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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hfinder Dec 03. 2019

당신의 감정에 확신을 가지세요, 답은 당신에게 있으니

결정장애를 위한 글

"이 일, 저만 화나나요?"

"앞으로 무슨 일 하고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어느 쪽으로 가야 할까요."


결정장애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혼자서 결정을 내리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기에 이들은 사람들의 동의나 조언을 구하려고 애쓴다. 사실 멀리갈 것 없이 내가 그렇다. 약점이 무엇이냐는 자소서의 문항에 항상 '결단력 부족'을 쓸 정도로, 나 역시 수많은 선택지 가운데 발을 동동구르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러나 이런 내게, 큰 변화를 가져다 준 한 가지 사건이 있었다.




작년 여름이었다. 중국으로 떠나기 직전의 나의 머리는, 꽤나 밝은 갈색이었다. 그리고 내 머리를 본 지인 분은 내게 "넌 머리를 그렇게 밝게 하고 싶었니?" 라고 물었다. 아니, 내가 느끼기에 그것은 '물음'을 빙자한 비난이었다. 그 분은 나와 결코 친밀한 관계가 아니었으며, 오히려 내가 '잘 보여야 하는' 사람에 가까웠다. 결코 수평적이지 않은 관계인 그 분의 한 마디는, 나를 위축되게 만들었으며 무엇보다 나 스스로를 검열하게 했다.



보다 객관적인 제 3자의 입장을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학교 커뮤니티에 익명으로 글을 올렸었다. 이런 일이 있었는데, 나는 기분이 상했다. 앞으로 이런 일이 또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고 말이다. 커뮤니티에서조차도 반말 쓰는 것을 싫어하는 지라, 존댓말로 아주 정중하게 글을 작성했었다.



꽤나 많은 덧글이 달렸다. 그 중의 반은 충격적인 덧글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예민해서 세상을 어떻게 살려고 하냐." 부터 시작해서, "그 지인 분 정도면 굉장히 정중하게 머리에 대해서 얘기한 건데, 뭘 그렇게 기분나빠 하냐." 등 아주 가지각색으로 날 비난했다.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던 건, 그 지인 분을 '정중하다'고 두둔하던 덧글이었다. 내가 무지개색으로 염색한 것도 아니고-물론 그런 머리도 비난받지 않아야 마땅하다-조금 밝은 갈색 머리였는데, 그걸 꼭 지적하고 넘어가야 하는 것일까? 그렇게 꼭 지적해야 할 포인트여서, 그 분 정도면 굉장히 돌려서 정중하게 말한 경우가 되는 건가?



그런 덧글들을 계속 보다 보니 내가 잘못한 것 같았다.  결국 나는 그 게시물을 지웠지만, 그 덧글들은 내 마음에 상처를 주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거지만, 그건 가스라이팅이었다.





좋은 조언을 해주기 위해서는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애정과 전문성. 이 둘 중 하나만 결여되어도, 그 조언은 '자기PR' 혹은 '참견'이 될 확률이 높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조언을 구하는 이들 중 몇 명이나 애정과 전문성을 갖추고 있을까?  장담컨대, 50명 중 1명 정도 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굉장히 드물다는 것이다.



내 경우, 기자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하면 정말 많은 이들이 걱정이랍시고 잔소리를 시작한다. 언론사 시험 붙는 게 쉬운 일이냐, 몸도 약한 애가 기자 생활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느냐. 심지어 "네가 상상하는 것처럼 기자 생활은 핑크빛이 아니다." 라는 말도 들어봤다.



사실 그들이 나름대로 아는 척을 하며, 내게 '조언'하고 있지만 나는 그들이 언론사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물론 내가 실무경험을 해보지 않았으니, 부족한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기자의 삶과 언론사에 대해, 책이라도 찾아서 한 자 읽어본 사람은 그들이 아니라, 바로 나다. 현직 기자의 강연을 들어본 이도 바로 나다.



그래 맞다. 그들에게는 전문성이 없다. 이미 4-50대에 접어든 그들에게는, 앞으로의 트렌드를 읽고 현명한 조언을 해줄 만한 능력이 없다. 그래서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내세우며 "공무원 준비하라"를 주문처럼 외우고 다니는 것이다. 마치, 공무원이 모든 방정식의 열쇠라도 되는 것처럼. 



심지어 그들은 당신이 누군지 잘 모른다. 당신이 무엇을 할 때 행복하고, 가슴이 뛰며, 어떤 일에 평생을 바치고 싶은지. 어떤 일을 싫어하는지. 어떤 종류의 삶을 꿈꾸고 있는지, 그들은 전혀 알지 못한다.





이제는 학교 커뮤니티에 의견을 구했던, 작년의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안다. 그들은 내 감정을 헤아려줄 만큼, 내게 애정이 없으며- 사실 서로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다- 인간관계에 대한 전문성이나 깊이는 더더욱 없다. 사실 익명을 전제로 한 커뮤니티에서는 도움을 주기는 커녕, 그들의 부정적인 감정을 배설할 확률이 더 높다.



"너 같은 사람 만나면 진짜 피곤하겠다." 고 덧글을 적었던 그들은, 사실 열등감 등의 부정적인 감정으로 가득찬 이들이 아니었을까.



무엇보다 자신의 감정에 확신을 갖고자 다른 이들에게-특히 커뮤니티- 묻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당신들의 감정은 소중하며, 다른 사람들이 그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당신이 느꼈던 감정은 있는 그대로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다른 사람이 그 말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느낄지언정, 당신이 상처받고 아파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보통'의 삶을 꿈꿀지언정, 내 감정까지 '보통'에 끼워맞추려고 해서는 안된다.




출처 네이버 웹툰 <유미의 세포들>


나는 여전히 A와 B 사이에서 고민할 때 타인의 의견을 구하곤 한다.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있는 투표 기능을 이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변화를 마주한 후 나는 타인의 의견을 참고할 뿐, 맹목적으로 신봉하지 않기 시작했다. 타인의 의견은 내게 생각할 여지를 주고 또 내 선택에 용기를 불어넣어줄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기억하자. 당신 문제의 답은 당신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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