어 있었다. 세균이 침투했는데 항생제를 먹어도 안 들으면 째야 한다고 했다.


내일 바쁘냐는 회사 대표의 질문은 내일 나와서 일할 수 있냐는 의미였을 것이다. 내일 어디 갈 스케줄이 있다고 대답했다. 내일 스케줄이 있는 것은 일정 부분 사실이었지만, 그보다도 내 안에 토요일에 회사에 나올 여유와 열정이 없었다. 나의 회사에서의 매일의 목표가 퇴근이듯이, 나의 회사에서의 매주의 목표가 금요일 저녁 6시 주말을 기다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내가 없어도 회사는 돌아가고, 다른 대안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 오후에 회사가 있는 층 복도에서 퇴사한 전 조리사를 마주쳤다. 전 조리사는 동생의 처남이다. 토요일 동생 처남이 나와서 일하기로 했나 보다. 어차피 나는 나와봐야 할 수 있는 게 주방보조이지 조리의 영역은 아니다. 비상 시 사장인 동생이 조리의 영역도 커버하지만 무리라는 것을 느꼈나 보다. 퇴사한 전 조리사가 나와서 조리를 하고, 사장이 주방보조를 하지 싶다.


회사를 어쩔 수 없는 업보가 아니라, 현재 시점에서는 현실이라고까지는 받아들였지만,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는 일을 꾸준히 오래 하기 위해서는, 말려서 오버페이스를 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할 수밖에 없다.


어디 갈지 확정이 되지 않았다 뿐이지, 아내 에미마랑 아들 요한이랑 어디든 가는 것은 이미 확정된 토요일 스케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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