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thfinder Nov 19. 2019

영화 <알라딘> : 진실과 거짓에 대한 이야기

* 필자는 영화를 전문적으로 공부한 적 없으며, 이 글은 인상깊게 본 영화에 대한 주관적인 후기, 장면 해석을 담은 글임을 먼저 밝힙니다. 스포 있습니다!


알라딘 (5.23 개봉 / 6.07 관람)

평점 : 8.5/10




평소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다. 애초에 사람이 등장하는 '실사판'을 더 좋아하기도 했고, 디즈니는 뭔가 비현실적이라고 느꼈다. 

그런데도 알라딘은 정말 좋았다. 영상미부터 음악까지, 황홀하고 예뻐서 나까지 행복해지는 영화였다.



디즈니와 마블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전체적인 스토리가 간단하다. 역경을 이겨내고 결국 행복하게 사는 이야기랄까... 욕심과 야망에 부풀은 악당이 한 명 출현함은 물론이다. 알라딘도 스토리 면에서는 크게 특별하지 않다. 놀랍게도 <알라딘> 원작을 보지 못한 지라 말을 아끼려하지만 말이다.



알라딘, 진실과 거짓에 대한 이야기


<알라딘> 엔딩크레딧이 올라간 후, 결국 '진실과 거짓에 대한 이야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일관적으로 '진실' '진정성'을 강조하고 있는 모습이다. 거짓으로 만들어진 이미지나 삶보다, 있는 그대로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중시한다. 비록 그로 인해 소중한 것을 잃어버릴 지라도.



지니는 알라딘에게 말한다.


거짓으로 얻는 게 많아질 수록, 네가 진짜로 가진 것은 적어져.




원래 왕자였던 것처럼 행동하려는 알라딘에게 "너도 결국 다른 사람들과 같아졌구나."라고  말하기도 한다.




지니는 '모든 지 할 수 있는 이'로 설정되었다. 그런데 본인 스스로가 이룬 것이 아닌, 지니가 이뤄준 소원은 어딘가 텅 비어있는 느낌이었다. 가령 자파는 소원대로 술탄이 되었고, "Rule is rule" 을 고수한 하킴의 일시적인 복종을 이끌어낸다. 그러나 하킴은 자스민 공주의 호소에 다시 돌아와 자스민 공주와 술탄의 편이 된다. 왕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분명한 건  신하들의 복종. 백성들의 인정 없이 단순히 '술탄의 옷을 입고 왕좌에 앉는 것'은 아닐 것이다. 즉 일시적으로 술탄이 된 자파의 성취는 텅 비어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램프.지니의 힘으로 '알리 왕자'가 된 알라딘은, 자파의 마법 한 번에 다시 알라딘으로 돌아온다. 얼마나 허무한가. 결국 이 영화는 이러한 장면들을 통해 '진실이 아닌 것', 즉 '거짓'들의 속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결말 즈음, 지니는 알라딘에게 "공주는 왕자와만 결혼할 수 있다"는 법을 없애줄 수 있으니, 어서 세번째 소원을 빌라고. 그러나 알라딘은 쓴웃음을 지으며 "지니 너를 자유롭게 하고 싶다"는 소원을 빈다. 덕분에 지니는 오랜 소원대로, 사람이 된다. 든 것을 할 수 있는 존재이되,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모순을 지니만큼 잘 아는 이가 있을까. 그래서 그는 사람이 되고 싶어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자'가 아니라, 그저 평범하게 사람의 삶을 살고 싶어했다.




알라딘은 세번째 소원으로 본인의 욕심을 채우는 것을 포기하고 지니를 자유롭게 만들어주었다. 참 대단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초반부에 지니가 말했던 것처럼, 지금까지 소원 중 하나를 지니를 위해 썼던 이는 단 한명도 없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욕심에 눈이 멀어있었기에, 아마 세 개의 소원도 부족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알라딘이 지니의 '주인'이었을 때, 지니는 "나에겐 친구가 없다"고 말했다. 또한 소원으로 빌지 않으면, 친구로서는 들어줄 수 없었다. 오죽했으면 알라딘을 살리기 위해 두번째 소원을 자의적으로 사용했겠는가. 그러나 알라딘의 세번째 소원으로서, 지니는 알라딘의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알라딘은 지니의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을 지켜본 술탄은 딸에게 "참 좋은 남자다" 고 말하며, 사실상 둘의 결혼을 허락한다.




<알라딘>은 진실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모습을 직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진실만이'.





뮤지컬 영화이기에 가능한 것들


뮤지컬 영화는 특유의 '긍정적인 성격'을 가진다. 고난을 겪고 낙담한 주인공이 노래를 부르며 다시 일어서는 장면은 필수 중의 필수다. <알라딘> 역시 마찬가지다. 알라딘은 '좀도둑' '쥐새끼' 라고 숱한 비난을 듣는다.  심지어 안데르스 왕자의 호위무사 중 한 명은 그에게 "미천한 것. 죽을 때도 그럴 거다. 네 머리의 벼룩이나 슬퍼해주겠지."라는 말도 안되는 망언을 쏟아붓는다. 알라딘은 "사람들은 나의 내면을 모르며, 보려 하지도 않는다."며 한탄하지만, 이내 다시 일어선다.



자스민 공주 역시 그리 녹록한 상황은 아니다. "외국인 왕자는 자신만큼 백성을 사랑할 수 없을 것"이라며, 스스로 술탄이 되고자 하지만 술탄은 단호하게 말한다. 


천년의 왕국에서, 여자 술탄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뿐인가. 자파는 공주에게 "화초처럼 침묵하고 있으면 인생이 더 편해질텐데요." 라고 지속적으로 이야기한다. 구혼하기 위해 찾아온 안데르스 왕자 또한, 비슷한 지위를 가진 자스민에게 "눈이 정말 즐겁다"고 말한다. 칭찬으로 들릴 수 있겠으나, 결코 칭찬이 아니다. 자스민을 인격체가 아닌 '상품' 취급한 것이다.





'알리왕자'로 자스민을 찾아와 "공주님을 살 수 있다"고 발언한 알라딘에게 자스민이 돌아선 것 또한 같은 이유에서다. 물론 알라딘은 곧바로 자신의 망언에 대해서 사과하지만. 




자스민 공주 역시 이렇게 마음이 답답할 때마다, 노래를 부른다. "침묵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뮤지컬 영화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명료함이다. 이러한 요소들이 뮤지컬 영화가 아닌 다른 장르에서 등장했다면, 그들은 <알라딘>에서보다 훨씬 더 오래 슬퍼했을 것이다. 생각해보라.  부모를 어렸을 때부터 잃어버리고, 의지할 곳은 원숭이 아부밖에 없었던 알라딘의 상황이 얼마나 안타까운가. 결코 가볍게 치부할 수 없는 부분이다.




디즈니의 새로운 여성상, 자스민 공주


이 영화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자스민 공주가 굉장히 '진취적'이라는 것이었다.  자스민은 술탄이 되기 위해 오랜 기간 준비해왔고, 진정으로 백성들을 사랑한다. 자스민의 명대사가 있다.





나는 쓸모없는 왕자와 결혼하는 것, 그 이상의 것을 할 운명이다





내가 그동안 디즈니를 아주 좋아하지 않았던 것은, 여성이 왕자. 혹은 왕자같은 남성을 만나 결혼하고 행복하게 사는 '신데렐라 스토리' 때문이었다. 그러나 <알라딘>의 자스민 공주는 결혼이 최종 목적이 아니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이끌어 나가고자 하는 진취적인 성향이 뚜렷한 캐릭터이다. 그래서 매력적이었다.





영화 <알라딘>, 전체적으로 단순하고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알라딘>이 전하는 메세지의 현실성을 차치하고, 참으로 아름다운 이야기다.




자스민과 알라딘이 마법 양탄자를 타고 시내를 날아다니며 <A WHOLE NEW WORLD>를 부르는 장면은 , 그야말로 경이로웠다. 



디즈니가 삶에 지친 우리들에게 <알라딘>이라는 선물을 준 느낌이다. 고맙다, 디즈니.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그린북: 경계를 넘어 나를 찾아가는 여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