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블랙미러 <핫샷> 줄거리, 리뷰
넷플릭스 영국드라마 <블랙미러>를 사랑한다. 볼 때마다 그 소재의 기발함, 반전을 거듭하는 내용, 엄청난 상상력과 연출에 감탄한다. 잔인한 건 싫어하지만 생각해볼 수 있는 질문을 던지는 영화를 좋아하는 내게 블랙미러는 딱 맞는 드라마다.
<핫샷>은 <공주와 돼지> 다음으로 이어지는 시즌1의 2편이다. 지금까지 본 모든 편이 인상깊었으나, 핫샷이 가장 많은 걸 시사한다고 생각해 리뷰를 적어본다. 스포로 가득하니 드라마를 본 후 읽길 권한다.
<핫샷> 개성과 자아실현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부품’의 세계. 부품에게 주어지는 작은 보상. 낯설지만 사실 익숙한 단상. ⭐ 5/5점
그 세상에서 모든 일은 자전거로 통한다. 진회색의 트레이닝복을 입은 이들이 성별, 연령 관계없이 자전거 위에 앉아 페달을 밟는다. 그렇게 해서 전력이 만들어지고 그들은 보상으로 코인을 받는다.
아침을 깨우는 닭마저 가상이미지에 불과하다. 고단한 일과를 마친 사람들은 4면 가득 스크린이 꽉 채운 방으로 돌아간다. 그 곳의 실물이라곤 침대 하나밖에 없다.
주인공 남자에겐 꿈이 있다. ‘가짜’로 뒤덮인 세상에서 ‘진짜’를 찾아내는 것. 그래서인지 같은 일을 하면서도 다른 이들과 조금은 달라 보인다. 그러던 그가 아비를 만났다.
그는 아비의 노랫소리에 매료되었다. 그의 노래는 스크린에서 나오는 가짜가 아니었다. 실제로 귓가로 들리는 진짜 노랫소리였다. 진짜를 추구해왔던 그에게 아비는 반가운 존재였을 것이다. 형이 자신에게 남기고 간, 무려 6개월치 코인 1천 2백만점을 아비에게 주며 오디션인 ‘핫샷(Hotshot)’에 나가라고 종용한다.
너무 큰 금액이라 받을 수 없다는 아비와 남자의 대화는 이 영화의 주제를 시사한다.
"자신을 위해 쓰는 게 어때요?”
“뭐에 써요? 도플이 신을 새 구두라도 살까요?”
“글쎄요, MOS를 업그레이드하든가요.”
“그건 모두 물건들(stuff)일 뿐이에요. 당신이 가진 건 진짜에요. 거기에 쓰는 게 가장 가치 있죠.”
이렇게 아비는 핫샷 오디션에 참가하게 된다. 눈에 띄는 외모 덕분인지 대기실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무대로 들어가 노래할 수 있었다.
심사위원들은 그의 노래를 좋게 평가하지만 가수가 되기엔 너무 평범하다고 잘라 말한다. 그리고 그에게 ‘에로배우’가 될 것을 권한다. 아비가 원한 건 그런 게 아니다. 당연히 어쩔 줄 몰라한다.
“당신이 지금 받고 있는 스포트라이트가 어디서 온지 알아요? 사람들이 하루종일 페달 밟아서 만든 거에요. 지금 당신이 서있는 그 무대, 거기에 서기 위해서라면 사람들은 무슨 짓이라도 할거라고요. 제 말이 틀리나요?”
관중들은 환호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실제 모습을 가진 관중은 아니다. 모두 '도플'이다. 이 세상에선 사람들은 1500만 점의 입장권을 구매하지 않고는 오디션을 직접 관람할 수 없다. 대신 방 안에서 거대한 스크린을 통해 무대를 구경한다. 그리고 스크린 너머의 참가자의 모습을 보며 환호하고, 때론 야유한다.
아비의 모습을 보며 웃는 도플의 모습이 어찌나 기괴하던지.
아비는 다시 ‘자전거 타는 인생’으로 회귀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에로배우가 되었다. 이제 그는 남자들이 돈을 지불하고 보는 하나의 상품으로 전락했다.
주인공 남자는 그 현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가 원했던 건 아비가 자신을 대신해 꿈을 펼치는 가수가 되는 것이었는데, 비참한 인생으로 밀어넣은 꼴이 됐다.
에로배우들이 계속 나오는 광고를 끄고 싶어도 코인이 다 떨어져 끌수도 없다. 아비와 상대 남자배우의 신음소리를 들으며 그는 스크린을 깬다.
그 곳은 자해를 하고 싶어도 도구가 없는 공간이다. 실제 물체라곤 침대밖에 없는 곳에서 남자는 스크린을 깨 손에 박힌 핫샷의 표식을 지워낸다.
그리고 미친 듯이 일을 한다. 1500만 점을 벌기 위해 쉬지 않고 페달을 밟았고 밤이 되면 춤연습을 했다. 그렇게 두 달이 흘렀고 마침내 남자는 핫샷에 참가할 자격을 얻게 된다.
춤을 추던 중 준비해온 유리조각을 꺼내 목에 들이댄다. 발언권을 주지 않으면 자살하겠다 협박해 기회를 얻게 된다.
그리고 그가 토해내는 울분.
“연설 해 본 적이 없고 계획도 없어요. 듣고 있는 척 하지 말고 진짜로 내 말을 들으란 말입니다. 당신들은 우리를 사람이 아닌 그저 사료로 보는 거죠. 사료여야 가치가 있으니까요. 우리들은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자신을 표현한다며 쓰레기나 사요.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쓰레기를 산다고요. 당신들은 진짜가 가진 경이로움을 별 볼일 없는 조각으로 자르죠. 뭔가 진짜에 가까이 갈 수도 있다는 내 마음도, 수백만 명의 추악한 농담거리가 된 내 감정도, 모두 꺼져!”
그의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져 저절로 멈추게 됐다. 내가 살면서 들어본 "Fuck you!" 중 가장 구슬펐다. 그가 얼마나 진짜를 갈구하는지 절실히 느껴졌다. 그의 말에 공감이 됐던 걸까, 아니면 화가 난 걸까. 심사위원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건 의심할 여지 없이 핫샷이 시작된 이래 가장 진심 어린 무대입니다!”
순간 실소가 나왔다. 그가 어떤 말을 했건 심사위원들은 귀담아듣지 않았다. 차라리 그의 말에 화가 나 욕을 했다면 덜 허무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남자의 울분은 그저 쇼(Show)에 불과했고, 그의 상품성을 평가하기에 바빴다. 결국 그가 토해낸 모든 말들은 하나의 퍼포먼스가 되어 그를 엔터테이너로 만들었다.
여전히 사람들은 페달을 밟는다. 돈을 내고 에로틱 영상을 보며, 코미디 영상을 보며 싸구려 웃음을 터뜨린다.
아비는 원래 모습을 알아볼 수 없게 됐다.
남자는 유리조각을 목에 대고 진지하게 말하지만, 결국 방송에 불과하다. “다음 이 시간에 봐요.”
방송을 마친 남자는 주스를 한 잔 따라 마신 후, 창가로 다가간다. 그가 살았던 작은 방과 다르게 큰 창이 보인다. 창 너머엔 푸른 하늘과 울창한 숲이 있다. 그는 성공한 걸까.
나는 그건 창이 아니라 스크린이라고 확신한다. 그가 ‘이사한’ 세계 역시 가짜로 가득하다고. 언뜻 보면 실제 자연을 비추는 창인 것 같아도 사실 그건 허상을 투영하는 스크린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핫샷>은 그렇게 끝났다. 자조적이고 우울한 결말이다.
<핫샷>을 한번 보면 그 세계의 부당함과 어이없음에 화가 난다. 하지만 내용을 이해하고 한번 더 보면 이내 우리가 살아가는 삶과 닮아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뭐가 그렇게 다를까. 기업의 부품이 되어 꿈없이 주어진 일만 반복하며 살아가는 회사원들과 젊음을 걸고 오디션에 목숨을 거는 아이돌 지망생들이 떠올랐다.
평범하게 살지 않으려면 ‘심사위원’이 요구하는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 노래하고 싶다고 아무나 가수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자전거를 타긴 싫으니, 그들은 새로운 역할놀이를 하며 살기로 정한다. 그 가치를 지불한 다른 이들에게 콘텐츠로 소비된다.
돌아볼수록 머나먼 세상의 이야기인 것 같지 않다.
우리가 사는 삶과, 꽤나 많이 닮아있다.
** 사진출처 : 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