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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다희 Oct 21. 2023

가짜 두려움

해외 출장이 잦았던 5년 전 일이다. 신규 매장 오픈 준비를 위해 현지답사와 디자인 협의 차 1박 2일 일정으로 말레이시아로 출장을 갔다. 비행 스케줄과 공항을 오고 가는 시간까지 고려한다면 일할 수 있는 시간은 하루밖에 없었다. 아침부터 매장을 돌고, 타사 매장을 돌고, 미팅을 끝내고 나니 저녁 6시였다. 많은 일을 한 것만큼 해야 할 일은 잔뜩 짊어지고 한국으로 돌아간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는 자정에 뜨는 스케줄이었지만 말레이시아 교통 체증이 엄청나다는 현지 담당자의 얘기를 듣고 부랴부랴 택시를 잡아탔다. 


                         

내가 달리려는 도로가 고속도로인가 싶을 정도로 도로는 꽉 막혀 있었다. 교통체증은 예상대로였다. 대형 사고라도 난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차들은 도로 위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휴대폰에 구글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열어 도로 상황을 확인하니 빨간 줄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도착 예정 시간이 계속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점점 초조해져 갔다.               



공항까지 가는 데 얼마나 걸릴까? 



그러나 나의 불안이 증폭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급한 마음에 아무 택시나 골라 탔던 게 화근이었다. 연식이 20년도 더 돼 보이는 낡고 작은 택시에 나와 동료는 몸을 끼어 넣다시피 했고, 인도사람이었던 택시 기사님은 특유의 인도식 억양 발음으로 우리가 가야 하는 목적지를 재차 확인했다. 그가 우리가 가야 하는 공항의 위치를 모를 것이라는 생각은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택시 운전수였으니까.


그런데 그는 우리가 가야 하는 국제공항이 아니라 국내선 공항으로 향하고 있었다. 목적지가 잘못됐다고 택시기사에게 묻자 오히려 우리(나와 동료)더러 목적지를 잘못 얘기한 탓이라고 우겨댔다. 그러면서 국제공항으로 가 줄 테니 택시비를 더 내라고 했다. 낯선 나라 도로 한 복판에서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속임을 당하고 만 것이다. 



이 비좁은 택시 안에 얼마 동안 있어야 할까?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는 생각에 나의 불안함은 극한으로 치달았다. 가슴이 조여 오고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갑갑한 느낌이 온몸으로 퍼졌다. 신고 있던 신발을 벗어야 했고, 바지 버클이라도 풀어야 했다.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택시에서 뛰어내리고 싶었다. 비좁은 택시가 감옥처럼 느껴지다니.  꼼짝 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눈물이 곧 터져 나올 것만 같았지만, 이곳을 벗어나는 길은 공항에 도착하는 방법 밖에 없었으니 그때까지 잘 버티려고 깊은숨을 몰아쉬었다.


기분 전환이라도 할까 싶어 밖을 내다봐도 칠흑 같은 어둠만 뿐이고, 낯선 곳에서 느낀 생경한 두려움에 결국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이 날 이후, 나는 사방이 막힌 공간에 사람들이 많이 있거나, 갑자기 몰리는 상황이면  의식적으로 피하는 습관이 생겼다. 나의 뇌는 두려움을 느꼈던 그때의 불안감을 정확히 기억했다. 공기든 사람이든 순환이 되지 않고 꽉 막혀있다는 답답함을 감지하면 나의 감각은 공포심을 불러왔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공포와 불안이 나를 아프게 했다. 내 속에 내재된 불안과 스트레스 온갖 부정적인 것들이 똘똘 뭉쳐져서 나를 짓누른 것일까? 내가 만든 가짜 두려움에게 나의 일부를 빼앗긴 것 같았다.



일상생활에 없던 제약이 많이 생겼다. 복잡하고 번잡한 시간대에 지하철 타지 않기, 낡아 보이는 승강기는 피하고 계단으로 이동하기, 비행기 타지 않기, 광역버스 타지 않기, 불가피하게 고속버스를 타야 한다면 앞자리에 앉기. 등등 예전에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들이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들로 바뀌었다. 일 때문에 출장을 가야 하면 병원에서 처방받은 신경안정제를 손에 쥐고 비행기를 탔다. 믿었던 그에게 배신을 당한 기분이었다. ‘나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나는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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