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왔다고 꼭 수영을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바다를 사랑하는 훈이의 비밀.

by 다한

우리 엄마, 아빠랑 많은 곳을 놀러 다녔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바다가 제일 좋아.

내가 사는 서울에서 제일 가까운 바다는 인천에 있어.

거기도 자주 가지만, 가끔 동해바다도 가곤 하지.

서해바다는 잔잔한 파도랑 모래 속에 숨어있는 조개 향이 참 좋아.

동해바다는 해변에 쌓인 모래가 더 푹신푹신해서 발바닥에 닿는 촉감이 참 좋아.


그중에서도 내가 제일 좋은 건, 짭조름한 바다내음이지.

크..., 해변에 코를 박고 킁킁거릴 때면 그야말로 '아. 여기가 천국인가?' 하는 착각마저 들 정도라니까?!

해변에서 푹신한 모래 위를 바닷바람을 가르며 마구 질주하는 맛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

속초 바다에서, 달리기 전에 준비 운동으로 쉬하는 중.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바다에 갔던 날은 찬 바람이 부는 겨울날이었어.

그래서 얇은 옷을 걸쳐 입고 갔지.

매일 답답한 도시에서 작은 운동장, 카페, 한강 공원 같은 도심 속 산책을 즐기다가 처음으로 대자연을 만난 거야.

내가 딱 해변에 발을 한 발 내딛는 순간.

"윽..., 느낌이 이상해. 잔디도 아니고, 아스팔트도 아니고, 운동장의 모래라기엔 까끌거리는 이 촉감은 뭐지?"
하고, 머뭇거렸어.

초겨울의 첫 바다, 엄마 옆에 찰싹! 얼음이 된 훈이.
낯선 해변의 풍경...., 겁이 많은 나는 또 한 번의 용기가 필요했어.


그런데, 그때였어.

엄마랑 아빠가 내 앞으로 가더니, 이상한 소리를 내며 출렁거리는 바다를 향해 달리는 거야.

어영부영 두 사람을 쫓아 달리다 보니 나는 어느새 파도 앞까지 와있었어.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정신없이 뛰어다닌 하루였던 것 같아.




봄, 여름, 가을, 겨울, 365일, 언제 가도 바다를 좋아하는 강아지이지만.

사실 내게는 엄청난 비밀이 있어.

모래사장에서 뛰어다니는 걸 좋아하는 탓에, 엄마가 나를 바다에 자주 데려갔지만....

나는 단 한 번도 바닷물 속으로 들어가 본 적이 없어.


다리 운동에 수영이 좋다고 해서, 수영장도 몇 번 가봤는데....

옆에 있는 다른 애들이 첨벙첨벙 물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모습을 봤는데도 물이 너무 무서워.

그렇다고 수영을 못 하는 건 아니야.

엄마랑 아빠가 물속에서 "이리 와~ 훈아." 부르면 어푸어푸 헤엄치기는 하지만.

아직까진 물을 좋아하는 댕댕이들이 이해가 안 가.

2019.06.22. 견생 첫 수영
훈이 살려라~, 어푸푸풒

수영도 안 좋아하는 애가 무슨 바다를 그렇게 좋아하냐고?

우리 아빠가 그랬는데....

아빠는 산을 좋아하는 거지, 등산을 좋아하는 건 아니래.

날 안고 남산에 올라가며 했던 말이야.

나도 그런 거 많아.

병원에 있는 간호사 누나를 좋아하는 거지, 병원을 좋아하는 건 아니거든.

뭐..., 이 정도면 적절한 비유겠지?




한 번은 고성군의 바닷가로 갔는데.

해변에 있는 카페에 앉아서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어.

심지어 호우주의보가 지나간 뒤라 날씨도 추웠지.

그러다가 문득 나 자신도 이런 나의 바다 사랑에 의아함이 들기 시작했어.


도대체 무서워서 물에 들어가지도 못 하면서, 나는 왜 이렇게 바다가 좋은 거지?

속초 바다에서

도무지 나도 나를 이해할 수가 없더라고.

내가 바다를 좋아하는 이유가 마음껏 달릴 수 있는 모래사장 때문인지.

시원한 바람과 파도 소리, 그리고 온몸을 자극하는 바다 향기 때문인지....

그런 공상에 빠져서 넘실거리는 파도를 바라보다 엄마, 아빠에게 눈을 돌렸어.

그런데....

두 사람이 말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거야.

내가 해변의 모래에 정신 팔려 킁킁거리고, 저 멀리 바다만 쳐다보고 있었는데도, 두 사람은 그런 나를 바라보고 웃고 있었어.


어쩌면 내가 바다를 좋아하는 이유는, 바다가 좋아서가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이 시간이 행복하기 때문일지도 몰라.


어딜 가느냐 보단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중요하다고들 하잖아.

어쩌면 나도 바다라는 여행지보다, 사랑하는 엄마, 아빠와의 시간이 소중한 거겠지?

아직 나의 견생은 채 2년이 안 되었지만, 내가 생각하는 여행의 의미란 그런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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