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요한이 여권이 나왔다. 나는 회사를 다니느라 아들 여권을 만들러 갈 수가 없다. 한국에 온 지 3년 조금 넘은 네팔인 아내 에미마는 한국어 회화를 잘하고 한국문화를 잘 알지만 혼자 가서 아들 여권을 만들기는 어렵다. 부모님께서 일 보시러 수원에 올라오셨을 때 어머니께 부탁드렸다. 화요일에 신청한 여권은 2주 걸린다더니 목요일에 집으로 왔다.
아내 에미마가 아들 요한이를 데리고 여권사진을 만들러 사진관에 갔다. 요한이가 입을 다물지 않으니 집에서 찍어오라고 했단다. 어머니께서 우리 집 하얀 벽을 배경으로 요한이 사진을 찍어주셨다. 한쪽 귀가 잘 안 나왔다고 사진관에서 포토샵으로 이쪽 귀를 떼어다가 반전시켜 저쪽 귀에 붙였더란다. 그렇게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되니까 했겠고 되니까 여권이 접수되고 발급되었을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한국을 hell 지옥이라고 한다. 아무 이유 없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외국 한 번 나갔다 오면 한국은 살만한 나라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구가 생명이 '살 수 있는' 별이지만, 그게 지구가 생명이 '살만한' 별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세계 모든 국가 중 살만한 나라는 사실 거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그나마' 살만한 나라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네팔인 아내 에미마와 국제결혼을 했다. 네팔에서도 혼인신고를 했고, 아내의 결혼비자를 위한 각종 서류도 뗐다. 서류 하나 떼는데 하루 종일 걸리기도 하고, 며칠이 걸리기도 한다. 뒷돈도 주어야 한다. 뒷돈을 준다 하여 서류 발급이 빨라지고 원활해지는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도 지금은 아니지만, 오래전 우리 아버지 어머니께서 청춘이셨던 그때는 그랬을 것이다.
한국에 살면서도 네팔인 아내는 당연히 조국 네팔을 그리워 하지만, 한국의 행정 시스템은 빠르다고 한다. 병원 가서 아들 요한이 진료받는 것도 편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아내 에미마는 지금 homesickness 향수병에 걸려있는 듯하다. 엄마 에미마는 지금 엄마가 보고 싶다.
네팔에 다녀오기로 했다.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은 아니다. 캐나다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일하는 에미마 오빠가 회사에 낸 휴가 신청 승인 여부가 결정이 나야 한다. 캐나다 날짜로 오늘 금요일이니, 우리 날짜로 내일 토요일에야 그 결과를 알 수 있다.
에미마 오빠가 네팔에 들어오는 시기에 맞추어 우리도 네팔에서 한 달 살다 오기로 했다. 아직 일정이 확정된 것은 아니나, 아들 요한이의 여권이 나왔고, 공은 굴러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