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괴의 날》정해연 - 독서노트

선과 악 사이, 뜻밖의 유대

by 다희희
e895273625_1.jpg 출처: 알라딘


누군가를 ‘유괴’하는 이야기인데, 묘하게 웃음이 나왔습니다.

웃기면서도 아프고, 가볍지만 묵직했어요.

정해연 작가의 『유괴의 날』은 스릴러 장르 소설이라기엔 따뜻하고, 휴먼 드라마라기엔 긴장감이 넘칩니다.



줄거리 요약


한때는 유망했던 소설가였지만 지금은 인생이 기울 대로 기운 '김명준'.
아내에게 이혼당하고 딸과의 관계도 소원한 그는, 돈이 필요하다는 이유 하나로 대담한 일을 벌이게 됩니다.
이웃집 아이 ‘로희’를 유괴하게 된 것이죠.

그런데 이상합니다. 로희는 납치당한 아이 같지가 않아요.
오히려 납치범보다 더 침착하고, 상황 판단도 빠릅니다.

그리고 그녀의 부모는... 이상하리만치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

40대 백수와 초등학생 여자아이라는 조금은 이상한 조합의 두 사람.
‘유괴극’을 통해 한국 사회의 이면을 돌아보게 합니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이 유괴가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는 점, 로희에게도 감춰진 사연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느낀 점


아이를 유괴한 남자와, 그 유괴를 이용하고 오히려 주도해 나가는 아이.
관계의 뒤집힘은 읽는 내내 저를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인가’에 대한 경계를 흐리며 작가는 독자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이 작품이 흥미로웠던 건, ‘유괴’라는 범죄를 소재로 다루면서도 결국엔 사람 사이의 믿음과 유대에 집중했다는 점이에요.
명준과 로희는 처음엔 서로를 경계하지만, 점차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서로를 구원하게 됩니다.


현실에서는 절대 일어나선 안 될 일이지만, 소설이기에 가능한 이야기.
그런데도 왠지 모르게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 설득력은, 우리 모두의 마음 어딘가에 있는 ‘고립된 존재로서의 외로움’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억에 남는 문장


“어쩌면, 우리 둘 다 누가 좀 납치해줬으면 했던 건 아닐까요?”


피식 웃음이 나다가도, 울컥하게 되는 문장이었습니다.

세상이 너무 버거워서, 누군가 와서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

저도 그런 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어쩌면 우리도 그 둘과 다르지 않은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리하며


『유괴의 날』은 범죄 스릴러의 외피를 입고 있지만, 결국은 사람 이야기입니다.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 어른들보다 훨씬 똑똑한 아이, 무기력한 가장… 모두가 현실에 존재하는 인물들이죠.

끝까지 읽고 나면, 유괴는 단지 시작일 뿐이고, 진짜 이야기는 그 뒤에 펼쳐집니다.
웃기고, 아프고, 따뜻했던 이 소설은 의외로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았습니다!

책을 놓지 못하고 밤 늦게까지 읽게만든 흡입력 강한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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