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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다희 Oct 21. 2023

달콤한 머니,
그 마지막 잔치에 대하여

코로나가 한참 성황일 때, 구성원 70프로는 재택근무하라는 지침이 떨어졌다. 우리 팀은 파트별로 일주일 두 번만 사무실 출근하기 결정했다. 우리 파트는 화요일과 금요일에 출근하는 것으로 정해졌고, 계획대로 화요일 아침, 노트북 가방을 메고 지하철 환승구간을 빠르게 걷고 있었다.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직장인들, 오늘도 애쓰러 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은 하나같이 비슷해 보였다. 뒷모습으로도 그들의 지친 얼굴이 보였다. 양쪽 어깨도 처져 있었다. 


나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영혼이 반쯤 이탈한 채 허공을 응시하며 앞을 제대로 보지 않아도 몸이 기억하고 있는 대로 걷고 있었다. 오늘따라 노트북 가방은 왜 이리 무겁나. 노트북이랑 회사 노트 말고 내가 또 뭘 넣었는지를 떠올리려는 찰나 외투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린다. 광고성 알림이겠지 뭐 하며 핸드폰을 열었는데, 주거래 은행에서 온 입금 알림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25일은 그러니까 월급날이다. 게다가 이번 달에는 월급 말고도 추가로 정산되는 급여 항목이 있다. 지난해 실적에 대한 성과급과 다 소진하지 못한 연차 수당에 대한 정산이다. 그래서 우리는 1월의 월급을 마지막 잔치 상이라 부른다. 


얼마 전 회사 블라인드(익명 게시판을 운영하는 앱)에 작년 실적에 비해 성과급을 적게 받을지도 모른다는 흉흉한(?) 소문들로 도배가 됐었다. 숫자 분석에 능통한 몇몇 직원들(나에게는 더없이 똑똑해 보이는 동료들)은 분기별 영업 실적을 비교 분석해서 루머로 떠도는 성과급의 낮은 지급률에 대해 빗발치듯 비난의 글들을 올렸다. 말도 안 되는 지급률이라며 분노하는 글들과 직원을 소, 돼지로 취급한다며 더 이상 못 다니겠다는 댓글들, 심지어 복받치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해 욕설이 난무한 글까지 연이어 게시됐다. 회사 경영진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한 부당한 감정, 자신의 노동에 대한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억울한 마음을 불같이 표출하는 동료들의 글들을 읽으며 나는 마음속으로만 응원을 보냈다. 한편으로는 회사에 심드렁해진 나로서는 성과급을 어떤 이유로 덜 받게 될지라도 그러려니 하려고 했다. 회사에 신뢰가 점점 사그라지는 만큼 동시에 회사에 대한 불만, 불평을 늘어놓는 일도 점점 성가셨다. 



나와 상관없어. 어차피 곧 나갈 텐데 뭐.  




별생각 없이 열어본 핸드폰 창에는 생소한 입금 금액이 떠있었다. 뭐지? 작년에 소진하지 못한 연차 수당 금액인가? 아니면 정말 정녕 고작 이 금액이 인센티브인가? 꼬리처럼 물고 늘어지던 의문들이 일렁이는 중 4번의 입금 알림이 연속으로 이어졌다. 이 중에는 한 단위가 더 붙은 금액도 있었다.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하며 통장 잔고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오랜만에 풍성해진 숫자들의 입금 내역을 보면서 성과급, PS(profit sharing, 이익 분배제), 연차보상, 그리고 이번 달 월급까지 따로 입금이 된 거였다. 근데 예상보다 많네? 역 출구까지 가장 최단 거리로 빠져나갈 수 있는 열차 객실 문을 찾으면서도, 나는 계속 핸드폰만 쳐다보며 걸어갔다.            


                

오늘만큼은 회사가 화기애애하려나? 이 정도면 블라인드에서 떠돌던 지급률보다는 훨씬 많은 것 아닌가? 나는 만족하는데 블라인드에 맹렬하게 비난을 퍼붓던 동료들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몇 년 전 이와 비슷하게 성과급이 넉넉했던 때가 떠올랐다. 지금과 그때와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그때는 내가 회사를 많이 좋아했다는 거? 콩깍지가 제대로 쓰여 있던 시절이다. 회사의 성장과 나의 성장을 동급으로 바라보던 때였으니 많이 받는 만큼 나는 회사에 더 열심히 충성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회사는 매출과 영업이익의 황금기를 걷던 때였고 직원들에게 넉넉한 성과급으로 고마움을 표시했다. 풍요로워진 통장 잔고에 나의 성취감은 배가 되고 동기부여는 그 값 절로 증폭됐었다.         



4년 전의 기억과 비교해서, 마치 메마른 땅에 내린 단비 같은 이번 성과급에 대해 나는 사뭇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0 하나가 더 붙은 성과급에 더 이상 나의 영혼을 팔아서는 안된다고, 혹여 49:51로 마음이 기울였다면 얼른 다시 반대쪽으로 향해야 한다고 아우성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마지막 잔치 상에 입을 넙쭉 벌리고 헤헤 웃고 있었다. 성과급 한방에 나의 욕망이 쥐락펴락하고 있었으니, 마음속으로 외쳤다. 

             

흔들리지 말자. 

잔고는 잔고일 뿐 이것으로 나의 미래를 과거로 되돌리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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