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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Apr 29. 2023

오늘은, 로맨스 스캠


나의 인스타그램 본 계정 @dahamstory 말고 글스타그램 @daham.books가 있다. 프로필과 피드 게시물과 팔로워와 팔로잉 등 모든 데이터를 삭제하고 초기화했다 최근 다시 시작했다. 특별한 사건 사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글스타그램을 할 이유가 있어 열었는데, 글스타그램을 해야 할 이유가 없어 닫았다가, 글스타그램을 하고 싶은 이유가 다시 생겼다.


팔로워가 생겼다. 방문해 보니 멀끔한 프로필 사진과 이름이 전부인 비공개 계정이었다. 이런 경우 백이면 백 수상한 팔로워이라는 것을, 어떤 종류의 수상함인지, 경험상 또 여러 채널로 들어서 잘 알지만, 맞팔로우를 했다. 만에 하나 순수한 팔로워일 수도 있고, 예상대로 똥이라도 끊으면 되니 말이다. 역시나 똥이었고, 똥은 애초에 피해야 했다.


프로필 사진은 순수해 보이는 남자 청년이었고, 이름은 예를 들어 피터킴 같은 한국계 외국인 이름이었다. "안녕하세요"로 시작하는 DM이 왔는데, 한국어인데 한국어가 아니었다. 문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는데 한국인이라면 쓰지 않는 말투였다. 교포라도 말이다. 번역기 돌린 거다. 아니면, 일부러 그런 말투를 쓰는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뵙네요." 인사하길래 혹시나 나를 아는 사람인가 했다. 짧게 "네"라고만 대답했다. SNS에서 처음 말 걸면서부터 과도한 친밀감을 드러내는 그를 보면서 이 사람의 정체를 확신했다. 아니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만에 하나 혹시 아닐까 했다.


내가 그에게 여지를 준 것은, 모르는 비공개 계정이 나를 팔로우했고, 나는 그저 맞팔로우를 했을 뿐이다. 그에 인사와 질문에 "네" 단답으로 끊으며 너랑 대화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비쳤다. 과도하게 친밀함을 보이던 자상한 톤이 왜 나를 무시하냐는 톤으로 갑자기 바뀐다. 그에 대하여 나는 "I don't want to talk to who I don't know. Sorry. Don't DM me."라고 영어로 정중하면서도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랬더니 다정한 톤으로 바뀌었다. 사생활을 침해한 것 같아서 미안하다고. 내가 영어로 대답하니 그도 영어로 나왔다. 한국어보다는 영어가 자연스러웠다. 나랑 친해지고 싶다고. 언제 봤다고?


얘네들이 그런 애들이다. 과도한 친절을 보내고. 언제 봤다고. 과도하게 친절했다가, 왜 나를 무시하냐고 했다가, 다시 자상해져서 이해한다고 미안하다고 친해지고 싶다고. 언제 봤다고? 의도적으로 가스라이팅 기술을 시전 하는 것이다.



맞팔로우가 맺어지면 멀끔한 사진들이 나온다. 이 계정의 주인이 그 사진들의 주인이 아니다. 아마도, 그 사진들의 주인은 좋은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멀끔한 사진을 걸어 놓은 그 계정은 사기다. 전문용어로 로맨스 스캠이라 한다. 낚시를 던졌는데 문 사람이 이성이면 사랑으로 연기하고 동성이면 우정으로 연기한다.



보통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한 미군이 전형적인 예이다. 그중 독보적으로 유명하신 분이 킴 카스트로다. 킴 카스트로는 실존인물이고 사진도 그녀가 맞다. 그런데 그녀가 가장 큰 피해자다. 로맨스 스캠 범죄조직이 그녀의 사진으로 수많은 사기 계정들을 만들었고, 지금도 만들고 있다.


예를 들어 이런 거다. 자기는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해 있는 미군인데. 계급도 높고, 근무 연차도 높아서, 돈도 많다고. 은퇴하고 니가 있는 한국에 가서 비즈니스를 하고 싶다고. 너에게 투자를 하고 싶다고. 내가 돈을 거기서 받을 수 없다고. 우편으로 보낼 테니 받으라고. 그 상당한 돈의 상당한 분량을 너에게 주겠다고.


그런데 그 우편 또는 택배를 받는데 상당한 돈을 내야 한다. 많은 돈이 있는 택배를 받는데 상당한 돈을 내야 하면 국제 우편 또는 택배라도 수상한 거다.  그리고 그 판도라의 상자를 열면 거기서 뭐가 나올지 모른다.


내 경험담이다. 택배를 받은 것은 아니다. 애초에 돈 욕심도 없었고, 택배 받을 돈도 없었다. 부모님 일찍 돌아가시고, 아내 일찍 죽고, 미국에 딸 있다는 미국인 장교 남자가, 내가 있는 한국에 와서 비즈니스를 하겠다는데, 우정이라고 해서 그냥 들어주었다. 로맨스 스캠이라는 유명한 사기 트릭인지 몰랐으니까. 그가 한국에 오기를 바랐던 것도 아니고, 투자해도 받을 생각도 없었다. 나게에 그 투자금을 운용할 능력이 없으니까. 다만 내가 좋다고 딸 데리고 한국 와서 비즈니스 하겠다는 아저씨를 오지 말라고 할 수는 없었다. 안지 얼마나 되었다고? 우정을 느껴서는 아니고. 나 좋다는 미국인 아저씨가 딸 데니고 내가 사는 한국 수원에 와서 살며 비즈니스를 하겠다는데 내가 좋다 싫다 할 것은 아니었다. 지 인생은 지 인생이니까 내가 뭐라 할 수가 없었다. 돈 많이 줄 테니까, 내 돈 받을 돈 조금만 내라 하기 전까지는. 조금도 낼 돈도 없었지만, 큰돈 줄 테니 작은 돈 내라 하고 나올 때부터, 사짜구나 하고 감 잡았다.


지금은 돈 이야기 안 나와도, 모르는 사람이 이유 없이 과도하게 친절하게 나오면, 사짜라는 것을 안다.


요즘은 더 래디컬 한 사실을 깨닫는다. 모르는 사람이 인스타로 선팔을 날렸는데, 비공개여서 피드를 읽을 수 없으면, 사짜다. 할 말이 있었으면, 나에게 비즈니스나 정상적인 제안이 있었으면, 바로 직접 DM을 했겠지.


내 피드에 내 인스타 좋다고 물어볼 게 있다고 DM 달라는 댓글은 무조건 사짜다. 나에게 제안이 있으면 어떠한 사정으로 연락을 해야지 내가 자기에게 DM 달라고 하는 게 말이 안 된다.


또 나에게 협업하자고 DM을 했으면, 나에게 돈 얼마를 줄 테니 뭘 해달라 나와야지, 자기가 돈 많이 낼 테니, 내가 돈 조금 내라 이렇게 나오면, 사짜다.


보통의 일반적인 출판 같은 경우에는 출판사가 작가에게 돈을 주는 것이다. 출판사가 원해서가 아닌 작가가 원해서 책을 낼 때는 작가가 돈을 낼 수 있다. 그게 자비출판이다. 그런데, 요상한 게 있다. 출판사에서 자기네가 책 만들어 베스트셀러 작가 만들어 주겠다고 연락이 와서, 대신 200권만 작가가 사라 이렇게 나오면, 사짜다.


누가 밥 먹자고 하면, 먼저 먹자고 한 사람이 돈 내는 거다. 예의상 밥 얻어먹었으면 커피 사는 거지, 밥 먹자고 연락 와서 니가 커피 사라 하면, 사짜다. 그런 경우 대개 밥값 보다 커피 값이 비싸다. 그리고, 비즈니스에서는 밥 먹자고 한 사람이 밥도 사고 커피도 사는 거다.


처음부터 사짜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만에 하나 아닐 수도 했는데, 기라도 끊으면 되지 했는데, 끊는데 귀찮아졌다. "Don't DM me." 했는데, 못 알아들은 것인지 못 알아들은 것인지, 다정하게 찐득이 같이 나와서, 'I have many experiences who like you. I know well someone who like you. Don't DM me.' 할까 잠깐 고민하다가, 그냥 말없이 차단 신고 박아 버렸다. 원래 똥이랑 싸우는 게 아니다. 피해 가거나 동사무소에 치워 달라고 전화하는 거다.


거절하고 싶은 댓글에는 거절의 대댓글을 다는 게 아니다. 그냥 씹는 거다. 아는 사이라면 다른데, 정상적인 제안이라면 다른데, 사짜일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아무 이유를 추측할 수 없는 정체 모를 이가 먼저 댓글이나 DM 없이 선팔을 걸면 맞팔을 하는 게 아니다. 맞팔을 하는 순간 진드기 같은 DM이 날아온다. 아니까 속지는 않는데, 그쪽에서 주겠다는 것에 욕심이 없으니까 속지는 않는데, 큰 거 줄게 작은 거 다오 하는데 작은 걸 줄게 없으니까 속지는 않는데, 귀찮아진다. 존나 귀찮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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