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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이런 날도 있다

오늘 두 시간 늦게 퇴근하고 내일 두 시간 늦게 출근한다

by 최다함

5시 57분이었다. 퇴근 3분 전이었다. 퇴근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회사 대표인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바쁘다고 도와달라는 전화였다.


- 매님, 저 이쪽 볼 부었지요?


회사에서 하는 레스토랑의 조리사는 매니저인 나의 직함을 줄여 매님이라 부른다. 사실 나는 남의 볼이 부어도 잘 모른다. 자세히 몇 번 들여다보니 진짜 부어있었다. 그게 어제 아침이었다. 그제 처음 붓기 시작해서, 어제 본격적으로 붓기 시작했고, 병원에 가서 항생제를 타서 먹었다는데 오늘은 더 부어있었다.

그런 이유로 조리사가 3시에 퇴근을 했고, 사장인 동생이 급작스럽게 조리사가 되었다. 소규모 요식업 사장은 조리사를 두고 운영해도, 조리사가 무슨 일이 생겼을 때는 본인이 직접 해야 한다. 나는 오전부터 피크타임까지 식당에서 주방 보조를 하고 밥 먹고, 사무실에 들어가 사무 일 하나를 처리하고, 앱 디자인 작업을 하고, 사업장을 청소하고 둘러보고 퇴근을 위해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주 잠깐 빡 쳤지만, 빡침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어차피 예정된 초과근무였고, 홀과 배달이 한가해질 때까지 퇴근시간을 기약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시간이 사장이 땜빵하기에는 홀 손님과 배달이 과부하가 걸릴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내가 납득이 가는 초과근무였기 때문에 빡침이 순간에 그쳤다. 원래 사장의 하루 목표는 그날 해야 할 일을 다 끝내는 것이고, 직원의 하루 목표는 시간 되면 퇴근하는 것이다. 반대로 사장은 오늘의 할 일만 다 한다면 늦게 출근해서 일찍 퇴근해도 되고, 직원은 정시 전에 출근해서 정시 넘어 퇴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로의 입장이 다르니 각자의 하루의 목표가 다르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평소에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배달 라이더가 다른 집 걸 집어갔다. 그 집에 갈 라이더가 우리 식당 홀에서 갈 길을 잃었다. 전화해서 다른 것 가져간 라이더에게 제 집에 가져다주게 하고, 길을 잃은 라이더에게 홀에 남은 걸 제 집 찾아주게 하면 될 텐데, 같은 배민1이라도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엉뚱한데 간 음식은 캔슬이 되고 재조리해서 홀에서 기다리고 있는 라이더가 들고 가게 되었다. 배민에서 그 비용은 보상해 주기로 했다. 그리고 홀에 남아있던 음식은 다른 라이더로 배차되었다.


여기서 언제나 일어날 수 있지만 평소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일이 또 일어났다. 남이 들고 간 자기 배달 음식이 재조리된 것을 10분 기다려 들고 간 라이더가 몇 분 후에 돌아왔다. 오토바이가 시동이 안 걸린다는 것이다. 자기가 배민에 전화해서 취소해주겠다는데 배민이 연락이 안 된다고 했다. 사장 동생과 나는 멘붕이었지만 다른 주문이 있었기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 채 기다렸다. 그러더니 몇 분 후에 라이더가 돌아와서 시동이 걸린다고 들고나갔다.


두 시간이 조금 지나 8시가 넘어서야 퇴근할 수 있었다. 대신 내일 두 시간 늦게 11시까지 출근하게 되었다.


늦은 퇴근에 빡치기 직전까지 갔지만, 내일 두 시간 늦게 11시까지 출근하니 기분이 좋다. 퇴근은 빠른 퇴근이 좋고, 출근은 늦은 출근이 좋다. 직원의 입장에서는 그렇고, 사장의 입장에서는 반대일 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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