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thfinder Dec 17. 2019

<포드v 페라리>: 스포츠가 비즈니스를 싣고 달릴 때

영화 <포드 v 페라리 >리뷰



포드 v 페라리(12.4 개봉 / 12.16 관람)

평점 : 9/10





<포드v 페라리>엔 비즈니스와 스포츠라는 두 가지 세계가 등장한다. 헨리포드 2세와 임직원들은 비즈니스의 세계에, 캐롤과 켄은 스포츠의 세계에 속해있다. 이 두세계는 서로 다르다. 비즈니스는 철저히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움직이는데 반해 스포츠는 ‘속도’ 자체를 즐긴다. 1등을 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기록을 갱신하는 건 스포츠의 세계에서 가장 신성시 되는 행위다.



‘불독’이라 불릴 만큼 다혈질에다 레이싱에 미친 켄과 포드 회사 임직원들과의 갈등은 필연적이다. 상반되는 두 세계가 마주하며 아귀가 맞지 않아 잡음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그 ‘잡음’이 있기에 존재하는 영화다. 레이싱이라는 스포츠를 다룬 영화지만 드라마적인 전개를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레이싱과 갈등, 이 영화를 정의하는 두 가지 키워드인 것 같다.



영화는 두 시간 반이라는 긴 러닝타임에도 지루하지 않았다. 자동차에 대한 지식이 충분하지 않음에도 크게 어렵게 느껴지진 않았다. 이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포인트를 몇 가지 정리해보고자 한다.



1. 포드와 페라리, 무엇이 다른가 : '컨셉', '태도'의 차이
포드가 하루 생산하는 차가 페라리가 일년 동안 생산하는 차보다 많아.




영화 초반, 헨리포드 2세가 포드보다 규모가 작은 페라리를 비웃으며 한 말이다. 이에 마케팅 팀 직원이 답한다. “사람들은 차를 많이 생산한 회사를 기억하지 않아요. 사람들은 페라리가 대표하는 승리를 소유하고 싶어하죠.”



소비자의 심리를 정확하게 관통한 대사라고 생각한다. 그 회사의 규모가 큰지, 얼마나 많이. 빨리 만드는지는 사실 소비자가 주목하는 영역이 아니다. 회사가 가진 브랜드 이미지에 관심을 갖고 그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이다.



규모 면에서 상당한 자신감을 보였던 포드 회사는 페라리에 인수합병을 제안하러 간 이후에도 오만한 태도를 보였다. 이미 표정과 말투에서부터 ‘우리가 너희를 인수하러 온거야. 영광이지? 고맙게 생각해‘ 라는 생각이 노골적으로 보였다.



무엇보다 큰 차이점은 르망 24시를 관전하러 온 포드 CEO와 페라리 CEO의 태도이다. 포드는 경기 출발의 운을 띄우고 머지 않아 헬기를 타고 미국으로 돌아간다. 반면 엔조 페라리는 비가 오는 등 궃은 날씨 속에서도 자리를 지킨다. 더 어이없었던 건 페라리의 벤다니가 경기를 포기하고 1-3위를 모두 포드의 자동차가 차지하자 다시 헬기를 타고 프랑스로 날아온 포드의 모습이다. 영화적 연출이 가미된 점도 있겠지만 이런 천하의 기회주의자도 다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1위로 앞서고 있던 켄 마일스에게 “속도를 줄이고 1-3위가 함께 결승선에 들어오자”고 제안한 것도 포드 측의 의견이었다. 우승을 ‘도둑맞은’ 켄에게 모자를 벗으며 경례를 표한 사람은 포드가 아닌 엔조 페라리였다. 켄이 포드가 아닌 페라리의 레이싱 선수로 참가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까지 들었다.


영화에서 드러난 엔조 페라리라면 1-3위가 함께 들어오는 사진을 찍기 위해 속도를 줄이라는 바보같은, 지나치게 ‘상업적인’ 요구는 하지 않았을테니.


2. 무언가에 ‘미친’ 이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포드의 비브가 “켄은 포드맨에 안 어울려”라고 말한 것도 어느 정도 납득은 간다. 영화 속 켄은 양복을 차려입고 우아하게 차에서 내려 기자회견을 하는 비즈니스맨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포드는 스포츠 에이전시가 아닌 포드라는 자동차와, 그 브랜드를 파는 기업이다. 철저히 비즈니스에 의해, 비즈니스를 위해 움직인다.



“Ken is too pure.” 켄은 정말로 순수한 사람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레이싱에 완전히 미쳐있다. 국세청에 정비소까지 압류당하고 다시 다른 일을 찾는가 싶었지만, 결국 영혼이 시키는 일인 레이싱으로 돌아간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이들은 얼마나 행운인가. 단 하루도 일을 하지 않을테니.


출처 네이버 영화 <포드 v 페라리> 스틸컷

그는 차를 사랑한다. 속도를 높여 달리는 것도 좋아하지만, 엔진이 과열되어 차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보지 않는다. 차와 레이싱을 사랑하기에 호흡을 맞춰 달린다. 차와 한 몸이 된다. 직접 차를 시험주행하며 속도를 내기 위해서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알아낸다.


그의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워보였다. 노력하는 이는 많고, 잘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노력과 재능을 넘어 그 일에 완전히 ‘몰입’한 사람은 몇 없는 것 같다. 내가 본 켄의 모습은 ‘몰입’ 그 자체였다.



2-1. 무엇이 그를 ‘미칠 수 있게’ 했는가 : 켄의 든든한 파트너들


켄 곁에는 몰리가 있었다. 영화 초반부터 심상치 않은 존재감을 드러냈던 켄의 아내 몰리는 경제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켄이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적극 응원해주는 조력자로 그려진다. 켄이 캐롤 셸비에게 포드가 출전할 레이싱에 참여하라는 제안을 받고 고민하던 중, 운전대를 잡은 몰리가 켄에게 “내게 거짓말하지 말라”며 속도를 내는 장면은 이 영화의 또다른 명장면이라 생각한다.


“내게 거짓말 하지마. 내 기분 맞추려고 당신의 마음을 숨기지마.”



몰리의 이 한마디는 내 마음 속 깊이 박혔다. 이런 게 사랑이 아닐까. 상대방이 나를 위해 거짓말하는 게 싫은 것. 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본인의 행복을 억누르지 않고, 자신의 행복을 찾아 훨훨 날았으면 하는 마음. 그 자체가 사랑이 아닐까.


몰리와 함께 사는 켄은 얼마나 든든했을까. 조력자를 넘어 ‘동반자’가 몰리에게 더 어울리는 표현인 것 같다.





출처 네이버 영화 <포드 v 페라리> 스틸컷


캐롤도 켄의 든든한 파트너였다. 주행영상을 보며 캐롤이 외친 “Wait, wait, now”는 켄의 주행과 정확히 들어맞았다. 캐롤이 생각한 대로 켄은 달린다. 이 둘의 호흡은 척척 맞아떨어졌다.


포드의 임원들이 켄은 포드의 레이서로 르망에 참가할 수 없다 말할 때도 캐롤은 자신의 모든 것인 회사를 걸고 켄을 보증했다. 캐롤은 켄이 달릴 수 있도록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지원했다. 가장 든든한 파트너이자 친구였다.


3. 레이싱 카에 인생을 싣고 달린다


포드 자동차 1-3위가 나란히 들어오게 하자.



포드 임원의 아이디어였다. 회사 입장에선 자사 차가 동시에 들어오는 사진을 찍는게 굉장히 큰 마케팅 효과로 이어진다 생각했을 거다. 일리 있는 얘기다. 하지만 레이싱을 하고 있는 이는 자신의 인생을 걸고 달리고 있는 중이다. 사고가 나면 심한 경우 죽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달린다. 자신의 기록을 깨는 것을 목표로 앞을 보고 쉬지 않고 달린다. 그게 스포츠맨십이다.


본인의 한계에 도전하는 것, 무조건 최선을 다하는 것,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것. ‘나란히 들어오라’는 아이디어는 스포츠 정신으로 봤을 때는 최악 중의 최악이다.  


24시간이라는 긴 시간동안, 궂은 날씨속에도 변함없이 달리는 모습이 인생의 굴곡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르망24의 길은 마냥 평탄하지 않다. 비포장도로도 있고, 주행 중 다른 차와 충돌해 불이 나기 일쑤다. 때론 엔진이 과열돼 망가지기도, 브레이크가 고장나기도 한다. 그러면 한 바퀴를 돌고 들어와 재빨리 부품을 수리한다. 잠시의 휴식이 채 끝나기도 전 다시 차에 몸을 싣고 주행을 시작한다.
 
이 장면 하나하나가 우리 인생 같았다. 희로애락이 공존해, 어딘가 울퉁불퉁한 우리의 삶을 보여주는 것 같아 뭉클했다. 내가 이 영화를 ‘오락영화’가 아닌 ‘드라마’로 느낀 이유기도 하다.


켄의 인생과 포드의 비즈니스를 함께 담아 레이싱은 계속된다. 24시간동안. 그 시간동안 온전히 주어진 길에 몸을 맡기고 달렸다.


4. 크리스찬 베일의 연기력은 어디까지인가


내가 알았던 ‘배트맨’은 없었다. 마른 몸에 어딘가 껄렁이는, 그렇지만 미워할 수 없는 켄만 남아있었다. 크리스찬 베일이 연기한 브루스 웨인이 ‘포드맨’에 적합한 사람이었다면 켄은 비주얼로만 본다면 전혀 매치되지 않는 이미지였다.


크리스찬 베일하면 연상되는 ‘배트맨’의 캐릭터를 싹 지워내고 켄을 재창조했다는 점에서 그의 연기력에 아낌 없이 박수를 보내고 싶다.





르망24가 끝나고 영화가 끝날 무렵 달리던 켄의 자동차에 불이 난다. 지켜보던 동료들이 급하게 뛰어간다. 이내 장면이 바뀌고 스포츠 카를 팔고 있는 캐롤이 등장한다. 캐롤의 표정은 어둡다.



“하지만….6개월이나 지났잖아.”
 “…….”
 “차에서 못 빠져나오는 사람도 있어.”


이 대사는 켄이 사망했음을 암시한다. 영화적으로 굉장히 훌륭한 장치였다고 생각한다. 관객은 켄의 생존 여부를 궁금해한다. 카메라는 다음 장면을 비추고 대사를 통해 그의 사망소식을 알린다. 차에 빠져나오지 못한 켄을 바로 비추지 않았기에 신파적 요소를 막을 수 있었다.


슬픔과 눈물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 감정을 느끼는 건 그자체로 옳다. 하지만 좋은 영화라면 관객에게 감정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슬퍼해! 이 장면은 슬픈 장면이야!” 라고 주입하는 게 아닌, 관객이 영화적 장치와 설정을 통해 상황을 파악하고 감정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다시 장면이 바뀌고 켄의 아들 피터가 등장한다. 피터는 울지 않는다. “우리 아빠 살려내.”라면서 울지 않고 오히려 담담하게 캐롤을 마주한다. 관객은 이런 절제된 감정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낀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이들도, 드라마를 좋아하는 이들도 이 영화에 굉장히 만족할 거란 생각이 든다. 영화를 보길 원한다면 ‘무조건’ 극장에 가서 관람하길 적극 추천한다. 4dx에 가장 최적화된 영화다. 주행 장면의 속도감과 스릴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택지다. 겨울왕국의 아성 때문인지 남아있는 상영관이 2d 위주라는게 안타깝다.



이 영화를 이제서야 관람한 게 아쉽다.


매거진의 이전글 온라인으로 이뤄지는 모든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