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44살이다. 낮에는 회사에 다니고, 밤에는 아내랑 21개월 아들과 놀고, 틈틈이 글을 쓴다. 나의 꿈은 직업으로서 작가가 되는 것이다. 우리 동네에 신세계 스타필드를 짓고 있다. 올해 말 오픈 예정이다. 우리 동네 스타필드에는 별마당도서관이 들어온다. 우리 동네 스타필드 별마당도서관에서 책 읽고 글 쓰고, 스타필드에 문화센터 같은 게 있으면 거기서 강연하고, 그런 삶이 밥벌이 직업이 되는 것이 내 인생의 소박하면서도 사치스러운 꿈이다. 그런 삶을 위해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라고는 출퇴근 길 전철에서 브런치와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는 것뿐이다. 그나마도 사는 게 고달플 때면 출퇴근 길 유일하게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에 넷플릭스와 유튜브를 본다.
책 읽고 글 쓰는 게 꿈이다. 그런 나이지만 내가 학생이었을 때 난 그렇게 책을 읽지 않았었던 것 같다. 특히 그 나이에 읽을 고전을 나는 읽지 않았다. 동화책과 성경책만 읽었지 싶다. 우리 때 수능 언어영역은 120점 만점이었는데 나는 100점 초반 때였다. 절대적으로 괜찮은 점수이지만, 우리말인 언어영역은 특히 인문계에서는 공부한다는 애들은 점수가 높았기 때문에, 나의 수능 점수 수준에서 언어영역은 80점 만점에서 40점 정도였던 수리영역보다 상대적인 줄세우기에서는 뒤처졌다. 수능 언어영역 공부를 하면서 고전문학 작품을 접했지만, 난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지도 않았고, 공부하는 문학이 그렇게 스스로 읽고 싶은 읽을거리로 다가오지도 않았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야간자율학습 시간에도 성경을 꺼 내놓고 몇 장 읽고 공부를 했다. 어린왕자나 데미안도 교과서에서 나오는 작품이기 때문에, 항상 제대로 읽어보고 싶은 관심은 있었지만 그냥 나에게는 인연이 없었다. 나의 열여섯을 지켜준 책은 성경과 더불어 오헨리의 <마지막 잎새> 같은 책이었다. 물론, 이현세 작가의 <공포의 외인구단> 같은 것도 나에게는 경전이었다. 지금은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않는 이혼한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의 딸의 이야기의 관한 청소년 소설도 기억이 난다. <물과 불의 게임>이라고 도서관에서 어떻게 손에 넣어 탐독한 책이 있는데 1판 나오고 절판이 되었다. 오래된 기억으로는 천안문사태를 겪으며 유럽으로 도망한 중국인 남자가 3명의 전혀 다른 성향의 여자를 만나는 이야기이다. 3명의 전혀 다른 여자들에 대해서 동양의 물 불 등의 사상으로 해석한 작품이다.
해냄출판사에서 출간된 <나의 열여섯 살을 지켜준 책들>을 쓴 곽한영 작가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사회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에서 석박사를 했다. 8년간 고등학교 교사를 하다가 지금은 부산대 사범대학 교수가 되어 교사를 가르치는 교사를 하면서 책을 쓰는 작가의 삶을 살고 있다.
나는 강원대학교 사범대학 영어교육과를 졸업했다. 짝사랑과 군대의 실패로 스물한 살 조울증에 걸리지 않았었더라면, 나는 강원대학교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학교에서 영어교사를 하다가, 같은 대학 같은 과에서 방학 때 계절제로 석박사를 하고, 어느 이름 없는 지방대학에서 교수를 하면서 글을 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적인 자질은 가지고 가지고 태어났지만, 그것을 충분히 키우지 못한 나는, 곽한영 작가와는 달리 ‘찢어진 백과사전’이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내 인생을 후회하지 않는 것은, ‘찢어진 백과사전’ 한 권이 대량생산 대량판매 된 질 좋은 브랜드 백과사전 보다 비싸게 팔릴 수 있으니까.
곽한영 작가의 <나의 열여섯 살을 지켜준 책들>은 중2가 읽으면 딱 좋을 책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책의 뒤표지를 보니 ‘중학생 필독서 연계’라고 쓰여 있다. 부제 같은 카피는 ‘모험하고 갈등하고 사랑하기 바쁜 청소년들에게’이다.
곽한영 작가는 16권의 책을 소개한다. 16권의 책 중 <데미안>, <어린왕자>, <로빈슨 크루소>, <프랑켄슈타인>, <플란더스의 개>, <키다리 아저씨>, <서유기>, <오즈의 마법사> 8 권은 내가 제대로 읽지는 않았지만 훑어 읽거나 그 내용은 들어 알고 있는 낯익은 책이고, 나머지 8권은 처음 듣는 낯 선 책이다.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곽한영 작가가 서울대 92학번이라고 하니 나보다 7살 정도 위일 텐데, 같은 시대를 살아오지는 않았기 때문에 나와는 한결 다른 사회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것은 우리 세대나 지금 세대와 동일하다. 비판적으로 사고를 한다는 것은 무조건 깐다는 것도 아니고, 어떠한 특정 기준을 가지고 깐다는 것도 아니고, 내 생각을 가지고 읽는다는 것이다. 그게 책이든 영화든 세상이든 뭐든 말이다.
<데미안>은 몇 번 읽으려다 실패했던 책이다. 지금도 언젠가 읽고 싶은 책이다. 내 안에 내 생각이 너무 많아 여유가 없을 뿐이다. <데미안>은 내 삶에서 고민해 왔던 부분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 싱클레어와 데미안이 내 안에 공존한다. 싱클레어로 태어난 나는 데미안 적인 시기를 지나왔다. 지금은 다시 외면은 싱클레어지만 내면은 데미안적인 요소가 있다.
<어린왕자>는 너무나 잘 아는 이야기다. 너무 나 잘 아는 이야기라서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 대단한 작품을 썼지만, 작가는 <어린왕자>를 남기고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난 작가를 꿈 꾸지만, 내가 죽은 후에 빛을 발하는 대단한 작품을 남기는 게 꿈은 아니다. 글 써서 잘 먹고 잘 사는 작가가 되고 싶다. 곧 오픈할 우리 동네 스타필드 별마당도서관에서, 책 읽고 글 쓰고, 스타필드에 문화센터가 들어오면 거기서 강의하고, 그렇게 잘 먹고 잘 사는 작가가 되고 싶다. 그렇다고 해서 내 안에 없는 것을 쓸 수는 없는 것이다. 내 안에 있는 것이 내가 아닌 독자에게 재미가 없을지라도, 내 안에 있는 이야기를 풀어서 독자들이 재미있게 만드는 것 밖에 작가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내 안에 없는 것을 쓸 수 없으니 말이다.
<키다리 아저씨>는 내가 주인공 주디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니었고, 나는 주디의 키다리 아저씨처럼 키 작은 소녀의 키다리 아저씨이고 싶었다. 고등학교 때 같은 학교 같은 동아리 친구였다. 키 작은 소녀에게 내가 키 크고 능력 있는 키다리 아저씨가 아니었을 뿐이었다. 나는 사랑으로 소녀를 구원하고 싶었지만, 소녀에게 나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을 뿐이었다.
곽한영 작가의 열여섯을 지켜 준 16권의 책이 있었다면, 나는 두 개의 시리즈가 있었다. 하나는 성경이었고, 하나는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이었다. 예수님처럼 신의 아들 자리에서 내려와서 십자가에 자기를 매달림으로써 인류를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한 소녀를 사랑하고 싶었다. 엄지를 사랑해서 자신의 인생이 파멸까지 이른 까치처럼 한 소녀를 사랑하고 싶었다. 그 사랑이 지나간 후에도 수많은 여자를 사랑했지만 나를 사랑하지 않는 여자들을 사랑했다. 사랑에 더 이상 인생을 걸지 않았을 때, 아내를 만났고 사랑으로 아들을 만났다.
고전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데, 나는 고전을 읽을 나이를 지나쳤다. 나는 고전 대신 후대의 작가들이 고전을 먹고 쓴 작품들이 지금은 재미있다. 김영하 작가의 작품이 한때 나에게 그랬다. 지금은 소설보다는 에세이에 관심이 있다. 이기주 작가의 작품이 그렇다.
사실 나는 고전을 읽을 시기는 중고등학생 시절이 아니라 대학시절이었다. 영어교육과이다 보니 영미문학을 공부한다. 그 시절에 공부를 제대로 했더라면, <테스>와 셰익스피어 등은 제대로 읽었을 것이다. 대학 때 공부를 안 해서 그 시기도 지나가 버렸다. 다만, 고전 중 지금도 나의 흥미를 끄는 책들은 언젠가 읽을 것이다.
나는 곽한영 작가가 소개한 16권의 책 가운데 일단 <데미안> 한 권을 제대로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